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국립 역사 공원 -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 / National History Park―Citadel, Sans Souci, Ramiers
- 국가명
- 아이티
- 등재연도
- 1982
- 등재기준
-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노르 지방(Departement du Nord)
- 좌표
- N19 34 24.996 W72 14 39.012
- 간략개요
- 아이티(Haiti)의 국립 역사 공원은 19세기 초 아이티의 독립 선포를 기념하는 공원이다. 상 수시 궁전(Palace of Sans Souci), 라미에르(Ramiers)의 건축물, 그리고 특히 방어용 성채(城砦)인 시타델(citadel)들은 자유를 쟁취한 흑인 노예들이 건설한 최초의 기념물로서 보편적 자유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 정당성/가치
- 아이티의 국립 역사 공원은 독립 초기의 아이티의 역사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구조물로 손꼽힌다. 이 공원은 19세기 초 아이티의 독립 선포 기념으로 설립되었다. 상 수시 궁전과 라미에르의 건축물, 특히 방어용 성채인 시타델은 자유를 쟁취한 흑인 노예들이 건설한 최초의 기념물로서 보편적 자유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타델 앙리(Citadelle Henry)와 라미에르 국립공원(Site des Ramiers), 그리고 상 수시 궁전은 1978년에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졌으며, 무성한 초목으로 뒤덮인 산봉우리에 있는 훌륭한 자연환경을 가진 국립공원 내부에 있다. 이 유산은 아이티 사람들의 독립을 기념하는 첫 기념물이다. 이 섬의 흑인 노예들은 식민지 개척자들에 대항해 14년간 투쟁했고, 1804년 1월 1일에 혁명의 최일선 지도자였던 장 자크 데살린(Jean-Jacques Dessallines)이 독립 아이티 공화국을 선포했다. 황제가 된 데살린은 즉각 그의 부하였던 앙리 크리스토프(Henry Christophe)에게 카프 아이시앵(Cap Haitien)의 28㎞ 남서쪽에 있는 라페리엘 산봉우리(Pic Laferriere)나 앙리 산봉우리(Pic Henry)에 거대한 요새를 건설할 임무를 위임했다. 1806년에 데살린이 죽자 아이티 공화국은 페티옹(Petion)이 지배하는 남부와 1811년 크리스토프가 스스로 왕위에 올랐던 북부로 분열되었다. 원래 자유 수호의 기념물로 인식되던 시타델 앙리는 독재자에 의해 요새가 되었고, 1813년이 되어서야 공개되었다. 동시에 크리스토프 왕(King Christophe, 앙리 I세)은 밀롯(Milot) 마을 근처의 성채로 이어지는 진입로 아래에 정원으로 둘러싸인 눈부신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상 수시 궁전은 거의 폐허 상태였으나 복원되었다. 오늘날 상 수시 궁전은 산악의 절경의 배경으로 다양하면서도 양립(兩立)할 수 없는 건축물들이 뛰어난 조화를 이루어,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바로크식 계단과 고전적인 테라스, 포츠담(Potsdam)과 비엔나(Vienna)를 연상시키는 계단식 정원들, 베르사유(Versailles)에서 자유롭게 영감을 얻은 수로와 연못들은, 과대한 권력욕을 가진 왕이 만든 궁전에 대해 형언하기 곤란한 환각적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군사 시설인 동시에 정치적 상징물인 시타델 앙리는 970m의 고도에 약 1㏊의 면적으로 지어졌으며, 19세기 초의 군사공학술의 모범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도면들은 아이티인 앙리 바레(Henri Barre)의 작품이다. 그러나 대포 용량을 통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연결한 돌출 부위와 정교한 급수, 저수 체계, 그리고 이 성채를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만든 거대한 방벽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토프 장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채는 필요에 따라 수비대 2,000명 또는 5,000명을 보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