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야보르와 시비드니차의 자유 교회 / Churches of Peace in Jawor and ?widnica
- 국가명
- 폴란드
- 등재연도
- 2001
- 등재기준
- (i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0.23ha
- 위치
- 북서실레지아(돌노실롱스키에) 주(Lower Silesian (Dolno?l?skie) Voivodship) 야보르와 시비드니차 군(Jawor and ?widnica counties)
- 좌표
- N51 3 15.4 E16 11 45.4
- 간략개요
- 유럽 최대의 목조 종교 건물인 야보르와 시비드니차의 자유 교회(Churches of Peace in Jawor and ?widnica)는 종교 전쟁이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이 체결된 후인 17세기에 옛 실레지아(Silesia) 지방에 세워졌다. 이 교회는 물리적·정치적으로 억압된 상황 속에서 간절히 바라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소망을 증언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가톨릭적 양식의 분위기 속에서 루터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 정당성/가치
- 자유 교회는 유럽에서 30년 전쟁 기간에 가톨릭 측인 합스부르크 황실이 실레지아 지방의 프로테스탄트교도들에게 베푼 이례적 관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황제가 내건 조건에 따라 지어야 했던 자유 교회 건립자들은 목조 건축에서는 전대미문인 규모와 복잡성을 가진 혁신적인 건축 해법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현재까지 교회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성공한 것 같다. 유럽의 30년 전쟁은 정교일체(政敎一體)의 원칙, 즉 ‘통치자가 믿는 종교가 그 백성에게 의무가 된다(cuius regio, eius religio)’는 원칙을 지지한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로 끝났다. 당시 실레지아는 가톨릭인 합스부르크 왕국에 속해 있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교도들은 박해받았고 신앙 생활을 할 권리와 기회를 박탈당했다. 루터파인 스웨덴 국왕이 중재하여 합스부르크 황제는 마침내 합스부르크 가가 직접 통치하던 실레지아 공국에 3개의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허가했다(1651~1652). 즉, 18세기에 교회가 불타 없어진 그워고프(Głogow)와 야보르(Jawor), 그리고 지금의 폴란드 남서쪽 부분에 있는 시비드니차에 이후 자유 교회로 알려지게 되는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실레지아 지방의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달리 자유 교회는 이교도에 대한 승리로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에 찬 선교 중심의 종교를 표현하는 대신, 가톨릭에서 벗어나 신교의 예배 전통과 관행을 보존하기 위해 신앙을 확고히 하려 하는 억압받는 종교적 소수자들의 피난처를 구현하고 있다. 자유 교회는 효율적인 구조와 재료를 가공하고 목재를 서로 연결하는 데 전통적인 기법을 세밀하게 사용함으로써 안정감과 내구성을 갖추었다. 엇턱이음(halved joints)을 사용하여 (벽체 높이의 일체형 기둥으로 만들어진) 기둥-보 구성을 결합한 건축의 최신 사례에 속한다. 수직, 수평으로 연결된 가로대를 일정하게 배치한 골조는 움직이지 않게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기둥과 가로대에 끼운 버팀목이 지탱하고 있다. 자유 교회와 같은 기둥-보 스타일 건축은 12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까지 이어진 유럽의 전통 중 하나이다. 야보르와 시비드니차에 있는 교회들은 설계상 특성이 다르다. 두 교회 모두 3개의 통로가 있고 통로 동쪽 끝부분이 다각형 모양으로 돼 있지만 야보르 교회의 통로 동쪽 끝은 여전히 실제 통로로 사용되는 반면 시비드니차 교회의 것은 통로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형태만 남아 있고 현재는 성구실로 쓰이고 있다. 야보르에 있는 루터파 자유 교회는 1654년~1655년에 건축가 알베르트 폰 사비스흐(Albert von Sabisch, 1610~1688)가 설계하여 야보르 출신의 목공 거장 안드레아스 감페르(Andreas Gamper)가 건축했다. 도시 밖에 있는 이 교회는 예전에 묘지였으며 만들 당시부터 있던 3개의 오솔길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부속 건물들이 부지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이 교회는 중랑 하나와 2개의 통로, 제단 하나로 구성된 바실리카 양식이다. 건물은 세로로 나뭇조각에 볏짚과 진흙을 싸서 채운 목구조이며 하나의 지붕으로 덮여 있다. 종탑은 1707년에 직사각형 모양의 평면으로 세워졌다. 내부에는 두 층의 주 회랑과 18세기에 증축된 두 층의 보조 회랑이 있다. 다색 장식(polychrome decoration)은 143개의 성서 속 장면과 설명이 새겨져 있고 흰색과 청색으로 칠한 예배용품들로 구성돼 있다. 판화가 마토이스 메리안(Matthaus Merian)의 영향을 받은 성화들은 게오르크 플레겔(Georg Flegel, 1610~1638)의 작품이다. 보조 회랑에도 비슷한 장식이 있으며, 장식에는 소용돌이 모양이 들어 있는 문장(紋章)이 있다. 1672년에 다층 구조로 만들어진 중앙 제단은 란츠후트(Landshut) 출신의 미하엘 슈나이더(Michael Schneider)의 작품이다. 시비드니차에 있는 루터파 자유 교회는 1656년~1657년에 야보르 자유 교회를 설계한 건축가 알베르트 폰 사비스흐가 설계했고 목공 거장 안드레아스 감페르와 카스파르 쾨니히(Kaspar Konig)가 건축했다. 도심지 중앙에 있는 이 교회는 18세기 중엽 요새의 바깥쪽 구역에 통합되었다. 부속 건물로는 담임 목사 숙소, 목사관, 2개의 학교가 있다. 교회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하나의 수랑(袖廊)과 네 층의 회랑이 있다. 바닥은 로마 십자가 모양이다. 내부의 다색 장식은 성서에서 영감을 받은 크리스티안 주센바흐(Christian Sussenbach)의 감독 하에 1693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752년에 기존 제단을 없애고 조각가 고트프리트 아우구스트 호프만(Gottfried August Hoffman)이 새로 중앙 제단을 제작했으며 강론대도 그가 만들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크리스토프 클로제(Christoph Klose)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