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두가(투가) / Dougga(Thugga)
- 국가명
- 튀니지
- 등재연도
- 1997
- 등재기준
- (ii) (ii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70ha
- 위치
- 베자(Gouvernat de Beja)
- 좌표
- N36 25 24.996 E9 13 13.008
- 간략개요
- 로마가 누미디아를 합병하기 전, 비옥한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역에 건설한 두가(Dougga, Thugga) 시는 중요한 리비아-카르타고 국가의 수도였다. 로마와 비잔틴의 지배 하에서는 번창하였지만, 이슬람 시대에는 쇠락하였다. 이곳에는 로마 제국의 변방에 있던 작은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유적들이 남아 있다.
- 정당성/가치
- 토착 누미디아 도시의 발생과 발전, 일상생활 등 17세기 이상의 역사를 증명하는 두가의 고고학 유적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누미디아, 카르타고, 헬레니즘, 그리고 로마 등의 각기 다른 문화를 통합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리비아 어와 카르타고 어, 그리스 어, 라틴 어로 씌어진 2,000점 이상의 비문으로 구성된 두가의 중요한 금석학 컬렉션은 리비아 어의 판독, 누미디아의 사회 및 생활, 로마의 식민 정치와 도시 조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유적의 북쪽 끝에 있는 초기 공동묘지가 최근 발굴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도시가 기원전 5세기 전에 건설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초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Massinissa)는 두가를 수도들 중 하나로 삼았다. 기원전 46년의 타프수스 전투(Battle of Thapsus)에서 주바 1세(Juba I)가 패한 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동 누미디아를 아프리카 노바(Africa Nova) 로마의 주로 합병하였고 두가는 로마의 도시가 되었다. 그 후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기간(BC 27~14) 이후 2세기 동안 도시는 공식적·법적으로 2개의 별개 공동체로 구성되었다. 즉, 자신들의 전통 제도에 따르는 이주 토착민 공동체와 로마 방식에 따르는 카르타고의 로마 식민지에 속한 로마 시민 공동체이다. 도시 규모는 주민이 5,000명을 넘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풍요롭고 비옥한 테리토리움(territorium)에 기초한 지방 경제로 번영하였다. 수많은 비문과, 복원 및 재건의 결과로 증명된 것들에 의하면, 도시는 4세기에는 계속 번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5세기에는 쇠락하였다. 비잔틴 제국이 다시 지배하면서(533~698) 이 지역 정치적·경제적 생활에 미치는 두가의 역할은 미미했다. 이슬람 시대에는 단순한 시디 사비(Sidi Sahbi) 모스크 외에는 특별히 유명한 것이 없다. 본래의 누미디아 정착지는 아주 비옥한 지역의 중심지에 있는 가파른 언덕 위에 지어졌다. 두가는 공공건물, 사원과 성소, 포럼, 공중목욕탕, 극장, 원형 경기장과 광장, 시장, 공중 저수지와 분수 등으로 특징지어지며, 개인의 생활은 크고 작은 집, 상점과 묘들로 잘 표현된다. 대리석 주랑으로 둘러싸인 작은 직사각형 포럼은 후기 비잔틴 요새의 일부분이 가로지르고 있다. 포럼의 한쪽에는 주피터, 주노, 미네르바 신들에게 바쳐진 카피톨리움(capitolium)이 있다. 이 카피톨리움은 북아프리카에 있는 같은 형태의 건물들 가운데 가장 세련된 것에 속한다. 극장은 작고 표준적인 로마식이다. 극장의 무대(scenae frons) 바닥은 원래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다. 많은 신전들 가운데, 카르타고의 여신 타니트(Tanit)에 해당하는 로마 여신 주노 카엘레스티스(Juno Caelestis)에게 바쳐진 신전은 230년경에 지어졌다. 로마 이전의 정착지 지역, 도시의 끝에 있는 사투르누스(Saturnus) 신전은 바알(Baal) 신에 바쳐진 오래된 성소가 있는 지역에 지어졌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개선문과 세베루스 알렉산더(Severus Alexander) 개선문이 있는데, 전자는 많이 허물어졌지만 후자는 여전히 상당한 높이로 서 있다. 잘 보존된 3세기의 리시니안 목욕탕(Licinian bath)은 이런 형태로 지어진 도시 설비의 뛰어난 본보기이다. 두가의 가장 중요한 기념물들 가운데 하나인 도시 남쪽 지역의 리비아-카르타고 능묘는 1908년~1910년에 재건되었다. 이것은 튀니지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카르타고 건축물의 유일한 주요 기념물이다. 1961년에 튀니지 정부는 고고학 유적지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두 가구만 남겨 놓고 모두 새로운 마을인 두가알자디다(Dougga-al-Jadida)로 이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