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티파사 고고유적 / Tipasa
- 국가명
- 알제리
- 등재연도
- 1982
- 등재기준
-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52㏊
- 위치
- 티파사 주의 윌라야(Commune and Wilaya province of Tipasa)
- 좌표
- N36 32 60 E2 22 60
- 간략개요
- 티파사(Tipasa)는 지중해 해안에 있던 고대 카르타고의 무역항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3개의 작은 언덕 위에 페니키아 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집들 대부분은 중앙의 언덕에 지어졌으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티파사는 로마에 의해 정복된 후 모리타니아 왕국을 정복하기 위한 전략 기지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페니키아, 로마, 초기 기독교 시대와 비잔티움의 유적이 독특하게 모여 있고, ‘크보르 에르 루미아(Kbor Er Roumia)’라고 불리는 모리타니아의 거대한 왕실 무덤 등 토착민의 유적도 함께 존재한다.
- 정당성/가치
- 티파사에는 페니키아, 로마, 초기 기독교 시대와 비잔티움의 유적이 독특하게 모여 있고, ‘크보르 에르 루미아(Kbor er Roumia)’라고 불리는 모리타니아의 거대한 왕실 무덤 등 토착민의 유적도 함께 남아있다. 티파사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 서쪽 70㎞ 지점의 지중해 해안에 있으며, 마그레브(북서 아프리카의 지중해와 접한 지역)의 가장 독특한 고고학적 단지 중의 하나를 재편성한 것이다. 이곳은 기원전 6세기부터 서기 6세기 사이에 일어난 원주민 문명과 식민화의 과정에서 이뤄진 다양한 문화 접촉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해안 도시였던 이곳은 처음에 카르타고의 무역 거점이었으며, 이곳의 네크로폴리스는 카르타고 세력권(기원전 6~기원전 2세기)에서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것 중의 하나이다. 티파사는 그 후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고, 모리타니아 왕국을 정복하기 위한 로마의 전략 기지로 이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로마 정착촌은 도시 중심부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으며, 절벽과 기초적인 방어벽으로 보호되었다. 147년에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가 모리타니아 인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동안 로마 정착촌은 2,300㎞에 달하는 성벽을 쌓았다. 이 성벽은 정사각형 또는 원형의 탑으로 측면을 보호하였으며, 3개의 주요 입구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2개의 입구는 반원형 형태의 방어벽으로 보호되어 있고, 골(Gaul, 지금의 프랑스)이나 독일에서 발견되는 성 입구와 같은 형태이다. 이 성벽 안에는 포럼, 쿠리아 집회소, 카피톨리움이 있으며, 2개의 사원, 원형 극장, 님프 신전, 극장과 목욕탕 등이 도시 중심부와 새로운 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2, 3세기의 민가와 상업 용도의 창고, 산업 시설 등의 촘촘한 망의 중앙부에는 인상적인 공공건물 이 있다. 많은 민간 주택들은 회화과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3세기 후반에 기독교 문화가 확립되면서 티파사는 주교 좌가 되었으며, 다수의 기독교 건물이 세워졌다. 4세기에 건립된 바실리카식 대성당과 원형 세례당은 도시의 성안에 있는 서쪽의 라스 키니시아(Ras Knissia) 언덕 위에 있었다. 이곳에는 7개의 측랑이 있는 복도가 있었으며 대성당의 중앙 통로는 나중에 세분화되었다. 성곽 너머에는 넓은 기독교 묘지가 장례 예배당 주위에 퍼져 있는데, 알렉산더 주교가 그의 선임자들을 위한 최후의 안식처로 건축한 곳이다. 동쪽으로 건너편에는 성베드로 성당과 성바울 성당이 있고, 성살사 언덕 위에는 순교자에게 봉헌된 무덤과 교회가 있다. 이곳은 순례지가 되었으며, 그 주변에 또 다른 묘지가 조성되었다. 430년 반달족은 도시를 침략했으나 도시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531년에 비잔티움 세력이 이곳을 재정복한 뒤에 6세기부터 도시가 쇠퇴하기 시작해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