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투마르 수도원 / Convent of Christ in Tomar
- 국가명
- 포르투갈
- 등재연도
- 1983
- 등재기준
- (i)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산타렘(Santarem) 주, 투마르(Tomar)
- 좌표
- N39 36 16.992 W8 25 3
- 간략개요
- 투마르(Tomar)의 템플기사단(Knights Templar, 1344년에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뀜) 수도원은 원래 레콘키스타(Reconquesta, 국토회복운동)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고안되었다. 그러나 이 기념물은 그 상징성과는 반대로 포르투갈이 외부 문명에 문호를 개방했던 마누엘(Manueline) 시기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되었다.
- 정당성/가치
- 투마르 수도원은 레콘키스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투마르 수도원이 있는 곳은 외부 문명에 문호를 개방했던 마누엘의 통치기를 보여주는 지역이다. 12세기 후반, 포르투갈의 부름을 받은 템플기사단은 레콘키스타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들에게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요새는 투마르였다. 14세기에 템플기사단이 해체된 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대체되었으나 투마르는 여전히 그 중요성을 잃지 않았다. 계승된 장식물들이 이곳을 포르투갈의 가장 유명한 기념물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최초의 수도원은 12세기 말 템플기사단의 초대 단장인 구알딩 파이스(Gualdim Pais)가 건설하였다. 건물은 회랑 복도가 있는 팔각형 성가대석을 포함하여 16개 구획이 있는 다각형의 평면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템플기사단 건축물의 전형인 로톤다(rotonda, 원형 또는 타원형 형태의 사원)의 하나로, 동일한 양식이 유럽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회랑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추가되었다. 원형 홀의 북동쪽에 건설된 묘지의 회랑은 1430년무렵 동 엔히크(Don Henrique) 왕자가 건설하였으며, 우아한 고딕 양식으로 정점이 뾰족한 형태의 아치를 채택하였다. 마누엘 양식의 영향력은 수도원 어디에서고 단호하고 강력하게 나타난다. 국왕 마누엘 통치 시절, 디에고 드 아루다(Diego de Arruda)는 사제단실 위로 솟아오른 강단이 있는 사각형 도면에 따라 웅장한 성가대석을 만드는 일을 위임받았다. 이 2층 규모의 공간은 두 개의 구획(베이, bay)으로, 또한 놀랄 만큼 편안한 고딕의 자취와 무어 양식의 영향을 두루 갖춘 굉장한 장식의 창과 아큘러스(oculus, 둥근 창)로 외양을 드러낸다. 이는 기량이 아주 뛰어난 마누엘 장식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회랑과 새로운 수도원 건물은 주앙 3세(Joao Ⅲ)의 지시로 주앙 드 카스티요(Joao de Castilho)가 건축하였다. 벨렝(Belem)에서 그랬던 것처럼 투마르 수도원도 이탈리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필립스(Philips)’의 주요 회랑은 디에고 드 토랄바(Diego de Torralva)가 수정하고 테르지(F. Terzi)가 완성한 것으로, 2세기 후반에는 더 이상 변화하지 않았다. 2층의 코린트와 토스카나식 기둥들을 웅장한 팔라디오 풍으로 배치하여 건물 외양에 변화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