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히메지성 / Himeji-jo
- 국가명
- 일본
- 등재연도
- 1993
- 등재기준
- (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107㏊
- 위치
- 효고현 (兵庫?, Hyogo Prefecture )
- 좌표
- N34 49 60 E134 41 60
- 간략개요
- 히메지성(姬路城)은 17세기 초 일본 성곽 건축을 대표하는,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예이다. 막부시대(幕府時代) 초기에 만들어진 고도의 방어 체계와 정교한 보호 장치를 갖춘 총 83개의 건물을 포함하고 있다. 히메지성은 기능적인 면과 심미적인 매력을 잘 조화시킨, 목조 건축물의 걸작이다. 회벽칠된 백색 토벽으로 통일되어 있는 우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과 여러 겹의 지붕사이의 섬세한 관계가 돋보이는 성곽이다.
- 정당성/가치
- 히메지성은 목조 건축물의 걸작이다. 17세기 초 일본 성곽 건축을 대표하는,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건물로서 그 중요한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 일본의 군사정권이었던 막부 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히메지는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에 있다.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風神秀吉)는 그의 전국통일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 전역에 요새를 설치했는데, 히메지성 역시 그 일환으로 16세기가 끝날 무렵에 건축되었다. 첫 번째 성은 1600년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 때 이 지역의 영주였던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요새를 새로 지었으며 대부분 현재까지 남아 있다. 히메지성은 벽과 해자(垓字)로 구별되어 있는 동심원 모양의 영지, 성곽과 탑, 무사들의 숙소 등을 포함하고 있다. 1617년 이 성의 영주였던 혼다 다다마사(本多忠政)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딸이자 자신의 부인을 위한 거처로 이용하기 위해서 니시노마루(西の丸) 일부분을 개보수 했다. 히메지성은 270년 동안 봉건 영지의 중심지였으며, 이 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막부시대가 끝나고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면서, 새 정부는 히메지성을 수용하여 군사기지로 사용했다. 니시노마루의 일부와 무사들의 거주지가 붕괴되었고 군사 시설들이 들어섰다. 봉건시대 일본의 다른 성들과 달리, 히메지성은 원래의 형태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는 대령 나카무라 시게토(中村重遠) 같은 군 장교들의 노력 덕분으로, 유적보호법의 보호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었다. 1945년 히메지성 안과 주위의 군사 시설은 붕괴되거나 공무를 위한 관청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안쪽의 건물은 손을 대지 않았으며, 17세기 모습대로 유지되었다. 모두 83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지는 히메지성은 디자인이나 설계에 있어서 17세기 초 일본의 성곽 건축의 전형적인 예이다. 히데요시가 축조한 성 중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니노마루(二の丸)의 한 구역의 동쪽 출입구뿐이다. 나머지는 1601년~16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니시노마루의 탑들은 1617년 이후의 것이다. 히메지성의 중심은 천수군(天守群)이며, 이는 대천수(大天守)와 소천수(小天守) 3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수와 천수 사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천수군은 망루, 출입구, 회백칠의 토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나지막한 언덕 위해 자리해 있기 때문에 천수에 올라가면 히메지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대천수 내부는 지하실과 6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 출입구는 남서쪽이며 복도를 통해 들어간다. 히메지성은 흰색의 외벽과 날개 모양의 지붕이 마치 백로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시라사기성(白鷺城, 백로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막부 시대 초기에 일본에는 많은 성곽들이 축조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헐렸으며, 나머지들은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 매우 일부분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히메지성은 가장 완전하면서도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육군 장교들의 노력 덕분이다. 1934년에서 1964년의 보존 작업들은 대규모 목조건축을 위해 일본에서 개발된 고도의 기술을 사용했으며, 설계, 재료, 기술, 환경에 있어서 진정성 원칙에 준거하여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