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본문
제목(유산명)
마다라 기수상 / Madara Rider
국가명
불가리아
등재연도
1979
등재기준
(i) (iii)
분류
문화
유산면적
1.20ha
위치
슈멘 주(Province of Shumen) 마다라 마을(Village of Madara)
좌표
N43 17 60 E27 8 60
간략개요
사자를 무찌른 기사의 상을 나타내는 마다라 기수상(Madara Rider)은 불가리아 북동쪽 마다라 마을 부근의 100m 높이 절벽에 조각되어 있다. 마다라는 9세기경 불가리아가 기독교로 개종하기 이전인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성소였다. 부조에는 705년~801년에 일어난 일들을 새겨 놓았다.
정당성/가치
조각가는 수직 100m 절벽에 지면으로부터 23m 떨어진 지점에 위풍당당한 기수의 부조를 조각하였다. 기수는 말의 발아래에 누워 있는 사자를 창으로 찌르고 있으며 기수 뒤에는 개가 달리고 있다. 고대 트라키아(Thracian) 부족은 평원에서 살았다. 오늘날 님프 동굴로 알려진 바위 아래 넓게 열린 동굴에 고대 트라키아 인의 성소가 있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여 버려질 때까지 3세기 넘도록 요새와 넓은 농장(villa rustica)은 절벽 아래에서 번창하였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인 플리스카(Pliska)가 가까운 곳에 건설되었을 때 요새의 경사진 탑을 재건하였다. 7세기 말의 힘든 시기에 제1차 불가리아 제국와 비잔티움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였다. 불가리아인은 전투에서 승리해 나라를 세울 권리를 얻었지만 비잔티움은 자신을 로마제국의 후계자로 여겼을 만큼 이 지역이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였다. 폐위된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불가리아 칸 테르벨(Tervel)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칸은 어쩔 수 없이 불가리아 인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였다. 황제는 불가리아 군대의 지원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왕위에 복귀하였다. 이 사건은 불가리아 왕조를 개국한 지 겨우 25년 뒤인 705년에 일어났다. 이로써 비잔틴에게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비잔티움의 공물을 받았다. 마다라 기수상은 불가리아 왕조가 개국(681)하고 30년쯤 뒤인 8세기 초에 조각되었다. 이 조각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비잔틴 제국은 새로운 나라를 인정하였다. 부조는 추상적·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과 심오한 상징주의로 특별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바위가 불룩한 부분인데 부조 몇 개로 나머지보다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구성의 다른 요소들은 거의 평이한데, 바위 표면의 경사면에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각가는 기사상을 조각할 때 3가지 방법을 썼다. 첫째, 넓이 1.5㎝와 깊이 2㎝로 바위(유일하게 사자는 홈으로 둘러싸지 않았다)에 홈을 파내어 윤곽을 나타냈다. 둘째, 표면 주위의 바위를 깎아서 조각이 도드라지게 하였다. 셋째, 바위와 견주어 멀리서도 잘 알아보게 하려고 붉은색 회반죽으로 덮었다. 회반죽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흔적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명문 또한 회반죽으로 칠하였다. 조각가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게 하려고 부조의 구성을 세밀하게 하였다. 숙련된 구성 요소들은 산만한 배열이 아니라 강한 인상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배열하였다. 조각은 원래 동적·정적인 특징과 생략되거나 요약된 몸짓과 사실적인 세부의 결합을 보여준다. 조각은 특정 시점의 사건이지만 시간의 제약을 넘어 승리 감정을 암시한다. 이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은 구체성과 추상성을 결합하였으나 명문은 사건과 몇 가지 관련 상황을 간략하고, 정확하며, 간단한 정보를 조건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구성을 나누어 기록했다. 부조의 심오한 역사적 의미는 조각에 새긴 명문 덕분에 훨씬 뚜렷하게 전달되었다. 명문은 연속적인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으며, 중요한 사건과 연관이 있다. 명문은 고대 불가리아 인에 관하여 최초로 새겨진 글자이며 불가리아 역사상 가장 먼저 기록된 자료이다. 그러나 이 전통은 마다라 부조의 문자로 시작하였다. 승리를 거둔 장면이 나타내는 것 가운데 3가지 문자는 역사적 연대기의 시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부조의 의미,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제1차 불가리아 왕조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분명하게 나타내며 동맹국으로서 존중하는 국제 관계의 서막으로 여겨진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자주찾는 메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