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용된 검색어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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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정보(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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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복궁 경회루 (景福宮 慶會樓)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앞면 7칸·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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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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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복궁 근정전 (景福宮 勤政殿) 경복궁 근정전은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4년(1395)에 지었으며, 정종과 세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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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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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白磁 ‘天’‘地’‘玄’‘黃’銘 鉢) ...다. 각각의 굽 안쪽 바닥에는 유약을 긁어서 ‘천, 지, 현, 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 글자들은 경복궁 근정전 주위에 왕실에서 쓰던 그릇을 보관하던 창고인, ‘천자고, 지자고, 현자고, 황자고’가 있어 그 용도를 구분했던 글자가 아닌가 추정된다. 정선된 바탕흙을 사용하였고 고르게 입혀진 유약, 순백의 색깔, 단정한 굽, 가는 모래 받침들로 보아 왕실에서 사용할 고급 자기를 만들기 위해 국가에서 운영하던 경기도 광주지방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듯하다. 이 도자기는 조선 전기 백자로서 백자의 계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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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구
국가유산 안내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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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통영 세병관 - 종합 1 (統營 洗兵館) ...경복궁 경회루·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기둥, 2익공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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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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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통영 세병관 - 개별 1 (統營 洗兵館) ...경복궁 경회루 •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 면적이 넓은 건물로 손꼽힌다. 건물 외부는 장대석 기단에 민흘림기둥 50개를 세우고, 이익공양식으로 지붕을 올렸으며, 수수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이다. 건물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우물마루를 깔고 연등천장을 올렸다. 안쪽의 중앙 3칸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을 만들고 천장을 소란 반자***로 꾸미고 3면에 분합문****을 달아 위계를 달리 하였다. '세병관'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의미인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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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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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 개별 1 (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 ...경복궁 후원에 머물렀는데, 한국전쟁 중 폭격을 맞아 약 12,000여 조각으로 훼손되었다. 여러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후 지광국사탑이 반출된 지 112년 만에 고향 원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광국사탑의 복원 위치를 두고 승탑의 원래 자리이던 승탑원에 보호각을 세운 후 그 안에 복원하는 방안과 법천사지 안에 건립된 유적전시관 내부에 설치하는 두 가지 방안이 논의되었다.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통해 승탑원이 지형상 24톤에 달하는 지광국사탑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운 점과 보호각을 추가로 세워야 하는 환경적 측면을 고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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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채널(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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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경복궁 1부 끝나지 않은 역사 경복궁 경복궁이 우리 앞에 당당히 있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습니다. 조선 개국 하고 첫 궁궐로 세워져 전쟁 중에 불타고 스러진 뒤 다시 지어지고 또 온전히 자리 잡기까지 경복궁이 지켜온 것, 귀기울여 들어보겠습니다 <경복궁 방문 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연락처: 02-738-9171 주변볼거리: 광화문,흥례문, 근정전,근정문 관련홈페이지: http://www.royalpalac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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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경복궁 6부 경복궁의 눈물 ...경복궁에는 우리 역사상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흥선대원군과 시대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최신식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발전을 도모했던 고종황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서양 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자 했던 명성황후까지.당시 경복궁이 흘렸을 눈물을 따라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경복궁 방문 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연락처: 02-738-9171 주변볼거리: 건청궁, 장안당,옥호루, 집옥재, 향원정 관련홈페이지: http://www.ro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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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경복궁 4부 경복궁의 꽃 경회루 경복궁 수정전 앞에는 아름다운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수면위에 드리운 그림자가 특히나 수려한 이 누각은 바로 경복궁 건축의 꽃, 경회루입니다. 경회루는 건축물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그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탁 트인 풍광에 가슴까지 시원해집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공식 연회장소였던 경회루. 역사속의 경회루는 어떤 모습일까요? 함께 들어가보겠습니다. <경복궁 방문 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연락처: 02-738-9171 주변볼거리: 경회루, 강녕전, 수정전 관련홈페이지: http://www.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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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지식이음(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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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장식기와 경복궁 출토 자료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위계가 높은 유적에서 출토되는 청기와 및 장식기와에 대한 자료를 기술함
- 발행년도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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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미당 발굴조사 보고서 ...21년부터 2022년까지 이루어진 경복궁 자미당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이다. 자미당은 교태전의 북동쪽, 자경전의 서쪽에 인접한 건물로 기록에 따르면 세종 31년(1449) 처음 등장하며, 경복궁이 중건된 후 두 번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자미당에 대한 조사결과 두 차례에 걸쳐 자미당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기초시설과 담장지, 연도, 배수로 등의 부속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자미당 남쪽에서 조선 전기 건물지의 적심이 확인되는 성과가 있었다. 이를 통해 자미당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고 조선시대 궁궐 전각에 대한 학술자료를 확보하였다.
- 발행년도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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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흥복전지 발굴조사보고서 경복궁(景福宮)은 태조 4년(1395년) 9월에 창건된 조선의 정궁(正宮)이다. 선조 25년(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궐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그 후로 273년간 공궐(空闕)로 남게 된다. 이후 고종 2년(1865년) 4월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경복궁 재건 공사를 통하여 경복궁은 그 원형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원형을 되찾은 지 30년이 지나지 않아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7,000여 칸에 달하던 장엄한 모습을 잃고, 현재 일부 건물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경복궁 발굴조사는 이러한 경복궁의 원형을 되찾기...
- 발행년도
- 2008
간행물(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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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경복궁 - 발행년도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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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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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문(景福宮 勤政門) 수리보고서 - 발행년도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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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014554_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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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가이드를 위한 경복궁 안내 노트 - 발행년도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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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pdf
무형유산 지식새김(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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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기록화-기록영상 경복궁 근정전_대목장 국가유산청에서는 무형유산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유산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대목장은 목조건축을 짓는 장인으로, 1982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고택영, 전흥수, 신응수, 최기영 보유자의 제작 실연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건축의 역사, 재료, 제작공정, 전승현황 등이 담겨 있다.
- 발행년도
- 199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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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기록화-기록영상 경복궁 근정전_대목장 국가유산청에서는 무형유산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유산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대목장은 목조건축을 짓는 장인으로, 1982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고택영, 전흥수, 신응수, 최기영 보유자의 제작 실연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건축의 역사, 재료, 제작공정, 전승현황 등이 담겨 있다.
- 발행년도
- 199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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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기록화-기록영상 경복궁 담_제와장 국가유산청에서는 무형유산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체계적인 기록보존을 위해 1995년부터 국가무형유산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화 사업은 보유자(단체)의 기예능을 영상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록도서 발간을 추진한다. 제와장은 기와를 만드는 장인으로, 198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95년 한형준 보유자의 제작 실연 및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록화 사업이 진행되어, 그 결과물인 기록영상과 기록도서에는 기와의 역사, 재료, 제작공정, 전승현황 등이 담겨 있다.
- 발행년도
- 1995-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