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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유산명)
아이가이(베르기나) 고고 유적 / Archaeological Site of Aigai(modern name Vergina)
국가명
그리스
등재연도
1996
등재기준
(i) (iii)
분류
문화
유산면적
1,421㏊
위치
마케도니아 중앙부(Region of Central Macedonia) 이마티아 주(Prefecture of Imathia)
좌표
N40 28 17.004 E22 19 5.988
간략개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첫 수도 아이가이(Aigai)는 19세기 때 그리스 북부의 베르기나(Vergina)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중요한 유적은 모자이크와 채색된 스터코(stuccoes, 치장벽토)로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왕궁과 300기 이상의 분묘가 있는 고분군이며, 이들 분묘 가운데 일부는 기원전 11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대형 고분에 안치된 왕족 분묘 가운데 하나는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의 것으로 밝혀졌다.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의 모든 도시를 정복하여 아들인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the Great)가 고대 그리스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정당성/가치
베르기나는 전통적인 도시 국가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제국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변하는, 유럽 문명의 중요한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만한 여러 왕족의 무덤과 그곳에서 나온 풍부한 부장품들이 이 점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베르기나에서 발견된 벽화는 매우 수준이 높으며,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피에리아 산맥(Pierian Range)의 북쪽 구릉지에 있는 이 고대 도시는 아르기베(Argive) 산맥의 마케도니아 인들이 이마티아(Emathia) 평원을 넘어 북쪽으로 영역을 넓혀 갈 당시, 페르디카스 1세(Perdiccas I)가 전통에 따라 건설한 로어 마케도니아(Lower Macedonia) 왕국의 수도 아이가이였다. 할리아크몬(Haliakmon) 강 인근의 분묘를 통해 입증된 것처럼, 이미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년)에 이 지역에는 사람들이 정착해 있었다. 300기 이상의 분묘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아이가이가 초기 철기 시대(기원전 1100~기원전 700)에 상당히 중요한 장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와 왕궁 소재지로서 아이가이는 고대(Archaic period, 기원전 800~기원전 500)와 다음 세기 동안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여러 무덤에서 출토된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의 분묘 부장품들은 동부 이오니아와 남부의 그리스 중심지들이 상업적·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5세기 말에는 아르켈라오스(Archelaus) 왕이 그리스 전역에서 예술가와 시인, 그리고 철학자들을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기원전 4세기에는 행정 중심지가 펠라(Pella)로 이전했으나, 아이가이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신성한 도시, 전통적 종교 중심지와 왕릉 소재지로서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극장에서 암살됨으로써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왕위를 계승했던 것도 바로 여기였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뒤를 이은 디아도코이(Diadochoi, 후계자들이라는 뜻의 그리스 어) 간의 격렬한 패권 다툼으로 도시는 엉뚱하게 피해를 입었으며, 기원전 168년, 마케도니아 왕국이 로마에 정복된 뒤 더욱 경시되었다. 그러나 재건되어 제국 시대 초기까지 존립했지만, 기원후 2세기와 5세기 사이에 이곳의 인구는 피에리아 산맥(Pierian Range)의 구릉지에서 점차 평원으로 이동해 갔으며, 고작 팔라티치아(Palatitsia, 궁전)라는 이름의 작은 정착지만 남아 이전의 중요성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거대한 왕궁이며,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쪽 고원에 자리 잡았다, 2층 또는 3층 높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돌로 된 도리아 양식 돌기둥이 좌우에 옹위하는 형태의 대형 야외 공간이 중심에 있다. 방들은 종교나 행정 및 정치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북쪽 면에는 이웃한 극장의 무대와 마케도니아 평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던 커다란 갤러리가 있었다. 갤러리는 모자이크 바닥, 회반죽을 칠한 벽, 정교한 양각 타일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었다. 기원전 4세기 후반부터 그 극장은 궁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궁전 바로 북쪽에는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의 작은 신전들이 곁들여진 에우클레이아(Eukleia) 여신의 성소가 있다. 신전들에는 마케도니아 왕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각상 대좌가 들어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고분군이다. 3㎞ 이상 이어지는 고분군 중앙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300기가 넘는 분묘가 있는 고분군으로, 고분 중 일부는 기원전 11세기 것이다. 이 고대 도시의 북서쪽에는 기원전 6세기와 5세기부터 내려져 오는 마케도니아 왕조의 왕족들과 조신들이 매장된 중요한 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와 장례 부장품들이 발굴되었다. 으리으리한 대리석 왕좌가 나온 기원전 340년경의 고분은 필리포스 2세의 어머니인 에우리디케(Euridike)의 묘로 추정된다. 가장 인상적인 장례 유적은 지름 110m, 높이 13m 규모의 인공 봉분인 대고분으로, 이 고분 아래에서는 네 왕족의 정교한 묘가 발견되었다. 이 중 하나의 묘에는 유명한 화가인 니코마코스(Nikomachos)의 작품으로 보이는 페르세포네(Persephone, 지옥의 여왕)의 겁탈을 그린 벽화가 있다. 그 가운데 묘 2기는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아서 부장품들이 풍부하다. 제2호 묘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이자 마케도니아의 권력을 확립했던 필리포스 2세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유골은 약 11㎏ 무게의 순금관 안에 들어 있었다. 제2호 묘를 장식하고 있는 프리즈(frieze)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프리즈는 에레트리아(Eretria) 출신의 유명한 궁정 화가인 필로크세노스(Philoxenos)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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