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아드 디리야의 아트 투라이프 지구 / At-Turaif District in ad-Dir'iyah
- 국가명
- 사우디아라비아
- 등재연도
- 2010
- 등재기준
- (iv)(v)(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29㏊
- 위치
- 좌표
- N24 44 2.88 E46 34 20.88
- 간략개요
-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의 리야드(Riyadh) 북서쪽에 있는 이 유적지는 사우드(Saud) 왕조의 첫 번째 수도였다. 15세기에 건립된 이곳은 특히 나즈드(Najd)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정치적·종교적 역할이 증가했으며, 아트 투라이프(at-Turaif)에 있는 성채는 사우드 가문의 권력의 중심지였다. 또한 이슬람교 내에서 와하비즘(Wahhabism) 개혁의 확산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왕궁들과 아드 디리야(ad-Dir’iyah) 오아시스 가장자리에 지은 도시 건축물들이 유산으로 남아 있다.
- 정당성/가치
- 와디 하니파 지역에 있는 인간이 남긴 최초의 자취는 아슐기(Acheulean)와 무스테리안기(Mousterian)의 잔존하는 흔적을 증거로 8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보다 조건은 덜 유리했지만, 초기에는 사냥꾼들, 후기에는 유목민들이 모여들었다. 석조 건조물과 바위에 새긴 무늬들이 서쪽의 나즈드(Najd, 네즈드(Nejd)라고도 함) 지방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5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돌담(모르타르를 쓰지 않고 자연석으로만 지은)으로 조성된 마을 유적이 리야드의 북쪽에서 발견되었다. 농사를 짓던 거주지는 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에 발달한 것으로 보이며, 낙타를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한 때도 같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아라비아는 인도양과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지중해를 잇는 활발한 대상 무역로였으며, 향료 교역로 역시 아라비아를 관통했다. 거주지는 기원전 1000년 이전에 형성되었는데, 와디 하니파에서 경작을 했지만 이에 대한 직접적인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많지 않다.로마 제국의 멸망과 기독교의 출현으로 중앙아라비아에 있던 거주지와 무역의 중심지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우물과 오아시스가 있던 지역은 가축 떼를 몰던 유목민들의 쉼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중앙아라비아에서는 예멘의 힘야르족(Himyarite)이 힘을 발휘했다. 기원전 5세기에 기독교의 바누 하니파족(Banu Hanifah)이 반도의 중심부인 타슴(Tasm) 지역을 농업 식민지로 활용했다. 이들은 칼리프 이븐 알 왈리드(Caliph Ibn al-Walid)가 이끄는 군대에 패배한 후, 634년에 이슬람교도들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6세기~7세기에 바누 하니파족은 우마이야 왕조(Umayyad Caliphate)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다시 등장해 9세기 중기까지 아바스조(Abbasid) 중심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9세기에서 10세기까지 아라비아 중앙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의 농경 발달은 천천히 이루어졌다. 아랍의 여행 수필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는 14세기에 이들의 이름을 딴 계곡에서 바누 하니파족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인구 수준은 침체되거나 하락했다. 15세기에 더 유리한 기후조건으로 바뀌면서 오아시스와 거주지에 새로운 자극을 가하자, 해안 지역에서부터 새로운 이주민들이 정착했다. 아드 디리야 지역은 바로 이 시기에 생성된 것으로 보이며, 16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발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주변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무역과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나즈드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는 우야니냐(Uyanynah)였다. 1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메카(Makkah)의 샤리프(Sharif)는 오스만 칼리프(Ottoman Caliphate)로 인식되었으며, 칼리프는 아라비아 반도를 통제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서양과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었고,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여러 지역을 점령했던 시대였다. 