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쿠엥카 역사지구 / Historic Centre of Santa Ana de los Rios de Cuenca
- 국가명
- 에콰도르
- 등재연도
- 1999
- 등재기준
- (ii) (iv) (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200ha
- 위치
- 아주아이 주(Province of Azuay)
- 좌표
- S2 52 60 W78 58 60
- 간략개요
- 산타 아나 데 로스리오스 데 쿠엥카는 에콰도르 남부의 안데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있다. 이곳은 내륙 식민도시(entroterra)로서, 도시가 세워지기 30년 전에 발표한 스페인 왕 카를 5세의 칙령에 따라 1557년에 건설되었다. 쿠엥카는 400년 동안 지켜온 직교 도시 설계(orthogonal town plan)를 여전히 존중하고 있다. 쿠엥카의 건축물 대부분이 18세기에 지어졌고, 19세기에 들어 말라리아 특효약인 키니네(quinine)와 밀짚모자를 비롯한 여러 상품의 주요 생산지로서 수출로 인한 경제적 번영을 누리며 근대화되었다. 이 지역은 농업과 행정 중심지로서 토착민과 이민자의 어울려 살고 있는 곳이다. 오늘날 에콰도르의 3대 도시이다.
- 정당성/가치
- 쿠엥카는 스페인이 내륙에 건립한 대표적 계획 식민도시이다. 또한 르네상스식 도시계획 원칙을 아메리카에 성공적으로 접목한 사례이기도 하다. 쿠엥카의 외관과 풍경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가 성공적으로 융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쿠엥카는 내륙 식민도시로서 현재 에콰도르의 3대 도시이다. 도시가 건설되기 30년 전 스페인 왕 카를 5세가 발표한 철저한 건설 지침에 따라 세워졌다. 쿠엥카는 400년 동안 고수된 직교 도시 설계를 존중하고 있다. 도시는 1557년에 총독 안드레스 우르타도 데 멘도사(Andres Hurtado de Mendoza)의 명령에 따라, 품파푼고(Pumpapungo) 옆에 있는 지역에 세워졌다. 이곳을 농업 중심지로 만들고자 하였는데 이는 주변 평야의 환경이 농사와 축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안데스 지역에 사는 많은 인디언을 위한 행정 중심지를 구축하는 것 또한 그 목적이었다. 초기의 도시계획에서 한계에 부딪힌 쿠엥카 시가지는 발전이 더뎠으며, 오랫동안 농업생산의 중심지로 머물렀다. 도시에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있으며, 1820년 스페인 왕가의 지배가 끝날 때까지 식민지 도시의 성격을 유지하였다. 이곳에는 그동안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였다. 19세기 후반기에 도시는 제조업 발전 단계를 거쳤고, 특히 키니네와 밀짚모자 생산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도시를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몇 가지 중요한 건물을 추가로 세울 수 있었고, 1867년 쿠엥카 대학이 이렇게 해서 설립되었다. 지리상으로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덕분에 쿠엥카는 1950년까지 도시적 동질성을 보존하였다. 그러나 도시는 이후 도시 확장과 부동산 개발, 새로운 사회적 필요라는 압력에 따르는 변화에 시달렸다. 1982년 도시 이미지를 보존하고, 몇몇 건물을 보수하려고 쿠엥카 도시지구를 위한 도시발전계획을 채택하였다. 이 도시는 안데스 산맥의 자연환경과 오랫동안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할 수 있었다. 도시는 중앙 광장인 아돈칼데론 공원(AbdonCalderon Park)으로부터 시작하여 정확하게 수직 격자형으로 뻗어나가면서 형성되었으며, 총 200개 블록으로 구성되었다. 지방자치의회, 총독부, 성당 2개, 법원이 중앙 광장 주변에 있다. 포장도로는 넓고 햇빛이 비치는 도로이다. 도시 구조는 공원, 광장, 교회 회랑, 공공구역 덕분에 주목할 만하다. 식민지 시대의 수많은 서민가옥이 팽창시대 동안 중요한 주택으로 변신하였다. 그 결과 토착 양식과 유럽 양식의 다양한 영향을 받아들인 독특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언급할 가치가 있는 주요 건물에는, 1880년에 건설하기 시작한 새 성당과 구 성당, 카르멜회 수도원(Carmelite Monastery), 산토도밍고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