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포토시 광산 도시 / City of Potosi
- 국가명
- 볼리비아
- 등재연도
- 1987
- 등재기준
- (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좌표
- 간략개요
- 16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단지로 유명했던 이 도시는 여러 수압 제재소에 의존하여 은광석을 채굴했다. 포토시 광산 도시(City of Potosi)는 복잡한 수로와 인공 호수 체계에 의해 물을 제공하였다. 세로 리코(Cerro Rico), 카사 데 라 모네다(Casa de la Moneda, 조폐국)가 있는 식민 도시, 산로렌초 교회(Church of San Lorenzo), 다수의 귀족 저택, 그리고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인 바리오스 미타요스(barrios mitayos)의 산업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 정당성/가치
-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에 안데스 산맥의 고도 4,000m에 있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포토시는 1542년~1545년에 이 도시의 남쪽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로 데 포토시(Cerro de Potosi) 산에서 커다란 은 광맥을 발견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포토시는 16세기경 신세계에서 세비야(Seville)로 방대한 양의 귀금속이 수입됨에 따라 스페인 화폐가 밀려들어오게 된 경제적 변화와 그에 따른 사건들과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 포토시는 1572년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Francisco de Toledo)의 방문 이후에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바로크 양식에 인디언 문화를 접목시킨 양식이 건설되어 안데스 중부 지방의 건축과 기념비적 예술 발전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쳤다. 포토시는 눈부시게 성장해 나갔다. 1572년 인디언 방법으로 건설을 시작했다. 17세기에는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한 13,500명의 인디언들과 더불어 16만 명의 식민지 주민이 있었다. 한동안 체계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광맥을 개발하다가, 1580년 페루에서 개발된 파티오(patio)라고 알려진 광산 기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후 세로 데 포토시의 은 생산은 최대에 이르렀으며, 16세기에는 여러 수압 제재소에 의존하여 은 광석을 추출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단지로 이름을 떨쳤다. 포토시는 월등히 뛰어난 현대 시대의 주요 은 광석 광산 중 하나이다. 이 도시와 이 지역에는 이러한 활동의 자취가 장관을 이루며 보존되어 있다. 산업 기반은 22개의 작은 연못 혹은 호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 강제로 유입된 수량으로 수압을 발생시켜 은 광석을 제련할 수 있는 140개의 제재소를 운영한다. 제련된 광석은 단단한 흙으로 된 가마(huayras 또는 guayras라고 불린다)에서 수은과 합쳐져서 막대기 모양으로 주조되어 왕립 조폐국(Royal Mint, 1759년에 재건되었음)의 인장이 찍혔다. 광산에서 왕립 조폐국까지의 전체 생산 과정은 댐과 수로, 제분 센터, 그리고 가마와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이와 같은 생산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으며 1825년 나라가 독립한 이후 서서히 둔화되었다. 이와 동등하게 사회적인 배경도 잘 보존되어 있는데, 기념비가 있는 스페인 지역과 아주 빈곤한 현지인 지역은 인공 강으로 구별되어 있다. 이 유적은 물이 복잡한 수로와 인공 호수 체계에 의해 제공되었던 세로 리코(Cerro Rico), 조폐국과 함께 식민지 도시, 산 로렌초(San Lorenzo) 교회, 여러 귀족 저택, 그리고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인 바리오스 미타요스의 산업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카사 데 라 모네다는 공화국 광장에 가까운 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1753년에서 1773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이곳은 현재 화폐 박물관이다. 여기에는 100개 이상의 식민지 모습과 여러 고고학적이고 민족적인 소장품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교회는 식민지 시대에 최초로 건축된 교회이며 포토시의 후원자인 엘 세뇨르 데 라 베라 크루스(El Senor de la Vera Cruz)를 소장하고 있다. 산로렌초 교회는 1548년에 건축되었으며 지역적인 바로크 풍으로 잘 꾸며진 석조 건물의 탁월한 예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