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본문
제목(유산명)
칼라트 알바레인 - 고대 항구와 딜문의 수도 / Qal'at al-Bahrain ? Ancient Harbour and Capital of Dilmun
국가명
바레인
등재연도
2005
등재기준
(ii) (iii)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32ha
위치
북부 지역(Northern Region)
좌표
N26 13 59.016 E50 31 19.992
간략개요
칼라트 알바레인(Qal'at al-Bahrain)은 전형적인 텔(tell)이다. 텔은 주거 생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만들어진 인공적인 구릉지를 말한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300m와 600m인 텔의 지층은 이곳에 인간이 계속 거주했음을 보여 준다. 이제까지 발굴된 유적은 전체의 약 25%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주거, 공공, 상업, 종교, 군사 등의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들이 발견되었으며, 이를 통해 수세기 동안 무역항으로서 이곳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12m 높이의 언덕 위에는 대규모 포르투갈 요새가 있고, 이로 인해 유적 전체의 이름이 요새를 뜻하는 ‘칼(Qal)’이 되었다. 이 지역은 딜문의 수도로 중요한 고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딜문 문명에서 비롯된 풍부한 유물이 남아 있다. 이 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수메르 문헌을 통해서만 딜문 문명이 알려져 왔다.
정당성/가치
칼라트 알바레인은 야자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고고학 유적이다. 이 유적은 전형적인 텔의 형태와 모든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데, 텔은 주거 생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만들어진 인공적인 구릉지를 말한다. 이 유적의 고고학적 발굴은 1954년~1970년 사이 덴마크 원정대의 작업을 시작으로, 그 후 1978년에 프랑스 탐험대가, 1987년 이후부터는 바레인 고고학자들이 뒤를 이어 발굴하였다. 유적의 가장 오래된 지층은 기원전 2300년경의 주거용 건물 지대로 추정되며, 해안가에 있다. 정착촌을 둘러싸고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벽돌 외벽은 이 시기에 세워졌다. 이후 기원전 1450년에 세워진 외벽은 첫 번째 벽을 강화하기 위해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주에 의하여 생겨난 다른 지층은 중앙 발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주요한 구조물은 폭 12m의 거리로, 양쪽에 큰 기념물이 있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온 카시트 인들이 이 지역을 식민지화하자, 이전 건물은 변경 확장되어 카시트 왕국의 총독 관저로 사용되었다. 같은 발굴 장소에서 같은 시기에 세워진 고급 저택, 개인 및 공용 공간과 정교한 위생 체계도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당시 세계의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이 만나 상업 활동을 펼친 중요한 항구 도시인 동시에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고대 문명 중의 하나였던 딜문 문명의 수도였다. 이 유적의 북쪽 부분에서 해안 요새가 발굴되었는데, 3세기 이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요새의 건설 자재는 이후 대규모 중세 요새를 건설하는 데 다시 사용되었고, 바레인 요새는 이런 방법으로 세워졌다. 16세기부터 이 유적이 버려지기 전까지 이곳은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텔 위에 지어진 대규모 요새에서는 이 유적을 조망할 수 있으며, 유적의 이름도 요새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레인의 대규모 요새는 여러 건축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 단계는 15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529년에 요새와 해자가 처음으로 크게 확장되어, 현대적인 포격에도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요새는 세 단계를 거쳐 현재의 형태로 건설되었다. 세 번째 건설 단계인 1561년에 섬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제노아 양식으로 만들어진 보루가 섬의 모퉁이에 몇 개 설치되고, 해자가 확장되었다. 요새가 강화되고 확장되었다는 것은 중국 및 인디아와의 해상 교역 항로가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반영하며, 호르무즈 공국, 포르투갈,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 및 오스만튀르크 간의 경쟁 관계가 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호초를 뚫고 들어가는 오래된 접근 수로로 인해 이 장소는 수세기 동안 매력적인 곳이었으나, 최근에는 모래에 의해서 완전히 퇴적되어, 조류가 높을 때 작은 배를 이용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퇴적 작용은 칼라트 알바레인을 버려두게 된 주요 원인으로, 이로 인해 4,500년 동안의 거주지는 점차 고고학적 유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딜문의 궁전은 딜문 문화의 공공 건축물의 독특한 사례로, 이 지역의 건축물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요새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6세기까지의 방어 구조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며, 모두 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 유적을 둘러싼 야자수 숲은 보호 대상으로, 기원전 3세기부터 이 지역의 전형적 경관과 농업을 보여 준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자주찾는 메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