샤리프는 1578년에 처음으로 나즈드의 오아시스와 유목민들을 공격했다. 아라비아 내륙의 오아시스와 거주지의 발달로 인해 바누 하니파 가문의 권력은 점점 도전의식에 불타올랐다.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아드 디리야를 포함해서 세 군데 오아시스만 남겨두고 모두 바누 하니파가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자 경쟁 구도인 2개의 부족이 떠올랐고, 당사자인 알 무그린(Al Muqrin)과 알 와트반(Al Watban) 간의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오아시스의 구조는 마을 또는 구역 내부의 분리나 적대감을 반영한다. 알 와트반은 초기부터 아드 디리야를 통제했지만, 1720년에 경쟁자인 알 무그린 공동체의 무함마드 빈 사우드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으면서 경쟁자를 추방하고, 사우드 가문을 세우게 된다. 18세기에 뒤를 이은 이맘(사우드 가문의 우두머리)이 와디 하니파 한쪽의 높은 계곡을 따라 오아시스를 요새화했다. 이 시기가 아트 투라이프 성채 건설과 도시 발전으로 획을 긋는 때이다. 이교도 사회였던 나즈드에서 출생한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하브는 사회생활을 영위했고, 이슬람 전통 이념인 수나(Sunnah, 이슬람교 정통파의 교설 및 행동 규범)에 근거한 개혁을 주창했다. 그는 신과 다른 존재와의 비교가 불가능한 유일신에 대해, 그리고 이단적인 기도 행위에 대한 중재를 거듭 주장했다. 이 종교적 운동은 두 번째 이맘인 무함마드 빈 사우드에 의해 완전하게 인식되어 1745년에 국가의 도덕과 법률의 기초가 세워졌다. 아드 디리야는 그렇게 개혁을 선동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마을의 중요한 교육기관인 코란 학교들이 반도 전역에서 학생들을 끌어 모았다. 이 시기의 사우드 왕조는 나즈드의 다른 마을과 오아시스를 정복하고 있었고, 1785년에는 이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고 1790년대에는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을 장악했다. 사우드 가문의 영향력은 서쪽의 히자즈(Hijaz) 산기슭까지 확장되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아드 디리야는 강력한 이슬람 행정부의 본부가 되었다. 이곳은 유명한 판사들과 이맘들을 자랑했는데, 대표자와 이익단체들이 이맘에게 탄원하러 왔고, 30여 곳의 코란 학교가 있었다. 이곳 역시 사우드 가문의 정치적·군사적 권력의 중심이었다. 전성기 때는 군대에 100,000명까지 모여들었다. 도시는 오아시스의 발전과 관련이 있었다. 특히 아트 투라이프 성채에 있는 살와 궁(Salwa palaces)은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그러나 서양의 여행자들에 따르면,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아드 디리야의 인구는 13,000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수나 개혁(Sunnah Reform)의 성공과 사우드 가문의 군사력 확장은 오스만 칼리프의 근심을 사게 되었는데, 이 둘은 30여 년간 긴장과 반목 상태였다. 사우드 가문은 중앙 히자즈와 메카(1803)에 영향력을 내세우며 순례자들을 통제하면서 초기에 승기를 잡았다. 이 시기가 사우드 첫 왕조의 전성기였다. 오스만의 역공은 이집트에서부터 조직되었다. 오스만이 히자즈를 재정복(1813)하고 아라비아 반도의 심장부와 전쟁을 시작했다. 강력한 다국적 군대의 선두에 서서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ha)가 나즈드를 침략했다(1816~1818). 전쟁은 아드 디리야를 포위하고 정복하면서 끝났다. 도시는 1818년~1819년, 1821년의 두 차례에 걸쳐 약탈을 당했다. 사우드 가문과 와하브파(派)는 탄압을 견뎌야 했으며, 이맘 튀르키(Imam Turki)가 1824년에 사우드 가문의 권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오스만을 추방했다. 그는 두 번째 왕조를 건립했고, 리야드를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19세기 중기에 서구의 방문객들이 증언했듯이, 아트 투라이프 지역의 예전 권력이 머물던 자리는 전쟁과 유기로 거의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이 오아시스로 다시 돌아와 농사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이곳은 버려진 채 있었다. 200가구 정도가 오아시스 근처의 동쪽 거주지로 이주해 와서 옛 시가지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에 진흙 벽돌(아도비 점토)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문화부는 1982년에 전체 지역의 거주민을 수용했다. 리야드는 성장해서 이제는 아드 디리야 오아시스의 입구까지 도달했다. 도로 시설의 발달도 눈에 띈다. 지금의 아드 디리야는 도시를 세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도시 발달은 완충지역의 외곽에서 전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