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비르카와 호브가르텐 / Birka and Hovgarde
- 국가명
- 스웨덴
- 등재연도
- 1993
- 등재기준
-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스톡홀름 주(Stockholm County)
- 좌표
- N59 20 6.504 E17 32 33.504
- 간략개요
- 고고학적 유적 비르카는 멜라렌 호수(Lake Malar) 비르카 섬(Bjorko Island)에 있는데, 9세기?10세기에 사람들이 살았다. 호브가르텐은 비르카 섬 옆에 있는 아델쇠 섬(island of Adelso)에 있다. 이 두 유적지는 바이킹 시대 유럽의 정교한 무역망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역사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비르카는 또한 성 안스가르(St. Ansgar)가 831년에 세운 스웨덴의 최초의 기독교 교구가 있는 유적으로도 중요하다.
- 정당성/가치
- 비르카는 8세기?10세기까지 바이킹 무역 취락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르카와 호브가르텐(Birka-Hovgarden)에는 바이킹이 경제적?정치적으로 팽창하던 2세기 동안에 이룩한 무역망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스웨덴에서 기독교 복음화가 진행된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비르카는 스웨덴에서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선사시대 유적으로도 독특하다. 멜라렌 호수의 비르카 섬에 있는 비르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고고학적 증거는 대략 8세기 말경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르카가 870년 프랑크족의 기록에 언급된 멜라렌 호수의 비르카 섬에 있는 원래 마을인지 확실하지 않다. 스웨덴의 최초 기독교 교구는 훗날 성인으로 추대된 독일인 수도사 안스가르가 입국한 829년에 세워졌다. 루도비쿠스 경건왕(Louis the Pious)이 덴마크 사람들을 전교하기 위해 덴마크로 독일인 수도사 안스가르(훗날 성인으로 추대)를 보냈으나 그는 다시 스웨덴으로 갔으며, 그때 스웨덴에 기독교 교구가 처음으로 세워졌다. 그의 후계자 라임버트(Rimbert)가 865년에 안스가르 자서전(Vita Ansgari)을 썼는데, 자서전에는 안스가르의 성공적인 전도가 기록되었다. 독일 중세기 연대기 작가 브레멘의 아담(Adam of Bremen)이 1070년 쓴 기록에는 930년대와 1060년대의 전도 내용이 담겨 있다. 비르카라는 지명은 9세기 후반 영국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of England)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오로시우스 지리학(Geography of Orosius)의 영어 해석 판에 삽입되면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작은 섬에 있는 비르카는 현대의 개발에도 전체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31년 이래 보존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역사적 관련성 덕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알스뇌(Alsno)에서 중세 이후 비르카와 역사적 사건의 연결성은 아델쇠 섬의 호브가르텔과 비르카를 스웨덴 역사에서 유일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약 2세기 동안 비르카는 북부 유럽에서 가장 유력한 해외 상업 중심지였다. 그 범위는 슐레스비히(Schleswig)의 헤데뷔(Hedeby)/헤이타부(Haithabu), 덴마크의 리베(Ribe), 노르웨이의 쿠팽(Kaupang), 네덜란드의 도레스타드(Dorestad), 영국의 함윅(Hamwic)/사우스햄턴(Southampton) 등의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러시아부터 서쪽으로 아일랜드까지 뻗쳤다. 비르카의 정착지가 규모가 크고, 자치 의회와 법이 있는 도시에 버금가는 준도시적 지위였다는 사실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비르카가 상당히 특별했음을 나타낸다. 비르카는 헬괴(Helgo)에 있는 초기 무역 정착지 지위를 이어받은 것처럼 보인다. 헬괴는 남서쪽으로 10㎞ 떨어졌으며, 400년?800년까지 번성하였다. 고고학적 유물을 보면 비르카는 970년대나 980년대에 중요성을 잃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시그투나(Sigtuna)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비르카의 쇠퇴로 왕실 주거지가 아델쇠 섬에 세워졌다. 이 지역과 11세기 회콘 왕(King Hakon)과 관련된 문헌 자료가 남아 있다. 13세기에 벽돌로 왕실 궁전을 지었는데, 이곳은 왕실회의 장소로 선호되었다. 1279년 스웨덴의 봉건 제도가 모양을 갖춰나가는 중요한 회의를 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원래 비르카 마을은 비르카 섬 서쪽에 있다. 위험할 때는 피난지로도 사용된 언덕 요새의 성벽, 마을을 둘러싼 긴 성벽, 나무로 만든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진 건축물, 바닷가의 부두와 돌로 지은 선착장 흔적, 주 거주지 주변에 있는 묘지 3,000기와 돌로 된 장식 등은 이곳이 원래 마을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나무로 지은 건물로 이루어진 거주지 유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그 위치는 흑토(Black Earth)로 명확히 알 수 있다. 흑토는 인간이 살던 층과 이 시대 유적에서 흔히 보이는 나무로 된 구조물의 잔해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예로는 20세기에 발굴된 앵글로색슨-스칸디나비아 요크(Anglo-Scandinavian York)가 있다. 아델쇠 교회 중앙에 바이킹 시대와 중세 시대 왕족의 대저택이 있었다. 유물로는 13세기 벽돌로 지은 궁전 터, 커다란 묘지 봉분 여러 개, 초기 중세 시대의 항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