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반차도

1759년 6월에 거행된 영조(英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결혼식 가운데 일부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 왕비가 간택된 후 별궁에서 결혼식을 준비했으며, 왕이나 왕명을 받은 대신이 별궁으로 가 새 왕비를 맞이해 궁궐로 들어가 동뢰연을 치렀다. 이 그림은 어의동 별궁에서 친영의식을 마친 후 영조와 정순왕후와 함께 궁궐[창경궁]로 돌아올 때의 행렬을 그린 반차도이다. 조선시대 가례반차도 가운데 왕과 왕비의 행렬이 함께 등장하는 최초의 반차도이다.

(1) 왕의 행렬

어가행렬의 가장 앞 부분으로 ‘도가[導駕: 어가행렬을 앞에서 통하게 한다는 의미]’로 불리는 부분이다. 한성부 오부의 담당 관리와 한성부 당상, 예조·호조·사헌부·병조의 당상관들이 차례로 늘어서있다. 한성부와 오부에서는 미리 도로를 정비하여 오물을 없애고 어가행렬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없도록 단속하였다. 관복을 입고 말을 탄 각 부서의 책임자 앞에 이들의 명령을 받들어 행할 사령과 서리들이 있다. 병조 당상관 뒤에는 나장(羅將)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의금부에 속한 나장은 행차길을 단속하는 일을 맡았다.

나장의 뒤로 의금부도사 2인이 말을 타고 등장한다. 금부도사의 뒤로는 어가행렬의 앞에서 호위하는 전사대 군인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전사대 군인들 사이로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깃발을 들고 있는 군인들과 북과 징을 들고 있는 군인, 넓적한 몽둥이를 들고 있는 군인들이 보인다. 그 뒤로는 훈련대장(訓鍊大將)과 중군(中軍)이 말을 타고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군사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오방색을 활용한 깃발과 악기를 사용한 신호를 사용했다. 이 부분에 있는 깃발과 악기들은 전사대와 후사대 부대인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사용되었고, 이 명령에 대한 권한은 훈련대장에게 있었다. 중군 뒤쪽으로 다시 기고수(旗鼓手)들이 등장하며 그 뒤에 금군별장(禁軍別將)이 있다. 금군은 왕실의 호위를 맡은 정예군으로 전원 기병으로 이루어졌다. 금군은 전사대[선상군병]과 후사대[후상군병] 사이, 선두에서 후미에 이르기까지 어가행렬의 가장 바깥쪽에 서서 행렬 전체를 호위하였다.

3인의 금군 교련관 뒤로 둑(纛)과 교룡기(交龍旗)가 등장한다. 둑과 교룡기는 왕이 행차할 때 늘 앞부분에 서서 왕의 등장을 예고한다. 소의 꼬리털로 만드는 둑기는 군대가 출정할 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것이다. 교룡기는 황색의 바탕에 용 두 마리가 승강하는 모양을 그리고 붉은 화염각을 단 깃발로 왕의 군대를 움직일 때 앞에 세우는 국왕의 대표적 상징이다. 깃발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말 위에서 한 사람이 들고 뒤에서 4인이 보조하고 있다.

좌우의 홍문대기(紅門大旗), 중앙 좌우의 홍개(紅蓋), 중앙의 주작기(朱雀旗)로부터 국왕의 의장이 시작된다. 결혼식에서 왕은 국왕이 행차할 때 쓰는 세 등급의 노부의장 중 가장 큰 등급인 대가노부(大駕鹵簿)의 의장을 사용했다. 대가노부는 종묘나 사직에 왕이 직접 제사지낼 때에 쓰는 가장 화려한 노부로, 도성 안에서 행차하는 왕의 모습 중 가장 장대한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육정신(六丁神), 백택(白澤), 백학, 삼각(三角), 각단(角端), 용마(龍馬) 등 각종 신수 및 신인들이 그려진 깃발과 옛 무기들에서 유래한 각종 의장물들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중앙에는 왕의 어보를 실은 보마(寶馬), 왕이 앉을 교의, 물그릇, 장마(仗馬) 등이 있다. 장마 뒤에 있는 옥교는 왕이 궁궐 안 등에서 타고 다니는 지붕 없는 가마이다. 옥교 뒤에는 지붕 있는 가마가 등장하는데, 이 가마 역시 왕이 탄 가마가 아니라 예비용 작은 가마[副輦]이다. 부연 좌우로 푸른색 호의를 입은 창검군이 서 있다.

국왕의 대가의장의 행렬은 금월부(金鉞斧), 홍양산(紅陽繖), 수정장(水晶杖)이 등장하면서 일단 끝난다. 그 뒤로 운검차비와 왕의 가까이에서 고문에 응할 수 있도록 홍문관 관원이 서 있다. 이어 군기시 별파진에 속한 군인들이 총포를 들고 등장하고 그 안쪽으로 고취악을 연주하는 내취 악대가 선다. 그 뒤로 사금, 무겸, 선전관, 도총부낭청, 병조낭청 등과 오위장, 병조당상, 도총부당상, 패운검, 봉보검 등 어가 앞 여러 차비 인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왕이 전좌할 때 왕의 지근거리에서 왕을 호위하는 책임을 맡는다.

