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치첸이트사 선(先) 스페인 도시 / Pre-Hispanic City of Chichen-Itza
- 국가명
- 멕시코
- 등재연도
- 1988
- 등재기준
- (i) (ii) (ii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유카탄(Etat de Yucatan) 티눔(Municipalite de Tinum)
- 좌표
- N20 40 0.012 W88 35 60
- 간략개요
- 치첸이트사(Chichen-Itza)의 선(先) 스페인 도시는 유카탄(Yucatan) 반도의 가장 위대했던 마야(Maya)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거의 1000년 가까운 역사를 통틀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 도시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세계관과 우주관에 대한 마야-톨텍(Maya-Toltec)인의 통찰력이 석조 건축물과 예술 작품에 드러나 있다. 마야 건축 기술과 중부 멕시코에서 유입된 새로운 기법들이 서로 융합된 치첸이트사의 유적들은 유카탄의 마야-톨텍 문명의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곳에는 전사의 신전, 엘 카스티요(El Castillo), 엘 카라콜(El Caracol)로 알려진 나선형 관측소 등 여러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 정당성/가치
- 치첸이트사는 10세기∼15세기에 유카탄에 꽃피운 마야-톨텍 문명 중 가장 위대한 고고 유적이다. 치첸이트사 건축물은 유산 중 북쪽 그룹에 속하는 기념물들은 중앙 아메리카 건축의 확실한 걸작이다. 이들 건축물은 대형 경기장, 쿠쿨칸(Kukulkan)의 신전과 전사의 신전 등인데, 이 건축물들은 균형미와 건축의 정교함, 화려한 조각 장식 등에 있어서 걸작이다. 치첸이트사의 건축물은 10세기∼15세기경 유카탄 문명의 전 문화 지역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메리다(Merida)와 칸쿤(Cancun)이 연결되는 길의 중간 지점에 있는 치첸이트사는 유카탄의 최북단의 주요 고고 유적지이다. 300㏊ 이상의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가장 풍부한 건축물들로 덮여 있다. 중앙아메리카 문명과 스페인 정복 이전 문명의 중요한 두 시기를 설명하기 때문에, 이곳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이다. 도시는 세노테(cenote) 또는 체네스(chenes)라는 천연 동굴 가까이에 건설되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크톨록(Xtoloc)의 천연 석회 웅덩이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멍이 뚫린 듯하지만 아래에서는 넓은 지하수 웅덩이가 있다. 지방의 기록에 따라 인간의 정착이 시작된 시기를 다르게 보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415년∼435년이라고 주장하고, 일부에서는 455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치첸비에조(Chichen Viejo)로 알려진 지역의 주변에서 성장한 도시는 이미 수녀원과 성당, 아캅 지브(Akab Dzib), 치찬 초브(Chichan Chob), ‘배심원 사원’, ‘남성 사원’과 같은 훌륭한 기념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건축물들은 6세기∼10세기 마야의 독특한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이후에 푸크(Puuc) 언덕의 남부와 북부 지방에서 선호하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치첸이트사의 두 번째 정착지는 역사가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인데, 10세기경 멕시코 대평원에서 남쪽을 향해 이동한 톨텍 전사들과 관련이 있다. 툴라의 왕인 세 아카틀 토필친 케찰코아틀(Ce Acatl Topiltzin Quetzalcoatl), 즉 마야어로 쿠쿨칸(Kukulkan)은 967년∼987년에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한다.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톨텍 침입자들이 지역민들을 흉악하게 다루어 예속시켰는데, 이는 5세기 후 마야인들이 말한 ‘신성한 책’의 연대기에 드러난 기록이다. 톨텍은 인간 제물의 의식을 강요했으며, 이것이 종교적 의식으로 남아 있었지만 거의 거행되진 않았다. 이어서 유카탄 문명이 정복되면서 마야-톨텍 문명의 전통적인 새로운 기법이 발달했고, 이것은 문화 변용의 현상을 상징하고 있다. 치첸이트사는 이런 문명 간의 융합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남쪽에 있는 카라콜은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로 원형탑 안에 있는 나선형 계단에서 그 이름을 따왔고, 북쪽에는 케찰코아틀 피라미드와 엘 카스티요가 있다. 중요한 기념물 단지가 조성된 엘 카스티요 둘레는 계단식 구조로 대형 경기장, 해골 기단으로 불리는 촘판틀리(Tzompantli), ‘재규어 신전’과 ‘독수리의 집’이 북서쪽에 놓여 있다. 북동쪽 방향에는 전사의 신전, 수천 개에 달하는 기둥 군(群)과 시장, 경기장들이 있고, 남서쪽에는 ‘최고 제사장의 무덤’이 있다. 오늘날 마야-유카텍으로 알려진 양식은 고대에 작은 지역의 벽이나 아치형 지붕에 쓰인 스테레오토미(stereotomy, 돌과 같은 고형 물질을 특정 모양으로 절단하는 기술) 기법에 톨텍의 장식 요소가 일부 포함된 새로운 건축 양식이다. 화려한 정밀묘사로 그린 전쟁 장면 외에도, 중부 멕시코의 영향력은 케찰코아틀의 깃털 달린 뱀의 유사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기둥과 구조물에 거대한 파충류의 두상을 주제로 조각을 생생하게 새긴 것에서 발견된다. 멕시코의 영향을 받은 다른 예는 비의 신 착물(Chac-Mool)의 조각상들이 비스듬히 반쯤 기댄 자세인데, 이것은 전형적인 멕시코 기법이다. 10세기∼15세기 말까지 이어진 치첸이트사의 역사는 복잡다단하다. 군사정권의 독점적 권한는 이 도시가 욱스말(Uxmal)에 속하는 마야판(Mayapan) 연합과 합병된 후 누그러진 듯 보인다. 13세기 말에 치첸이트사에는 뚜렷한 건축물이 세워진 예가 없으며, 마야판 세력이 약해지자 도시는 급속도로 몰락했다. 1556년에는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 대주교가 사실상 버려진 유적을 방문해 다양한 건축물들이 간직한 전설들을 기록했다. 유적은 1841년까지 발굴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