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본문
제목(유산명)
음자브 계곡 / M'Zab Valley
국가명
알제리
등재연도
1982
등재기준
(ⅱ)(ⅲ)(ⅳ)
분류
문화
유산면적
4000ha
위치
가르다이아의 윌라야 지방(Wilaya province of Ghardaia)
좌표
N32 28 59.988 E3?40 59.988
간략개요
음자브 계곡(M'Zab Valley)에는 10세기에 음자브 족에 의해 건설된 5개의 크수어(ksour, 요새화된 마을)가 전통적인 인간의 거주지로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각각의 도시들은 간결하고 기능적이며, 건축물들은 가족 중심 생활을 존중하는 동시에 공동체 생활을 위하여 설계되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다. 이 계곡은 그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로 인해 오늘날의 도시 설계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정당성/가치
음자브 계곡에 있는 도시들은 알제리의 수도?알제에서 남쪽으로 600㎞ 떨어진 사하라 사막의 중심에 있다. 이곳은 제한된 영역 내에 있는 특별한 집단 유적으로, 매우 초기의 인류 정착의 흔적이 고원 및 계곡에 접한 암석 비탈에서 발견되었다. 이 계곡은 드물고도 치명적인 범람에 의해 황폐해져 왔다. 그러나 11세기부터의 생활 방식과 건축 기술을 실질적으로 계속 유지해 왔다. 이것은 혹독한 자연 환경에 맞서거나 물러서야만 했던 당시 사람들의 특수한 환경과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막에서 독특하게도 동질적 집단을 구성하는 이들 도시는 정착 도시 문명의 표본이다. 이곳은 수세기 동안 결속성을 유지하면서 고유의 독창적 문화를 형성하였다. 1012년~1350년에 세워진 엘아테우프와 부누아라, 멜리카, 가르다이아, 베니이스게네의 5개 도시와 야자수 숲으로 구성된 음자브 계곡은 11세기부터의 생활 방식과 건축 기술을 실질적으로 계속 유지해 왔다. 이것은 혹독한 자연 환경에 맞서거나 물러서야만 했던 당시 사람들의 특수한 환경과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카리지즘(Kharijism)의 비타협적 순수주의를 성취한 이바디 인들의 교의는 10세기에 마그레브 지역의 일부를 지배하였다. 그들은 알제리 중부의 티아레트(Tiaret)를 수도로 하는 국가를 수립했으나, 909년에 일어난 화재로 수도가 파괴되자 처음에는 세드라타(Sedrata)에서, 마지막에는 음자브에서 국가를 유지했다. 따라서 이 유적은 이바디 문화의 전성기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유목민들이 간헐적으로 살았던 이 계곡을 이바디 인들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이바디 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방어였으므로 고립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바디 인들은 타고난 정확성과 정교함으로,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토지를 점유하고 공간을 조직했다. 암석이 노출된 부분에 있는 5개의 요새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 요새 도시에는 모스크와 요새, 묘지 및 여름 별장이 있는 야자수 숲이 모두 있다. 이들 도시에서는 전통적 인류 정착지의 예를 찾을 수 있으며 20세기까지 지속되어 온 전통 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모스크는 무기고와 곡물 창고를 가진 요새였으며 포위 공격을 당할 때 마지막 보루로서 계획되었다. 주위에 건설된 각 주택은 정사각형 모형의 표준 형태로서, 평등주의적 사상을 보여주는 반면, 묘지에서는 현자의 무덤과 소규모의 모스크가 있다. 음자브 계곡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여름이면 야자수 숲으로 이동해서 생활했다. 이 '여름 도시(summer citiy)'들은 조직이 훨씬 느슨한 편이었지만 주택의 방어적 성격은 더욱 강하여 망루도 있었다. 그리고 모스크는 묘지에 있는 그것과 비교해 미너렛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음자브 계곡의 정착지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서 푸이용(Fernand Pouillon)에 이르는 20세기의 건축가와 도시 설계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곳의 각 도시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는 작은 모스크가 남아 있어 성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모스크의 첨탑은 망루 역할을 한다. 요새로 설계된 모스크 내부에는 무기 저장고와 곡물 저장소가 있다. 공성전 때에는 모스크가 저항의 마지막 보루였다. 모스크 주위에는 주택들이 동심원 형태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표준형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건설된 이들 주택은 그 사회가 가족의 친밀함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사회였음을 보여 준다. 제한된 지역인 음자브 계곡의 유적에서는 주로 고원 및 계곡에 접한 암석 비탈 등에서 초기 인류 정착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계곡은 간혹 심각한 범람으로 황폐해지곤 했으나 종교적·사회적·도덕적 이상을 가진 당시 사람들은 11세기 초에 토지를 체계적으로 이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놀랍고도 독창적인 건축 기술을 반사막 지역에 적용하여 훌륭하게 복구하고 유지하였다. 여러 면에서 카리지즘(Kharijism)의 비타협적 순수주의를 성취한 이바디 인들의 교의는 10세기에 마그레브 지역의 일부를 지배하였다. 그들은 알제리 중부의 티아레트(Tiaret)를 수도로 하는 국가를 수립했으나, 909년에 일어난 화재로 수도가 파괴되자 처음에는 세드라타(Sedrata)에서, 마지막에는 음자브에서 국가를 유지했다. 따라서 이 유적은 이바디 문화의 전성기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유목민들이 간헐적으로 살았던 이 계곡을 이바디 인들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이바디 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방어였으므로 고립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바디 인들은 타고난 정확성과 정교함으로,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토지를 점유하고 공간을 조직했다. 암석이 노출된 부분에 있는 5개의 요새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 요새 도시에는 모스크와 요새, 묘지 및 여름 별장이 있는 야자수 숲이 모두 있다. 이들 도시에서는 전통적 인류 정착지의 예를 찾을 수 있으며 20세기까지 지속되어 온 전통 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모스크는 무기고와 곡물 창고를 가진 요새였으며 포위 공격을 당할 때 마지막 보루로서 계획되었다. 주위에 건설된 각 주택은 정사각형 모형의 표준 형태로서, 평등주의적 사상을 보여주는 반면, 묘지에서는 현자의 무덤과 소규모의 모스크가 있다. 음자브 계곡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여름이면 야자수 숲으로 이동해서 생활했다. 이 '여름 도시(summer citiy)'들은 조직이 훨씬 느슨한 편이었지만 주택의 방어적 성격은 더욱 강하여 망루도 있었다. 그리고 모스크는 묘지에 있는 그것과 비교해 미너렛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자주찾는 메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