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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유산명)
오악사카 역사중심지와 몬테 알반 고고 유적 / Historic Centre of Oaxaca and Archaeological Site of Monte Alban
국가명
멕시코
등재연도
1987
등재기준
(i) (ii) (iii)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375ha
위치
오악사카 데 후아레스 주(Etat de Oaxaca de Juarez), 오악사카(municipalites de Oaxaca), 소소코틀란과 쿠일라판(Xoxocotlan et Cuilapan)
좌표
N17 3 42.984 W96 43 18.012
간략개요
오악사카(Oaxaca)는 스페인 식민지 이전의 1500여 년 동안 올멕(Olmecs), 사포텍(Zapotecs), 믹스텍(Mixtecs) 종족이 살았던 지역이다. 이곳의 계단식 관람석과 댐, 운하, 피라미드, 그리고 산을 깎아서 만든 몬테 알반(Monte Alban)의 인공 산은 신성한 지형을 상징하고 있다. 오악사카의 주변 도시는 스페인 정복 시기의 그리드 패턴(grid pattern, 격자형 도시 계획)을 잘 보여 준다. 견고하고 두껍게 지은 건축물들은, 지진 발생 빈도가 높은 지형?자연환경의 특징에 적응하여 건축된 것으로 보석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다.
정당성/가치
오악사카에는 1529년 스페인에 의해 건설된 역사 지구, 마을에서 남서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몬테 알반의 선(先) 히스패닉(pre-Hispanic) 고고 유적지, 그리고 12㎞ 떨어진 곳에 있는 16세기에 도미니카 사람들이 거대한 수도원을 짓기로 계획했던 쿠일라판(Cuilapan) 계곡 등 3지역의 독특한 문화유산이 있다. 몬테 알반은 오늘날 멕시코 중부 지역에 있으며 프레-콜럼비언 시대(pre-Columbian,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에 의식의 중심지로서, 초기에 이곳은 북쪽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는 아즈텍과 남쪽에 있는 마야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펠로타 코트(pelota court, 경기장), 거대한 신전들, 무덤들과 얕은 돋을새김으로 상형문자를 새긴 비문 등이 있는 몬테 알반은 전 고전기와 고전기 동안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찬란한 문명의 독창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몬테 알반은 1,000년 이상 오악사카의 전체 문화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근래의 오악사카는 16세기 식민 도시의 완벽한 전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곳의 기념비적인 유산은 뉴 스페인(New Spain)으로 알려진 곳에서 가장 풍부하고 일관성 있는 유물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오악사카 계곡과 몬테 알반 단지에 등재된 200개의 선(先) 히스패닉 고고 유적지 중에서 올멕, 사포텍, 믹스텍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이 가장 두드러지는 발전을 보여 주고 있다. 오악사카의 서쪽에는 아트좀파(Atzompa), 엘갈로(El Gallo), 몬테 알반의 세 주요 유적지가 있다. 몬테 알반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도 500m 높이에 건설된 도시로, 아메리카 대륙에 꽃피운 최초의 도시 문명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몬테 알반 1기에 유입된 올멕의 문화적 영향은 로스 단산테(Los Danzantes)에서 발굴한 140점의 조각된 석조 슬라브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이것은 이후에 건설한 중앙 산책로 등의 여러 건축물에 재사용되었다. 의식을 지냈던 중심지의 주요 건물들은 몬테 알반 2기~3기(기원전 300년~기원후 100년)에 세워진 것으로, 300m의 길이에 측면이 단으로 살짝 돋은 산책로가 남북으로 이어져 있었다. 2기는 이 유적지의 도시화에 해당되는 시기로, 언덕의 측면에 계단식 관람석을 건설하고, 도관과 댐을 건설하는 등 환경 조성을 우선시했다. 800개의 마을에 거주민은 50,000명 이상이었다. 테오티우아칸 문화는 초인적인 존재나 장엄한 건축 양식에서 드러나는 추상적인 면을 보면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주로 넓은 개방 공간에 거대한 기둥들과 웅장한 양식으로 건축물을 축조했다. 그러나 계곡에 자리를 잡아 도시 배열이 용이했던 테오티우아칸과는 달리, 몬테 알반은 1,500년의 기간 동안 여러 단계로 나누어 단단한 산을 깎아내면서 도시를 조성했다. 사람이 만든 계단식 관람석과 산책로는 이 지역이 지닌 고르지 못한 지형적 특성을 살리면서 신성한 피라미드, 인공 둔덕, 언덕과 같은 새로운 지형으로 대체시켰다. 800년경 산에서 내려온 믹스텍 종족이 계곡에 살던 사포텍 종족을 위협할 무렵, 도시의 윤곽은 전체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몬테 알반의 도시 개발 최종 단계인 4기~5기는 신성시했던 올멕을 요새화된 도시로 변형하는 시기이다. 1400년경, 믹스텍의 족장은 의식을 지내던 곳에 있던 고대의 무덤을 모두 땅속에 묻으라고 지시했다. 1932년 몬테 알반에서 발굴된 무덤 7호는 재사용된 사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이다. 무덤 7호에서 진귀한 500점의 보물 무더기를 발굴했는데, 이름하여 ‘몬테 알반의 보물(Treasure of Monte Alban)’이다. 이 보물은 현재 주립 오악사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복자가 침입하기 전, 아즈텍 문명은 후악사카(Huaxyacac)를 근거지로 해서 계곡을 잠시 장악했다. 1521년에 스페인이 같은 지역에 요새 형태의 안테케라 데 오악사카(Antequera de Oaxaca)를 세웠을 당시에도 이곳의 이름은 남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현대 도시가 당시의 역사적 중심지를 보존하고 있는데, 총 1,200개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도시의 개발로 인해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주요 종교 건축물들인 성당,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산 아구스틴(San Agustin), 산 필리포네리(San Filipo Neri), 솔래다드(Soledad) 등과 최고 귀족의 저택인 코르테스(Cortes) 저택, 그리고 다른 거주지를 잇는 도로들이 융화되어 조화로운 도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온전히 유지되어 온 건축물들을 통해서는 옛 식민 도시의 이미지를 다시 복원하고 있다. 정교한 건축물의 품격 또한 이 도시의 19세기 건축의 특징이며,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arez)의 생가가 있어 1872년에 도시의 이름을 ‘오악사카 데 후아레스(Oaxaca de Juarez)’로 채택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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