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고레 섬 / Island of Goree
- 국가명
- 세네갈
- 등재연도
- 1978
- 등재기준
-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베르데 곶(Cape Verde Region)
- 좌표
- N14 40 1.992 W17 24 2.988
- 간략개요
- 다카르(Dakar) 반대쪽 세네갈(Senegal)의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고레(Goree) 섬은 15세기~19세기에 아프리카 연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프랑스에 의해 연달아 지배를 받은 곳이다. 이곳의 건축은 노예무역상의 대저택과 노예들의 막사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이곳은 화해의 장소이자 인간 착취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 정당성/가치
- 고레 섬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기념비이다. 현재는 화해의 장소이자 인간 착취의 표본을 상기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다카르 반대쪽 세네갈의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작은 땅덩어리인 고레 섬은 15세기~19세기에 아프리카 연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약 20,000,000명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인들이 15세기 중기와 18세기 중기 사이에 이 섬을 거쳐 갔다. 이곳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연달아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이곳의 건축물은 노예무역상의 대저택과 힘든 노동을 했던 노예들의 막사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1776년 네덜란드에 의해 세워진 ‘노예의 집(House of Slave)’은 고레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예의 집이다. 이 섬에 유럽인들이 최초로 발을 내디딘 때는 1444년이며, 최초의 건물은 1536년에 포르투갈에 의해 건축되었다. 막사의 한 칸은 가로, 세로 각각 2.6m이며, 남자를 위한 시설로 성인 15명~20명을 수용했다. 노예들은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서 목과 팔은 사슬에 묶여 있었다. 쇠사슬의 중간에는 큰 쇠구슬이 달려 있어서 움직이려면 노예가 두 발과 두 손으로 들어 옮겨야 했다. 이 쇠구슬은 노예들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루에 한 번, 그것도 대개 같은 공간 안에서만 풀어 주었다. 위생 상태가 매우 불결해서 1779년에는 섬을 휩쓴 최초의 전염병은 이곳에서 발원되었다. 작은 막사에는 150명~200명의 노예를 수용했다. 이들은 길게는 3개월을 기다려야 배에 실려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갔다. 아메리카로 향하는 출발도 전적으로 노예를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었고, 대부분의 노예는 가족과 생이별을 겪었다. 어린 노예들을 수용하는 특별한 방도 있었는데, 이곳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젊은 여성 노예들은 다른 여자들과 분리되어 가장 비싸게 팔려 나갔다. 고레의 능선에 있는 대부분의 집은 예전에 노예 막사들이었는데, 지금의 사제관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젊은 여성 노예들은 노예 무역상들과의 성관계로 임신하게 되면 고레나 생 루이(Saint-Louis)에서 풀려났다. 젊은 여성들에게는 이 방법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기에, 이들의 관심은 무역상에게 몸을 맡겨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고레의 혼혈 여성들을 주로 ‘시그나르(Signare, 십자 표시를 하다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포르투갈어에서 변형된 말이다. 이들은 프랑스 서인도의 크리올 사람들처럼 고레의 귀족 계급을 형성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 노예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시설도 있었다. 남자 노예의 가치는 몸무게로 결정되었는데, 최소 몸무게 60㎏이 적정선이었다. 만약 몸무게가 기준치에 못 미치면 임시 시설에 수용시켜 놓고 세네갈 니에베(niebe) 지역에서 자라는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콩을 먹여 억지로 몸무게를 늘렸다. 경사진 복도는 오늘날 ‘돌아오지 않은 여행’으로 가는 문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한번 이 문을 통해서 바다로 끌려간 노예는 아프리카와 영영 이별했기 때문이다. 그 바로 바깥에는 야자수 나무로 만든 부두가 있어, 짐 싣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일부 노예들은 배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도망친 노예들은 멀리 갈 수 없었다. 경비대가 쏜 총에 맞거나 상어에게 바로 잡아먹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프거나 부상당한 노예들은 바다에 던져져 상어를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었다. 매수자들과 유럽의 노예 무역상들은 이 계단의 발코니에 기대서서 노예를 바라보며 근육 값을 매기고 품질을 논의했다. 각각의 아프리카 민족에 따라 그룹을 정해놓고 그룹에 따른 시세와 세분화된 분류를 하였다. 이 건물의 위층은 유럽 무역상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고레 섬의 보존과 관리는 유산의 복원과 사회경제학적 활성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 건축학적 유산의 보존은 자연환경의 보호(해안 지역)와 연관이 있으며, 기간 시설(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의 개선과도 관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