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슬로바키아 카르파티아 산맥의 목조 교회 / Wooden Churches of the Slovak part of the Carpathian Mountain Area
- 국가명
- 슬로바키아
- 등재연도
- 2008
- 등재기준
-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2.56㏊
- 위치
- 프레쇼프(Pre?ov), 쥘리나(?ilina), 반스카비스트리차(Banska Bystrica)와 코시체 현(Ko?ice Regions)
- 좌표
- N49 20 10 E19 33 30
- 간략개요
-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슬로바키아 카르파티아 산맥의 목조 교회(Wooden Churches of the Slovak part of the Carpathian Mountain Area)는 16세기~18세기에 지은 로마 가톨릭 교회 2채, 개신교 교회 3채, 그리스정교 교회 3채로 구성된다. 이 유산은 라틴 문화와 비잔틴 문화가 합쳐진 종교 건축에 있어 지역 전통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우수한 사례이다. 각 건축물은 각각의 종교적 색채로 인해 바닥 배치, 내부 공간, 외관에서 차이가 있다. 이것은 교회들이 건축되었던 시기마다 각기 다른 건축적 특징과 미학적 경향을 표현하고 있는 증거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특정한 지리적·문화적 맥락에서 건축적 양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벽화, 천장, 예술 작품 등으로 장식되어 유산의 문화적 가치를 한층 더 높인다.
- 정당성/가치
- 카르파티아의 동부와 서부 경계는 유럽의 종교와 정치에서 극히 중요한 서로마 문화와 비잔틴 문화와 맞닿아 있었다. 등재된 유산은 현재 슬로바키아 공화국인 산악의 좁은 지역에 서로 다른 종교 신앙이 공존한 것을 나타낸다. 이 지역에 기독교는 중세 초기에 들어왔다. 프로테스탄트 개혁이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군사·정치·종교 상황이 복잡해지자 레오폴드 1세(Leopold I)가 통치하는 합스부르크 군주 일가는 1681년 비 가톨릭 기독교 교회가 북부 헝가리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몇 가지 ‘조항(Articles, 아티클드 교회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으로 제한을 두고 규제를 했다. 교회를 각 행정 단위에는 2채, 왕실 도시나 광산 도시 또는 접경 도시에는 1채만 세울 수 있게 제한했다. 아티클드 교회(Articled churches)는 항상 도심 밖에 세워야 했다. 카르파티안 산맥의 중부와 동부에도 비잔틴 제국의 영향력이 미쳤는데, 이는 슬라브 민족에게 고유한 그리스정교 공동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공동체들은 ‘트세르크바스(tserkwas)’, 즉 그리스정교 전통에 따라 교회를 지었다. ? 헤르바토프(Hervartov), 성 프란체스코 교회 헤르바토프 마을이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1340년부터 나타난다. 목조 교회를 세운 정확한 연대는 모른다. 원래의 고딕 제단 유물로 보면 15세기 후반에 제자리에 있었다가 1460년~1480년까지는 성 카타리나(St. Catherine)교회, 성모 마리아(Virgin Mary) 교회, 성 바르바라(St. Barbara) 교회의 제단이었다. 이 가정은 헤르바토프의 목조 교회의 내부 건축 양식과 전반적인 구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제관 내부의 스텐실로 된 기하학적 그림은 카르파니아 산맥의 폴란드 쪽에 있는 교회, 즉 트라도신(Tvrdo?in), 올세인츠 교회(All Saints Church)와 관련이 있다. 트라도신에는 1395년에 교회와 교구 목사관이 있었으나 독립 교구 목사관이 있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2년 뒤에 나온다. 하지만 이것이 그 시대에 목조 교회가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교회는 15세기 후반쯤 이전의 교회를 개조하거나 새로운 종교 건물로 지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새 교회를 위해 만든 고딕 제단이 상당히 잘 보존되었을 것이다. 1559년에 근처 영주의 저택, 오라바 성(Orava Castle)에 부분적으로 예속되었다고 하며, 동시에 목사가 예배를 올리는 교회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트라도신에서는 종교개혁이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목조 교회는 잠시 신교도들에게 넘어갔다. ? 케즈마로크(Kezmarok), 아티클드 교회(the Articled Church) 주변의 도시처럼 케즈마로크도 16세기 전반부터 헝가리 북구의 개혁 중심지였다. 