말을 탄 별군직 뒤로 가마 앞 고취악대가 등장하고 좌우로 기마 인원이 겹겹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부터 왕의 가마 옆 호위 인원들이 등장한다. 왕이 도성 안을 행차할 때 보통 여섯겹으로 늘어서서 호위하게 되는데, 가까이에는 걸어서 호위하는 인원이, 바깥쪽에는 말을 탄 금군과 호위군관, 별초무사 등이 선다. 왕의 가마는 지붕이 있는 정연(正輦)이다. 이 가마는 벽체를 모두 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모든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왕의 모습은 그리지 않았기에, 가마 안 영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마 옆에 선 붉은 색 일산(日傘)을 통해 왕이 거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마 뒤에는 청선이 좌우로 서며 대가의장 중 가장 뒷 부분에 등장하는 후전대기(後殿大旗), 현무기(玄武旗)가 등장하며 그 뒤로 가마 뒷부분 고취악대가 다시 등장한다. 후부고취 뒤로 서인 인원들은 왕의 가마 뒷부분에서 가까이 시종하며 왕이 궁궐 밖에서 행하는 여러 일들을 돕는 사람들이 선다. 일단 어의(御醫)가 있고, 승지, 사관, 약방도제조와 제조 등 왕명의 출납, 왕의 건강, 왕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을 맡은 이들이다. 그 뒤로 다시 창검군이 서며 병조의 표기(標旗)와 병조, 도총부 당상과 낭청이 등장한다. 다시 어가 뒷부분의 정비를 맡은 의금부 도사와 나장이 나타나며 그 뒤로 동반과 서반의 관료들이 좌우로 나누어 서서 따른다. 동서반 관원들 맨 뒤에는 관원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압반감찰이 선다. 나장과 후사대군이 이어 등장한다.

(2) 왕비의 행렬

다시 전사대 군이 등장하는데, 이는 왕비 행렬의 전사대 군병들이다.

왕비의 행렬 안에는 궁궐에서 동뢰연 의식 등 가례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별궁으로부터 가져가는 여러 가지 의례용 기물들이 나타난다. 전사대 군병 뒤에 왕비의 책봉 교명(敎命)을 실은 교명요여가 있다. 가마 앞에 욕석과 배안상은 교명을 놓을 상과 그 아래에 깔 자리이며, 가마 뒤에 교명을 들어 올리는 일을 담당할 관원들이 서있다. 교명을 실은 가마에 이어 옥책요여, 금보채여, 명복채여 등 왕비에게 올릴 옥책(玉冊), 금보(金寶), 명복(命服)을 실은 가마가 이어진다.

왕비의 호위를 맡은 금군과 오위장, 선전관에 이어 왕비 의장이 등장한다. 왕비의장은 좌우의 백택기로부터 시작되는데, 왕의 의장에 비해 깃발이 매우 적고 다양성도 적지만, 왕실 여성이 사용하는 의장 중에는 가장 화려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붉은 색 몽둥이를 든 주장내시 뒤로 고취악공의 무리가 이어진다. 그 뒤로 왕비의 예물을 짊어진 지가(支架), 별감, 초롱을 든 내시들에 이어 말을 탄 나인과 걸어가는 나인, 상궁이 잇달아 등장한다. 말 탄 나인과 상궁은 얼굴에 너울이라는 가리개를 썼다.
그 뒤로 왕비의 가마가 등장한다. 왕의 가마가 내부가 보이도록 열어젖힌 것과 달리 왕비의 가마는 모든 벽체가 닫힌 상태이다. 가마의 좌우로는 역시 너울을 쓴 시녀들이 말을 타고 서며, 가장 뒤에는 왕비의 건강 상태를 보살필 의녀가 따른다. 왕비의 가마 뒤쪽으로는 예비 가마꾼이 따른다. 그 뒤를 가마를 담당하는 사복시의 관원과 내시, 의관들, 사관, 병조 및 도총부의 당상․낭청이 따른다. 좌우로는 부장, 수문장, 내금위 등 호위를 맡은 사람들이 서 있다.
이어 국왕의 혼례식을 총 지휘하는 가례도감(嘉禮都監)의 도제조와 제조, 결혼식에 필요한 각종 물건들의 제작을 지휘하는 감조관(監造官) 등이 따른다. 행사를 준비했던 사람들 뒤로 왕의 행렬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반과 서반의 관원이 서고, 이들을 감시하는 감찰이 선다.

마지막으로 왕비의 행렬 후미에서 호위하는 후사대 군병들이 선다. 후사대장과 대장기가 중앙에 도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