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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로이 마타 추장 영지 / Chief Roi Mata’s Domain
국가명
바누아투
등재연도
2008
등재기준
(iii) (v) (vi)
분류
문화
유산면적
886㏊
위치
좌표
S17 37 41.05 E168 10 39.79
간략개요
로이 마타 추장(Chief Roi Mata) 영지는 바누아투(Vanuatu)에서 처음으로 등재된 세계 문화유산이다. 이 유적은 17세기 초기의 것으로, 에파테(Efate) 섬과 렐레파(Lelepa) 섬, 아르토크(Artok) 섬의 세 군데에 있다. 이곳에서는 17세기 초 바누아투의 마지막 추장이었던 로이 마타의 삶과 죽음을 엿볼 수 있다. 유산에는 로이 마타가 살던 집과 죽은 곳, 로이 마타의 공동묘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추장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그가 신봉하고 설파했던 도덕적 가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구전과 고고학적 유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로이 마타의 사회 개혁과 갈등 해결 방식이 이 지역 사람들과 관련하여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살펴볼 수 있다.
정당성/가치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정착지는 3100년 전 무렵의 토기가 발견된 에파테 섬이다. 지금부터 2900년 전이기는 하지만, 로이 마타 영지에도 비슷한 공동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에서 추장제도가 이 지역에 도입된 시기인 지금부터 1200년~1000년 전보다 앞서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에 토기 생산이 중단된 것으로 보이며, 추장제도는 서폴리네시아(western Polynesia)에 있던 유사한 제도와 관련이 있다 바누아투인들의 삶은 1452년에 발생한 북쪽 셰퍼드(Shepherd) 군도의 쿠와에(Kuwae) 화산 분출로 인해 파국을 맞이했다. 1600년 즈음에 대(大) 에파테 전쟁(Great Efate War)으로 알려진 장기간의 전쟁은 로이 마타가 내놓은 갈등 해결방식으로 끝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중 하나로, 추장들이 에파테 섬에서 셰퍼드 군도로 탈출한 일이 있었는데, 일부 추장들은 로이 마타가 일종의 사회 혁명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로이 마타가 죽은 후 아르토크 섬에 묻히자 망가스(Mangaas)의 정착지는 버려졌고 다시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는데, 갈등이 시작된 부족이 흩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소수 부족 추장의 자손들은 19세기 말에 렐레파 섬에 거주하고 있었다. 1840년 무렵에는 유럽과 접촉하기 시작했으며, 20년 후에는 선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인들이 정착했다. 펠스(Fels) 동굴은 1870년대부터 영국 해군 군함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또한 1898년경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그 후 발생한 전염병으로 에파테 섬과 인근 섬들의 주민 중 10분의 1이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1980년 독립 때까지 유럽 정착민들이 갖고 있던 빈 땅에 조금 더 큰 정착지를 몇 개 만들어 살 수밖에 없었다. 독립 후에는 에파테 섬의 55%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임대되었다. 1957년부터 이 지역의 구전과 망가스, 펠스 동굴, 아르토크의 로이 마타 묘지에 있는 고고학적 유물에 대해 조사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아르토크 섬에 대해 짧은 조사가 이루어졌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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