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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유산명)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역사도시와 기술 기념물 / Historic Town of Banska ?tiavnica and the Technical Monuments in its Vicinity
국가명
슬로바키아
등재연도
1993
등재기준
(iv) (v)
분류
문화
유산면적
20,632㏊
위치
반스카슈티아브니차 구역(Town and District of Banska ?tiavnica), 반스카비스트리차 현(Region of Banska Bystrica)
좌표
N48 27 39.996 E18 53 60
간략개요
지난 몇 세기 동안 반스카 슈티아브니차(Banska ?tiavnica) 시에는 뛰어난 공학자들과 과학자들의 기여로 르네상스 양식 궁전, 16세기 교회, 우아한 광장과 성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는 중세의 광업 중심지가 도시로 성장한 예로, 주위 경관과 어우러진 도시 중심지에는 과거 채광과 야금 활동의 중요한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정당성/가치
반스카 슈티아브니차(Banska ?tiavnica)시와 부근의 기술 기념물은 광업으로 이룬 부와 그에 따른 번영의 결과이며, 기술 경관과 도시 환경이 독특한 공생 관계를 보인다.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래된 광업 도시로, 1275년에 최초로 광산 상징이 도시인장에 들어 있었다. 이 도시는 글란젠베르그(Glanzenberg)와 파라다이스(Paradajz) 산의 경사지에 있다. 기원전 10세기~8세기 청동기 후기에 이미 광석을 채굴하고 있었고 기원전 3세기~2세기 철기시대에 다시 이용했다. 분명 9세기 모라비아(Moravian) 왕조 시대에도 채굴을 했으며 중세에도 계속되었다. 1156년 기록에는 ‘광부들의 땅(terra banensium)’이라고 언급했으며, 이때 티롤(Tirol)에서 온 광부들이 정착했다. 이 지역은 15세기에 엄청나게 번창했다.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13세기 초에 도시로 승격했으며 아달베르트 4세(Adalbert IV)가 채광 특권을 부여했다. 도시를 둘러싸고 방어 시설을 세웠으며, 교구 교회를 다시 지어 요새화하고, 주택도 새로 지었다. 원래는 독립가옥 구조였으나,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의 ‘저택’으로 바꾸거나 테라스를 이어 붙였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트리니티 광장(Trinity Square)은 이 시기에 계획되고 발전했다. 그러나 15세기 말에는 광산의 물 사용에 문제가 생기고 귀금속 가격이 폭락하여 도시는 쇠퇴하고 정치적 갈등도 악화되었다. 그런데도 기술 발전은 계속되었다. 1627년에는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광산에서 화약을 처음 사용했는데, 이것이 중요한 돌파구로 작용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화약을 사용하면서 지표의 광석이 빠르게 고갈되어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깊은 광산에 수력을 이용하는 중요한 공사와 보조 과정은 진행되었다. 특히 18세기에 광석 처리를 위한 댐과 둑 체계(dam-and-weir system)가 발명되어 전 세계에 빠르게 퍼졌다. 이 시기에 광산의 이윤이 늘어나고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귀금속 광업의 최고 중심지가 되었다. 유럽 곳곳 출신의 기술자와 야금술사들이 이 도시에서 일했다. 1762년~1764년에 설립된 광산 기술학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최고였다. 19세기 말에 광산 운영은 중단되었으나, 기술학교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의 쇼프론으로 이전할 때까지 명성을 유지했다. 도시 역사 중심지는 유기적으로 발달한 밀집한 지역이었다. 고딕 초기에서 바로크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주요 유산으로는 터키 침입자를 막으려고 지은 르네상스의 신·구 성들과 시청(16~18세기), 성 카타리나교회(후기 고딕), 성모마리아교회(신고전주의), 도미니크 수도회(Blackfriars, 블랙프라이어스), 복음교회의 돔, 광산학교 건물(1892~1912), 쇠르펜베르크(Scharfenberg) 언덕의 바로크 갈보리 복합 건물(Baroque Calvary complex)이 있다. 이 도시에는 주민들의 가옥이 많은데 가장 오래된 것은 15세기에 지은 것이다. 주변 지역에는 초기 광산과 야금 활동을 하던 중요한 유적이 있다. 저수지가 서른 개나 있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벨다 보다렌스카(Velka Vodarenska)로, 1510년 이전에 건설했다. 정교한 댐이 연달아 있는데 길이가 가장 긴 것은 774.7m이며 배수로들이 연결되어 있다. 채광 작업이 있었던 유적지의 보즈니카(Voznicka) 배수 통로는 길이가 1.65㎞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1878년에 완성했다. 가장 오래된 비에베(Bieber) 배수 통로는 14세기에 건설을 시작했으며, 바이덴(Weiden)과 테레지아(Terezia) 수직갱은 각각 1519년과 1571년에 건설을 시작했다. 노천 채굴장도 몇 군데 있다. 갱 구조물과 메이어 샤프트의 기계실(1805년에 시작)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은을 함유한 납 제련소는 17세기 전반에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1872년에 현대식으로 고쳐 지금도 남아 있다. 이는 기계식 쇠줄을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공장 건물이다. 광산 박물관에는 그 지역의 장비가 많이 소장되어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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