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본문
제목(유산명)
말보르크의 독일 기사단 성 / Castle of the Teutonic Order in Malbork
국가명
폴란드
등재연도
1997
등재기준
(ii) (iii)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18㏊
위치
포메라니아(옛 엘블롱크) 주(Pomeranian Voivodship(formerly Elbl?g Voivodship) 말보르크 시(City and County of Malbork)
좌표
N54 2 30 E19 1 60
간략개요
독일 기사단(Teutonic Order)이 13세기에 지은 이 수도원 요새는 1309년 기사단장의 거처를 베네치아에서 말보르크(Malbork)로 옮겨 온 후에 확장하고 장식을 추가했다. 그 후 퇴락하였으나,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꼼꼼하게 복구하였다. 벽돌로 쌓은 중세 성의 훌륭한 사례인 말보르크 성채에는 오늘날 표준이 된 많은 보존 기술이 적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이전에 보존 작업을 했던 이들이 남긴 상세한 문서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복원하였다.
정당성/가치
말보르크 성채는 독특한 색채를 띤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건축에 쓰인 기술적·예술적 기법(둥근 천장, 정문, 건물에 새긴 조각 등의 설계 및 건축)은 멀리 유럽 북동부에 있는 고딕 양식의 건축물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말보르크 성채에는 중세의 방어 시설을 위한 건축 공법이 대폭 적용되었다. 말보르크 성채는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독일 기사단과, 기사단이 프로이센에 세운 강대한 수도원 도시의 경제, 군사, 행정 중심지였다. 완벽하게 계획하여 건축한 말보르크 성채는 수도원 도시의 수장인 독일 기사단장의 사회적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능을 갖춘 말보르크 성채는 독특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서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말보르크 성채는 노가트 강 오른쪽 반도에 있고, 그 남쪽에는 10세기 기독교를 받아들인 폴란드가 있다. 폴란드의 통치자들은 프로이센 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선교 활동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성아달베르트(St. Adalbert, 997)와 성브루노(St. Bruno, 1009)가 순교하였다. 1215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Ⅲ)가 프로이센에 선교를 목적으로 한 주교구를 세웠다. 폴란드의 콘라트(Conrad) 공은 독일 기사단에 원조를 요청하는 대신 국경 영토의 일부를 할양하였다. 독일 기사단이 그곳에 정착하였지만, 반세기 동안 프로이센 인의 저항을 겪었다. 1270년 이후 축조하기 시작한 말보르크(독일 이름은 마리엔부르크(Marienburg)) 성채는 독일 기사단이 세운 많은 성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새였다. 그 중요성은 기사단장이 본거지를 베네치아에서 말보르크로 옮긴 1309년 이후 더욱 커져서 성채는 증축되었다. 성채의 전방 건물은 기사단장의 거처 및 행정 본부로 사용하였다. 기사단장들을 위한 웅장한 궁전은 남서쪽 모퉁이에 세웠다. 궁전 북쪽에는 거대한 휴게 건물을 지었다. 미들 캐슬(Middle Castle) 북쪽에는 병원과 사령관의 거처가 있는 부속 건물이 들어섰다. 하이 캐슬(High Castle)의 예배당은 규모를 확장하였고, 장로회 새 교구에서 기사단장의 시신을 안치한 예배당 건물을 성안나(St. Anne)에게 봉헌하였다.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가 된 말보르크 성채는 곧 막사로 변용하였다. 그러나 말보르크 성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수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요구로 성채는 1804년에 역사 기념물로서 지정되었다. 말보르크 성채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부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1947년부터 재건축 및 복구 운동이 이어졌다. 하이 캐슬은 막바지에 독일 기사단의 수도원으로 쓰였다. 평면이 정사각형인 하이 캐슬은 중앙에 안뜰이 있었으며 숙소, 휴게실, 취사실, 대규모 저장 시설 같은 기사들의 생활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그 곁에는 성모마리아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원래 동쪽 부속 건물 1층에 있다가 장로회 새 교구와 하이 캐슬의 경계선 밖으로 확장되었다. 하이 캐슬의 정문인 황금문은 여러 빛깔의 본래 장식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미들 캐슬과 하이 캐슬은 방어 시설인 담, 성벽, 해자 등에 둘러싸여 있다. 말보르크가 기사단장의 거처가 되었을 때, 3면을 담으로 에워싼 구역을 새로 만들어 도개교로 하이 캐슬과 연결하였다. 하이 캐슬 및 거대한 휴게 건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좁고 둥근 천장과 커다란 창문으로 밝고 높다란 공간을 형성한다. 이는 하이 고딕 양식(High Gothic)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진료소, 군사 지휘관의 거처, 기사단의 고위 인사나 외부 기사 등 외빈을 위한 부속 건물도 있다. 14세기에 말보르크 성채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전방 건물을 짓고, 성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방어 시설을 넓혔다. 미들 캐슬 북쪽에 있는 부속 건물의 출입구는 전방 건물 중앙의 열린 공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기사단 하인 숙소, 작업장, 무기고, 대포 주물장, 마구간, 마차 보관소, 성로렌스(St. Lawrence)에게 봉헌된 예배당 등의 건물이 있다. 성채 전체는 육중한 담과 보루, 물이 차 있거나 말라 있는 해자와 도랑, 흙벽과 연못(성채에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등의 방어 시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자주찾는 메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