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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취푸의 공자 유적 / Temple and Cemetery of Confucius and the Kong Family Mansion in Qufu
국가명
중국
등재연도
1994
등재기준
(i) (iv) (vi)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산둥성(山東省, Shandong Province ) 취푸시(曲阜市, Qufu City)
좌표
N35 36 42.012 E116 58 30
간략개요
공자는 기원전 6세기~5세기에 활동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 교육자이다. 중국 산둥 성 취푸에는 공자를 기리는 사당과 묘지, 후손들의 저택이 남아 있다. 기원전 478년에 공자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은 수세기에 걸쳐 파괴와 재건을 되풀이해 왔으며, 현재는 100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묘지에는 공자의 무덤을 비롯하여 10만 명이 넘는 후손들의 묘가 있다. 공씨 일가가 살았던 작은 집은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귀족 저택으로 변모했으며, 그중에서 152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취푸의 공자 유적은 중국의 황제들이 2,000년 넘게 대대로 관심을 가져온 덕분에 뛰어난 예술적·역사적 특징을 유지해 오고 있다.
정당성/가치
중국 봉건 사회는 2,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공자(BC 551~479)가 이룩한 사상 체계를 뛰어난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중국 사람들은 공자를 ‘신성한 제1의 스승’이자 ‘수천 년에 걸쳐온 신성한 모범 스승’으로 받들었다. 취푸의 공자 유적은 공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가 죽은 이듬해(BC 478)에 취푸에 있는 그의 옛집을 사당으로 개축하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시작되어, 이후 청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30여 회에 걸쳐 증축, 개축되었다. 취푸의 공자 유적은 사당인 공묘(孔廟), 묘지가 있는 공림(孔林), 후손들의 저택인 공부(孔府)로 크게 구분된다. 사당 입구에는 측백나무와 소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주요 건물은 중앙을 축으로 세로로 배열되어 있고, 9개의 정원이 각각의 건물을 감싸고 있다. 작은 문들과 커다란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 처음의 세 정원은 사당의 중심부로 방문객들을 이끈다. 네 번째 정원에서부터 등장하는 건물들은 황색 기와를 올린 지붕과 붉게 칠한 담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구조로, 유교의 심오함과 화합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사당 안에 보존되어 있는 1,000개가 넘는 비석에는 한나라(BC 206~AD 220) 때부터 황제가 바친 제물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는 뛰어난 서예 솜씨와 색다른 기록물의 형태를 보여 주는 중국 예술의 귀중한 사례이다. 훌륭한 솜씨로 조탁한 조각품은 물론 돋을새김이 되어 있는 한나라 시대의 석조물과 돌기둥, 공자의 일생을 묘사한 명나라 시대의 조각 그림도 많이 있다. 공자의 묘는 취푸에서 북쪽으로 1㎞ 떨어진 쓰수이강(泗水)의 제방에 자리한다. 제단 앞에 반구형 언덕을 이룬 이 무덤은 추앙과 순례의 으뜸 장소가 되었다. 그 뒤 2세기까지 공자의 무덤 주변에는 50기가 넘는 후손들의 무덤이 생겨났다. 묘역의 정문은 측백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선 쭉 뻗은 길로 취푸의 현성 북문과 연결되어 있다. 이어서 좁은 담으로 둘러싸인, 두 번째 문으로 이어지는 장소가 나오는데 이곳은 잔디와 나무, 강이 있는 열린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영교(株永橋)를 건너 서쪽으로 가다 보면 공자의 무덤을 만나게 된다. 공씨 일가의 저택에서 사당과 묘지를 지키고 돌보던 공자의 후손들은 귀족 칭호를 받아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저택은 앞쪽의 공무 장소와 후원의 생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중국 건축물의 배치 구조이다. 가장 번성했던 16세기 때의 저택은 170여 채의 건물에 방이 560개나 되었다. 현재는 152채의 건물에 480개의 방이 남아 있다. 두루마리와 그림을 포함하여 많은 문화 유적들이 저택 안에 보관되어 있고, 내부는 청나라 후기와 중화민국(1912~1949) 풍으로 장식되어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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