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스투데니차 수도원 / Studenica Monastery
- 국가명
- 세르비아
- 등재연도
- 1986
- 등재기준
- (i) (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1.16㏊
- 위치
- 스투데니차 마을(Village of Studenica), 크라예보 시(Commune of Kraljevo), 라슈카 지역(Ra?ka District), 세르비아 공화국(Republic of Serbia)
- 좌표
- N43 29 9.996 E20 32 12.012
- 간략개요
- 스투데니차(Studenica) 수도원은 12세기 말 중세 세르비아 주를 세운 스테판 네마냐(Stevan Nemanja)가 왕위에서 퇴위한 직후에 건축되었다. 이 수도원은 세르비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원이다. 수도원에는 주요 기념물인 성모 성당(Church of the Virgin)과 왕의 성당(Church of the King)이 있다. 이 성당은 모두 하얀 대리석 건물이며, 13세기~14세기에 그린 비잔틴 회화가 보존되어 있다.
- 정당성/가치
- 스투데니차 수도원은 세르비아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수도원에는 세르비아를 세운 초창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왕들의 유물과 수의와 스테판 프로보벤차니(Stefan Provovencani)의 관이 있다. 이곳이 왕의 막내아들인 성 사바 네마니치(St. Sava Nemanjic)가 세르비아 언어로 최초의 문학작품을 쓰고,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을 세운 곳이다. 이 교회는 비잔티움 교회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 수도원은 13세기 비잔틴 회화(1208~1209년 성모성당의 신전과 성화에 프레스코 벽화, 1233~1234년 같은 성당의 남쪽에 있는 예배당의 프레스코, 1230년 성 니콜라스 교회의 프레스코)를 보여 주는 진정한 박물관이며 14세기 비잔틴 회화(1314년 이후 왕의 성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를 보여 주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 수도원은 100여 점이 넘는 진귀한 작품을 보관하는 보고이다. 작품들은 포스트 비잔틴 양식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수도원은 스투데니차 강이 가로지르는 넓은 공간의 가운데 지점에 있다. 이곳은 지름이 대략 115m인 성벽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여 있다. 농지 저편으로는 세 겹 단층으로 된 비탈에 각종 활엽수(참나무, 라임나무,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너도밤나무, 팥배나무)와 침엽수(곰솔, 백송)가 빽빽하게 들어서 숲을 이루는데, 숲이 차지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 1183년에 스테판 네마냐가 대 주판(Great Joupan)을 설립했다. 그는 장례식을 거행할 교회를 세워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하기를 원했다. 왕은 1196년 왕좌에서 내려온 뒤 수도사가 되려고 1197년에 아토스 산으로 들어가 은둔했다. 그의 소원은 아들들이 이루어 주었다. 성모성당을 부칸(Vukan) 왕자가 완성했고, 1208년~1209년에는 부칸 왕자의 동생들이 그리스 예술가의 벽화로 성당을 장식했다. 네마니치 왕조의 묘지였던 스투데니차는 몇 세기를 거치면서 세르비아 역사에서 중심 지역으로 발전했다. 수도원 안에 원형으로 굽은 성벽의 곡선을 따라 식당과 수도사 숙소가 세워지면서 규모가 더 커졌다. 기초 토대가 넓어지자 중심부에 성소들이 더 많이 세워졌다. 원래 성당의 남쪽에 작은 건물이 여러 개 모여 있었다. 성 니콜라스 성당(1240)과 14세기 초에 세운 성 요한 성당, 그리고 유명한 왕의 성당과 성 안나 성당, 성 요아힘 성당이 1314년에 완성되었다. 동시에 신께 바치는 봉헌 예배당과 기도처 그리고 은신 기도처가 성벽 외곽의 산속에 많이 생겼다. 스투데니차의 중요 기념물인 성모 성당과 왕의 성당은 대리석 벽돌로 벽을 쌓아 축조한 성당 건물로 보존 상태가 무척 양호하다. 근처 채석장에서 가져온 대리석은 윗부분이 아름다운 금빛의 녹청색을 띤다. 조각가의 손을 거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태어난 남서 양측의 출입문과 동쪽의 커다란 창문은 경이로운 정교함이 세월의 흔적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왕의 성당에는 마카엘(Michael)과 유티키오스(Eutychios) 두 거장이 그린 가장 아름다운 벽화가 있다. 1314년 이후 이들은 비잔틴 예술의 걸작 중 하나인 성모 마리아의 생애(Life of the Virgin Mary)를 그렸다. 오호리드(Ohrid)의 페리블레토스(Peribletos) 성당에서 작품을 마친 뒤 밀루틴((Milutin) 왕을 위해 세르비아 성당에 리에비사(Lievisa) 성모의 그림, 지차(Zica), 스타로 나고리치노(Staro Nagoricino), 그라차니차(Gracanica) 등을 그리던 중 이들은 스투데니차에서 자신들만의 완벽한 표현 방식을 찾았다. 벽화는 이들의 탁월한 솜씨와 더불어 얼굴 형태를 밝은 색채로 칠해 양감과 밀도를 강조했다. 프레스코 화법(secco)으로 명암을 어둠과 밝음으로 연출한 것이 성화에 나타난 기법과 매우 비슷하다. 초기의 성모 성당은 라슈카파(派) 성당의 모형이었으며, 위대한 정교회의 특별한 분파를 구성했다. 왕실의 장례를 지내는 성당이었으며, 바니스카(Banjska)의 성당, 데카니(Decani)의 성당과 프리즈렌의 성 대천사 성당(Holy Archangels of Prizren)이 이 성당을 모방했다. 신전과 성채에 그린 벽화는 1208년~1209년에 완성된 것으로, 1205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 다른 지역에서 최초로 나타난 ‘기념물 양식’의 전형적인 기법을 보여준다. 이 벽화에서는 공간에 관한 새로운 개념과 표현 기법이 두드러진다. 이 기법은 비잔틴 예술뿐만 아니라 서양 예술사에서도 주목할 획기적인 기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13세기 후반의 치마부에(Cimabue), 두치오(Duccio), 지오토(Giotto) 같은 화가들도 이 사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