이 도시 사람들은 조국을 자주 왕래하는 독일인 친척이 많은 덕분에 개혁의 가르침을 특별히 좋아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반대하는 봉기를 주도한 케즈마로크 출신 에메리쿠스 토콜리(Emericus Thokoly)가 1681년 쇼프론 의회 집회를 앞당겨 오스부르크 개신교회 건축을 허가하고 이른바 스위스 신교도 교회를 개조했다. 1687년~1688년에 케즈마로크 출신 개신교들이 지은 작은 예배소가 최초의 아티클드교회였을 것이다. 독일인 지역민과 슬로바키아인 지역민 모두가 쓰기에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임시로 지었으며 시민 대표들이 유럽 북부로 가서 재건을 위한 모금을 했다. 라코치(Rakoczy) 봉기가 있고, 1717년 4월에 반종교 개혁의 긴장이 진정되고 나서야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 교회를 크게 지었다. 조지 무테르만(George Muttermann)이 공사를 맡았다. 같은 해에 고품질의 주목과 소나무로 소박한 목조 교회를 새로 지었다. 그 교회는 외벽에 회반죽을 발랐다. 교회는 성구 보관실로 쓰던 오래된 벽으로 둘러쳐진 막사와 인접해 있었다. ? 레스티니, 아티클드 교회 즈메스칼(Zmeskals) 가문은 레스틴(Lestin) 마을 사람들이 개신교에 동조하도록 권장했다. 당시 귀족 가문의 투르조(Thurzos)가 오라바(Orava)의 성주였으며, 오라바 지역은 거의 모두 개혁 숭배자들이었다. 이 교회는 1688년~1689년에 동네 목수가 종탑 없이 소박하게 목조로 지었다. 1770년대에 재건하면서 소박한 외관을 슬래브 거푸집으로 덮었다. 내부를 덮었던 손상된 슬래브 거푸집을 1775년에 바꾸면서 무명의 화가가 신도석(nave)에 있던 17세기 말의 장식 회화에 새로운 장식 무늬를 더했다. ? 흐론세크(Hronsek), 아티클드 교회 슬로바키아에서 16세기 말에 종교개혁의 지지자와 추종자가 많이 생겼다. 특히 이웃 탄광 마을의 영향으로 게르만의 상인과 기술자들이 지역 주민과 자주 접하면서 새로운 개혁 사상을 도입하고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흐론세크의 귀족과 영주의 사람들도 개신교를 신봉했다. 쇼프론 의회가 1681년에 흐론세크에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도록 허가했지만, 신도들은 오랫동안 르네상스의 로도프(Rothov) 영지 저택에 모여 예배를 올렸다. 1725년 10월 23일 새 교회의 초석을 놓고, 신도가 점점 증가하자 종교 공동체는 부유해졌다. 1년 안에 교회를 짓고 1726년 10월 31일 엄숙하게 축성했다. 교회는 슬로바키아에서 아주 이례적인 목조 건물로 외국 건축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건축한 이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지역의 귀족들이 건축가를 흐론세크로 초빙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목조 건축이 널리 퍼졌던 독일에서 왔을 것이다. ? 보드루잘(Bodruzal),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 성 니콜라스 ‘트세르크바스(tserkwas, 교회)’는 1658년에 숭배자들이 목조로 지었으며, 이전에 여러 번 수리했는데도 슬로바키아에서 동방교회의 전례양식을 띤 교회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되어 있다. ? 라도미로바(Ladomirova), 성 미카엘 대천사 교회(St. Michael Archangel Church) 성 미카엘 교회는 동방교회의 전례 양식(그리스정교)의 동쪽 카르파티아 목조 교회의 이른바 렘코프 그룹(Lemkov’s group)에 속한다. 넓은 신도석을 수평으로 나누어 지붕 높이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 형태가 나타난다. 한 공간 위로 상당히 높은 바로크 양식의 다단 지붕을 올렸다. 이것은 렘코프 그룹이 독립적 형태의 동부 카르파티안 목조 교회를 지은 것이 아니라, 서양의 종교 건축에서 영향을 받은 보이코프스키 교회(Boykowsky’s church)의 특별한 변형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한다. 1600년에 이미 라도미로바에(Ladomirova) 교회와 교구 목사관이 있었다고 한다. ? 루스카 비스트라(Ruska Bystra), 성 니콜라스 교회 루스카 비스트라에는 18세기 전반인 1720년~1730년에 목조 교회가 세워졌다. 시민들이 전통 기술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므로, 정확한 연대, 건축가나 목수의 이름은 알 수 없다. 교회법에 따라 1750년 6월 25일에 무카체보(Mukacevo)에서 주교 미카엘 엠마누엘 올사브스키(Michael Emanuel Olsavsky)가 방문하여 교회의 ‘상태가 양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