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탈린 역사지구 (옛 시가지) / Historic Centre (Old Town) of Tallinn
- 국가명
- 에스토니아
- 등재연도
- 1997
- 등재기준
- (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113㏊
- 위치
- 하르유 주(County of Harju)
- 좌표
- N59 25 59.988 E24 43 60
- 간략개요
-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은 13세기에 튜턴 기사단(Teutonic Order, 독일 기사단)의 십자군 원정대가 성을 세우면서 형성되었다.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주요 중심지로 발전한 이 도시는 화려한 공공건물(특히 교회)과 상인들이 거주하던 건물을 통해 과거의 영화를 과시하고 있다. 이곳은 다음 세기의 화재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파괴되지 않아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
- 정당성/가치
- 탈린은 걸출하고 매우 완벽하며 잘 보존된 중세 북유럽 무역 도시의 사례이다. 이 도시는 독특한 양식의 경제적·사회적 공동체의 뚜렷한 특징을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하고 있다. 서기 10, 11세기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바이킹 항로에 자리 잡은 이곳에 대한 고고학 조사 결과, 톰페아(Toompea) 석회암 언덕에는 요새와 교역소가, 그리고 산기슭에는 항구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발트 해의 해상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1219년 당시에 린다니스(Lyndanise, 독일어로 레팔(Reval), 러시아어로 콜리반(Kolyvan))라고 불리던 촌락이 덴마크의 발데마르 2세(Waldemar Ⅱ)의 군대에게 점령당했다. 발데마르 2세는 톰페아에 요새를 강화했고,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1226년~1227년, 탈린은 교황의 직접 지배 하로 들어가면서 카를 형제의 십자군 기사단 (crusading Order of the Brethren of the Sword, 이후 튜턴 기사단과 합병했다) 소속이 되었고, 이 지역은 요새(castrum)와 도시의 저지대(suburbum) 두 부분으로 분할되었다. 1230년 기사단은 고틀란트(Gotland) 출신의 독일 상인 200명을 탈린으로 불러들였다. 상인들은 성 니콜라스(St Nicholas)에게 봉헌된 새 교회 주위에 정착했고, 그 옆에는 기존의 에스토니아인과 스칸디나비아인, 그리고 러시아인의 교역소가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재빠르게 도미니크와 시토 수도회를 따랐고, 각각의 수도회는 성 카트린 수도원과 천사장 미카엘의 시토 수녀원을 건설하였다. 탈린은 1248년에 뤼베크 법령(Lubeck statute)을 채택하고, 1285년 한자동맹에 가입하면서 발트 해 지역과 러시아 내륙 사이 교역로상의 중요 거점이 되었다. 이후 해상 무역이 융성하면서 1310년 거대한 도시 성벽이 세워지기 시작하고, 성벽 안쪽에는 발트의 전통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도로가 건설되는 등 14세기에 급성장하였다. 에스토니아 북부의 영토와 함께, 도시는 1345년에 튜턴 기사단에게 매각되었고, 튜턴 기사단은 곧바로 리보니안 기사단에 매각하였다. 리보니안 기사단은 이곳에 톰페아 성을 재건하여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성으로 만들었다. 1361년 한자동맹의 유력한 일원이던 항구 도시 비스비(Visby)가 함락되면서 탈린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하였다. 15세기에는 새로운 시청과 공공건물들이 여러 채 건설되고, 상인의 목조 가옥이 석조 가옥으로 재건되는 등 도시에 변화가 있었다. 15세기에 한자동맹은 쇠락했지만, 탈린의 무역상은 지속적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건축 사조를 따라 지은 멋진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들이 계속해서 도시의 외관을 멋지게 치장하였다. 1561년에는 스웨덴이 탈린을 정복하였고, 1684년의 대화재 이후 뛰어난 건축가들이 톰페아(Toompea) 지역 재건의 책임을 맡으면서 요새에 능보(稜堡)를 추가하였다. 1710년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군대에 항복한 뒤 이후 반세기 동안 상업과 문화가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성을 소재지로 하는 지방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침체기에서 벗어났다. 1918년~1940년 에스토니아는 잠시 독립하였다. 하지만 다시 독일에 점령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에 도시는 심한 폭격을 받아 성 니콜라스 교회와 그 주변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훗날 성 니콜라스 교회는 원형 그대로 정교하게 재건되었고, 재건된 교회는 주위의 공간과 함께 오늘날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교회 주위의 건물은 스탈린 건축 양식(Stalinist) 으로 건설되었지만, 역사 도시로서의 규모와 크기에 어긋나지 않는다. 탈린에서 가장 두드러진 지역은 톰페아 석회암 언덕이다. 서쪽에는 성이 있고, 롱 헤르만(Long Hermann)이라 알려진 탑이 있으며, 능보 두 개와 인상적인 성벽이 서쪽과 북쪽, 동쪽에 남아 있다. 성벽 안쪽에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 있으며 이 성당은 중세 이후 여러 차례 확장, 재건되었다. 도시 저지대에는 중세 도시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으며, 거리의 상당수가 중세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훌륭한 공공건물과 개인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건축부지는 13, 14세기 이래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그 배열이 잘 유지되고 있다. 시청(1371~1404) 광장 주위에는 도시민의 주택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돌로 된 높은 박공(??)이 있는 가옥들이 있으며 이 가옥의 1층은 생활공간, 위층은 곡물 저장고·창고로 이용되었다. 돌출된 크랭크 빔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멋진 집들은 ‘위대한 길드의 집(House of the Great Guild, 1410)’으로, 두드러진 둥근 천장 지붕과 호화롭게 장식된 기둥이 있는 북부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벽 안에는 중세 교회가 있다. 복원된 성 니콜라스 교회와 성 올라프(St Olaf) 교회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회당 양식으로, 탈린 학파(Tallinn School) 특유의 매우 높은 둥근 천장과 정교한 기하학적 양식이 살아 있다. 성벽 안에는 ‘성 카트린의 도미니크 수도회(the Dominican monastery of St Catherine)’와 ‘천사장 미카엘의 시토 수녀원(the Cistercian nunnery of St Michael)’이 남아 있다. 성벽은 특질상 주요 도시 건물과 떨어진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