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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옐링의 고분, 비석과 성당 / Jelling Mounds, Runic Stones and Church
국가명
덴마크
등재연도
1994
등재기준
(iii)
분류
문화
유산면적
4.96ha
위치
바일레 주(Vejle Commune), 남덴마크 지역(Region of Southern Denmark)
좌표
N55 45 23 E9 25 12
간략개요
이 유적지에는 옐링(Jelling)의 고분들과 고대 북유럽의 문자인 룬 문자로 새긴 비석(runic stones) 두 기가 있다. 두 기 중 하나는 북유럽 이교도 문화를 보여 주는 놀라운 본보기이다. 이와 달리 나머지 한 기의 룬 문자 비석과 성당은 10세기 중반 덴마크인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보여 주는 유적이다.
정당성/가치
옐링의 유적 단지, 그중에서도 특히 이교도의 고분들과 2개의 룬 문자 비석은 북유럽 문화의 특징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학자들은 바이킹 왕 고름과 여왕 티라에 관한 덴마크 측의 여러 가지 기록들이 믿을 만한 구전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옐링에 있는 2개의 거대한 고분이 두 왕의 무덤인지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유일한 증거는 2개의 룬 문자 비석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옐링은 10세기에 고름과 그의 아들 하랄 블루투스가 다스리는 동안 왕실의 영지였다. 고름은 아내 티라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비석을 세웠고, 이들 부부가 덴마크로 알려진 왕국을 통치했다. 현재의 유적에 건립된 최초의 목조 성당은 북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 고고학적 증거들을 살펴보면, 하랄 블루투스가 덴마크에 그리스도교를 들여왔던 960년 무렵에 성당이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2개의 룬 문자 비석 중에서 더 큰 것에 이런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최상급 공예품들이 들어 있었던 10세기 양식의 이 커다란 목조 무덤은 첫 성당의 디자인상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었다. 하랄의 비문을 담고 있는 더 큰 룬 문자 비석은 2개의 고분 사이에 안정된 형태로 놓여 있는데, 고고학 발굴을 통해 원래 위치가 밝혀졌다. 북쪽 고분은 오크로 만든 인상적인 묘실 위에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더 작은 규모의 초기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 있다. 이 묘실은 1802년 최초로 발굴하기 이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원래의 유물 중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유물들을 통해 이것이 10세기 중반의 수준 높은 이교도식 무덤임이 입증되었다. 이것이 개인 무덤인지 또는 이중장(二重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남쪽 고분에는 묘실이 없다. 하지만 발굴을 통해서 바이킹 양식 배 모양이었을 석재 평면도 위에 이것이 건립되었음이 입증되었고, 북쪽 고분 밑에 청동기시대의 무덤이 있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당시 옐링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설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왕 티라의 사망 이후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2개의 매우 거대한 봉분을 이룬 합동 매장 시설을 만들었다. 그가 죽자, 그는 북쪽 고분의 묘실에 안장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티라의 유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일하고, 덴마크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그의 아들 하랄 블루투스가 2개의 고분 사이에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인상적인 목조 성당을 신축하고, 바로 그곳에 아버지의 유해를 다시 매장했다. 상단이 평평한 2개의 고분은 끝이 잘린 원뿔 같은 모양과 규모 면에서 거의 비슷하다. 둘 중에서 더 큰 룬 문자 비석은 두 고분의 정확히 중앙에 있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하랄 왕이 이 기념비를 세웠고, 이는 그의 아버지 고름과 어머니 티라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하랄은 혼자 힘으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얻었고, 덴마크 인들을 그리스도교도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비문은 비석의 동쪽 면에 기록되어 있고, 비문 위에는 북유럽의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남서쪽 면에는 953년~965년에 진행된 덴마크의 그리스도교 전도와 관련된 나머지 기록과 북유럽에 전해진 초기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룬 문자 비석 옆에 그보다 작은 룬 문자 비석이 있다. 이것은 원래 그 위치에 있지 않았다. 원래의 위치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대략 1630년 이후부터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고름 왕이 덴마크를 더 빛내 주는 그의 아내 티라를 위해 이 기념비를 세웠다.’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최소한 3개의 목조 성당이 있던 자리에 건설된 성당들은 화재로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당시 그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석회질의 석회화(石灰華)로 지어 단순히 백색 도료를 칠한 것이다. 그 뒤 1100년경에 재건하면서 성당 예배 때 성직자와 합창대가 앉는 제단 옆자리인 성단소와 성당 중앙부의 신도석을 갖추었다. 서쪽 끝에 있는 탑은 15세기 초에 증축되었다. 벽화는 1100년경의 작품으로 1874년~1875년에 성단소의 벽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덴마크 최초의 작품이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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