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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종묘 / Jongmyo Shrine
국가명
대한민국
등재연도
1995
등재기준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19㏊
위치
좌표
간략개요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왕이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문무백관(文武百官)과 함께 정기적으로 제사에 참여한 공간으로 왕실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보여 준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왕실 제례 건축으로서 공간계획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14세기 말에 창건되어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세기 초에 중건하였고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심 건물인 종묘 정전(宗廟 正殿)은 정면이 매우 길고 건물 앞마당과 일체를 이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오랜 정신적 전통인 조상숭배 사상과 제사 의례를 바탕으로 왕실 주도 하에 엄격한 형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현재에도 조선 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종묘제례(宗廟祭禮)라 불리는 제사 의례가 행해지고 있으며 제사에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음악과 춤이 동반된다. 종묘의 건축과 관리, 제례 봉행에 관한 모든 사항은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으로 상세히 남아있다.
정당성/가치
종묘는 선왕을 기리는 유교 사당의 뛰어난 예이다. 16세기 이후 상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었다. 조선왕조(1392~1910)의 선왕들을 모시는 사당인 종묘에서는 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가 거행되어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에 수도를 한양(漢陽, 현재의 서울)으로 옮기면서 종묘를 건축하도록 명했고, 태조의 4대조 신주를 개성에서 종묘로 옮겼다. 이후 후대 왕들의 신주를 모실 건물을 증축했고, 정전(正殿)에 있던 신주(神主) 일부를 새로 지은 영녕전(永寧殿, 16실)으로 옮겼다. 종묘에는 모두 35실이 있다. 종묘는 낮은 산들로 둘러싸인 계곡에 위치하며, 전통 풍수지리에 따라 자연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종묘는 각각 향대청(香大廳), 정전(주전), 영녕전(별묘)을 중심으로 하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 주요 구성 요소로는 두꺼운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외대문(정문), 제례가 거행되기 전에 왕이 대기하던 기와지붕 목조건물인 망묘루, 태조가 고려 공민왕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지었던 공민왕신당, 제례에 사용하던 물품들을 보관하던 향대청, 참가자들이 의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리던 재실(齋室, 주 건물과 양옆의 부속 건물로 구성됨) 등이 있다. 정전은 남문, 동문, 서문이 달린 직사각형 모양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닥에는 거친 화강암으로 만든 묘정 월대(廟庭月臺)가 넓게 깔려 있다. 세 개의 계단이 돌 기단에서 정전을 향해 나 있으며, 보다 작은 계단들이 양옆 끝에 있다. 정전은 목조건축물이며, 그 좌우에는 월대 쪽으로 나온 동월랑(東月廊)·서월랑(西月廊)이 딸려 있다.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정전은 개방된 정면에 긴 복도가 있고, 나무문이 달려 있는 내부에 19실이 있다. 이 묘실들은 다시 여러 개의 칸으로 구분되어 신주 49개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칸막이가 쳐진 협실이 딸려 있다. 정전의 박공지붕은 소박한 목재 까치발이 받치고 있다. 영령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여 정문으로는 사람의 통행을 금지했다. 왕은 동문으로 드나들었으며, 악사들은 더 작은 서문으로 다녔다. 칠사당은 사명(司命), 사호(司戶), 사조(司?), 중류(中?), 국문(國門), 공려(公?), 국행(國行) 등의 칠사(七祀)와 함께 역병으로 사망한 이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공신당(功臣堂)은 역대 공신 83명의 신주를 모신 곳이며, 전사청(典祀廳)은 제례에 사용된 물품과 예물을 준비하던 곳이다. 정전 수복방(守僕房)은 관원들의 거처로, 제례에 쓰일 제물을 검사하는 곳이기도 했다. 영녕전에는 정전에 있던 왕들의 신주를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옮겨서 보관했는데, 정전에 계속 모실 수 없는 왕들의 신주를 옮겨 모셨다. 영녕전은 문이 세 개가 달린 직사각형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당에는 얇은 화강암이 깔려 있다. 영녕전의 주 건물 양옆에는 크기가 다른 곁방이 딸려 있다. 둥근 기둥의 꼭대기에는 목재 까치발이 달려서 박공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heritage.unesco.or.kr/whs/jongmyo-sh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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