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아보메 왕궁 / Royal Palaces of Abomey
- 국가명
- 베냉
- 등재연도
- 1985
- 등재기준
-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48㏊
- 위치
- 주 주(Province du Zou)
- 좌표
- N7 10 60 E1 58 60
- 간략개요
- 1625년부터 1900년까지, 12명의 왕이 강력한 아보메 왕국(Kingdom of Abomey)의 왕좌를 이어 갔다. 12명의 왕 중에서 자신의 구역을 소유했던 아카바(Akaba) 왕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같은 벽토 담 지역 안에 세워진 궁전을 소유했다. 이 궁전들은 공간과 재료의 사용에 있어 이전의 궁전과 조화를 이루었다. 아보메 왕궁은 노예 무역 등을 장악하고 중앙 집권적인 권세를 자랑한 왕들의 치세를 떠올리게 하는 훌륭한 역사적 유물이다.
- 정당성/가치
- 문화적 전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게 마련이지만, 아보메 왕궁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보여 주는 특별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의식과 왕실 의례를 위해 여전히 정기적으로 사용되는 궁전은 단순히 그것이 보여 주는 과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글자로 쓰인 문서가 없는 시대에, 과거의 독특한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얕은 돋을새김(장식적인 형태로 사용된)은 폰(Fon) 사람들과 제국의 진화, 군대의 승리와 왕의 힘에 대한 찬양을 보여 주며, 또한 폰 사람들의 신화, 풍습과 종교적인 의식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1625년 폰 사람들에 의해 설립된 아보메(Abomey, 이전의 ‘Dahomey’) 서아프리카 왕국은 강력한 군사적·상업적 제국으로 발전했다. 17세기 말에 이름을 다호메로 바꾸었으며, 1695년부터 1900년까지 12명의 왕이 다스리면서 아프리카 서쪽 해안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부의 근원은 유럽의 노예 상인에게 전쟁 포로를 파는 노예 무역에 있었다. 12명의 왕은 수도, 아보메의 왕족 땅에 호화로운 궁전을 세웠다. 같은 벽토 담으로 둘러싸인 지역 안에 있는 이 궁전들은 공간과 재료의 사용에 있어 이전의 궁전과 조화를 이루었다. 각각의 궁전들은 모두 구조적으로 동일한 특징을 지녔다.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3개의 뜰이 있다. 바깥뜰은 종교적 의식과 군대의 행진을 위한 장소이고, 안뜰과 사적인 뜰은 뚜렷한 두 지대로 된 왕과 왕비의 주거지로 이어진다(궁전 지역과 북북서쪽, 아카바 아캅 궁전 지대). 수세기 동안 궁전 단지는 거처, 설비, 벽화, 조각, 그리고 복잡하고 얕은 돋을새김으로 가득했다. 흙으로 만들어진 돋을새김은 가장 중요한 궁전의 정면에 장식 요소로 사용되었다. 돋을새김을 통해, 아보메 왕국의 군대에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용기와 용맹이 남성에 필적하는 여전사 무리가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통치자로서의 왕의 권력과 특징을 상징하는 신화적인 동물도 돋을새김되어 있다. 1892년 프랑스의 점령에 항거하기 위하여 아보메의 왕 베한진(Behanzin)은 궁전을 포함한 도시를 태우라고 명령했다. 초기 왕의 궁전 보석의 홀(Salle des Bijoux)에는 화재에서 살아남은 폰의 부유한 문화에 대한 돋을새김이 되어 있는데, 이는 역사적 기록으로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희귀한 구조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