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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벨린초나의 3개의 성과 성곽 / Three Castles, Defensive Wall and Ramparts of the Market-Town of Bellinzona
국가명
스위스
등재연도
2000
등재기준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티치노 주 벨린초나(Bellinzona-Canton of Ticino)
좌표
N46 11 35.304 E9 1 20.712
간략개요
벨린초나 지역은 카스텔그란데 성(castle of Castelgrande) 주변에 집단으로 지은 요새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성인 카스텔그란데 성은 티치노(Ticino) 계곡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 위에 있다. 카스텔그란데 성에서 이어지는 성벽들은 고대 도시를 보호하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통행로를 막고 있다. 두 번째 성인 몬테벨로(Montebello)가 요새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하고 있으며, 따로 떨어져 있는 세 번째 성 사소 코르바로(Sasso Corbaro)가 두 성의 남동쪽에 있는 외딴 바위 벼랑 위에 서 있다.
정당성/가치
벨린초나(Bellinzona)의 요새들은 알프스를 통과하는 전략적 요지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유럽 방어 구조물의 뛰어난 예이다. 이 유적은 알프스 전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세의 군사 건축물로, 세 개의 성과 한때 티치노 계곡을 완전히 차단했던 성벽 그리고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를 둘러싸서 세운 성곽으로 이루어져 있다. 벨린초나의 성과 성벽을 세운 것은 이곳이 전략적 요지였기 때문이다. 이곳의 성은 티치노 계곡을 통해 밀라노, 즉 북부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통로와 도나우 강과 그 너머까지 이르는 북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통로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최근의 발굴로 이곳에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사실이 알려졌다. 로마제국의 경계가 북쪽 도나우 강까지 올라갈 때까지 이 지역은 로마의 변경에 있는 첨병 기지였다. 북쪽 이방인의 침투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던 벨린초나는 중유럽의 평원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막는 방어 성채가 되었다. 로마제국이 쇠퇴하던 시기에 이 지역은 동고트족, 비잔틴제국, 그리고 마지막에는 롬바르드족의 수중에 들어갔다. 약 800년경 요새에 화재가 났음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 10세기에 벨린초나는 신성로마제국을 건설한 오토 1세(Otto I, 912~973)가 차지했다. 이 시기에 지은 최초의 구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1000년경에 황제는 이곳의 성과 마을을 코모 주교(Bishop of Como)에게 하사했다. 카스텔그란데 성의 내부를 나누어 가옥을 들이고 작은 요새마을로 만든 것이 이 시기였다. 12세기에는 프레데릭 바르바로사(Frederick Barbarossa)가 이 요새를 차지했다. 마을이 성채 주변으로 서서히 커지면서 요새도 강화되었다. 13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마을은 성 주변 지역으로 넓게 퍼졌다. 1300년경에 몬테벨로 성을 세웠고, 이 성도 요새 체계 안에 포함되었다. 1480년에는 카스텔 그란데 성의 남동쪽에 사소 코르바로 성을 건설되었고, 이 성 역시 방어 체계의 일부이긴 했으나 요새와 연결되지는 않았다. 벨린초나는 비스콘티가(Visconti)의 통치 하에 있을 때는 밀라노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세기 초부터는 스위스 연방이 벨린초나를 장악하려고 공격하였다. 비스콘티가는 방어를 더욱 강화했다. 그들은 티치노 계곡을 차단하기 위한 성벽을 카스텔그란데 성에서 시작하여 건설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성벽을 ‘무라타(Murata)’라고 부른다. 요새 짜임새의 합리적 개선을 위해 방어 체계의 중심인 카스텔그란데 성에 대해 더 많은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뜰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불필요한 가옥들을 없앴으며, 남쪽 측면의 구조물을 성과 연결했다. 여기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성곽들이 뻗어나갔다. 이로써 계곡을 지나는 사람들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16세기 초에 벨린초나는 스위스 연방에 속하게 되었다. 요새는 그 중요성을 많이 상실했으나 파괴되지는 않았다. 1515년에 티치노에 홍수가 나서 무라타 성벽의 많은 부분이 쓸려나갔다. 1803년에는 카스텔그란데 성을 감옥과 무기고로 이용했다. 근대 도시가 발달하며 성곽은 점점 훼손되어 갔다. 1882년에는 무기고를 확장했다. 20세기 들어 주요 복원 공사를 시작했다. 3개의 성과 요새 시설에는 카스텔그란데 성의 두리성(Chateau d'Uri), 성미하엘성(Chateau Saint-Michel), 몬테벨로성의 슈비츠성(Chateau de Schwyz), 성마르틴성(Chateau Saint-Martin), 사소 코르바로성의 운테발트성(Chateau d'Unterwald), 성바르바라성(Chateau Sainte-Barbara)이 있다. 카스텔그란데 성은 3개의 요새 중에서 가장 크며, 2개의 탑과 함께 바위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2개의 탑은 각각 화이트 타워(White Tower)과 블랙 타워(Black Tower)라고 한다. 널찍한 내부는 블랙 타워에서 3개의 뜰로 이어지는 벽으로 나누어진다. 동쪽의 화이트 타워는 보루(Redoubt)라고 알려져 있는 자체의 요새로 둘러싸여 있다. 무기고는 남쪽 뜰 서쪽의 거대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곽 안에는 예배당이 두 곳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몬테벨로성은 카스텔그란데 성의 동쪽에 튀어나온 바위 언덕에 있으며, 도시의 성벽과 연결된다. 몬테벨로성은 카스텔그란데 성과는 달리 깊은 해자에 둘러싸여 있다. 중심에는 13세기 말에 지은 아성(牙城)이 있는데, 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새로운 방어벽을 만들어서 추가로 보호 체계를 갖추었다. 사소 코르바로성은 벨린초나의 주위를 방어하는 성이 아니라 취약한 접근로를 엄호하는 역할을 하는 성으로, 사각형의 배치로 계획되었다. 북동쪽 모퉁이에 아성이 돌출되어 있고, 이것이 총안(銃眼)을 설치한 성벽보다 약간 더 높이 솟아 있다. 본래의 도시 성곽 중 ⅔ 정도가 중간 중간 탑을 두고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성문은 사라지고 없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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