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테오티우아칸의 선(先) 스페인 도시 / Pre-Hispanic City of Teotihuacan
- 국가명
- 멕시코
- 등재연도
- 1987
- 등재기준
- (i) (ii) (i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산마르틴 데라 피라미드(San Martin De Las Piramides)와 테오티우아칸 데 아리스타(Municipalities of Teotihuacan De Arista)
- 좌표
- N19 41 30.012 W98 50 30.012
- 간략개요
-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북동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은 ‘신들이 창조한 도시’라는 뜻으로, 이곳은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이다. 1세기~7세기에 세워진 이 도시의 특징은 기념물의 방대한 규모이다. 특히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의 신전과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는 기하학적 · 상징적 원칙에 따라 세워져 있어 유명하다. 중앙아메리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문화 중심지 중 하나였던 테오티우아칸의 문화적 · 예술적 영향은 이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까지 널리 확장되었다.
- 정당성/가치
- 테오티우아칸의 고고 유적지는 최소한 25,000명의 거주민이 있던 도시이다. 테오티우아칸과 계곡은 고대 멕시코의 특이한 전(前) 도시 구조를 입증해 주고 있다. 위대한 메소아메리카 고전주의의 최초의 영향은 멕시코 중심 지역 전체에 퍼졌다. 또한 300년~600년 동안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Kaminaljuvu 유적)같이 먼 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다. 거대한 ‘사자(死者)의 거리(Avenue of the Dead)’을 따라 독특한 모양을 한 신성한 기념물군과 테오티우아칸에게 경배하던 장소들이 있다. 테오티우아칸에게 경배하던 장소는 태양의 피라미드, 달과 케찰코아틀의 피라미드, 케찰마리포사 궁전, 재규어, 야야후알라(Yayahuala)와 그밖의 장소들이다. 이 건축물들은 프리-콜럼비안 시대(pre-Columbian,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에 주로 의례 중심지의 뚜렷한 사례를 구성하고 있다. 이 앙상블은 거대한 규모와 우주의 조화에 기초한 엄격한 배치에 있어 독특한 예술적 업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앙상블이다 테오티우아칸의 예술은 멕시코의 고전 문명 중에서도 가장 발전한 형태이다. 건축물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연속적인 측면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절제되고 엄격한 기하학의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는, 이례적으로 풍부하게 채색·조각으로 장식된 깃털 달린 뱀, 케찰코아틀의 피라미드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48km지점에 자리한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중 하나로 알려졌다. 1864년에 첫 탐사가 이루어졌으며, 발굴 작업은 1884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일부 기념물들이 1905년~1910년에 복원되었는데, 그중 태양의 피라미드는 발굴 과정에서 최초의 탐사자 레오폴도 바트레스(Leopoldo Batres)에 의해 독단적으로 5층으로 재구성되었다. 1962년 이후부터는 국립고고학역사연구단(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ia e Historia)에 의해 조직화되어 발굴 작업이 활발해졌고, 발굴 지역의 주변 환경에 대한 관리 감독과 유적 식별 작업을 좀 더 세밀하고 엄격한 방법으로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괄목할 만한 발견을 하였는데, 그중에는 팔라시오 드 케찰마리포사와 1971년 태양의 피라미드 밑에서 발굴된 있는 동굴 등이 있다. 테오티우아칸 계곡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서력 기원 이전부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인 현재의 장소에 밀집하여 정착한 시기는 1세기~7세기이며, 이들은 점진적으로 인상적인 규모의 신성한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도시는 화재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7세기 동안 내내 버려졌다. 최초 성소의 위치, 즉 태양의 피라미드는 극점에 있을 때 태양의 위치가 엄밀하게 계산되었고 공간 조직을 가늠한 천문원리를 적용하여 건설하였다. 사자의 거리는 태양의 신전의 주요한 축선에서 직각으로 만나도록 설계되었다. 북쪽 성채(Citadel)로 가는 달의 피라미드와 남동쪽으로 가는 케찰코아틀 신전은 각각 행렬 거리의 경계가 되었다. 행렬의 거리의 너비 40m이고 총 길이는 2㎞에 달한다. 도시는 전성기 시절에 무려 36㎦넓이까지 확대되었다. 고고학자들은 테오티우아칸 3시기 즉, 300년~600년까지를 전성기로 보고 있다. 의식을 행하던 중심부의 외곽은 눈길을 끌만한 규모임에도 전체 표면의 10%만이 발굴되었다. 발굴된 곳은 궁전과 주거지역으로 드러났다. 주거지역 가운데 테티틀라(Tetitla)·아테텔코(Atetelco)·야야후알라(Yayahuala)와 서쪽에 있는 자쿠알라(Zacuala) 그리고 솔랄판(Xolalpan), 테판티틀라(Tepantitla)와 동쪽에 있는 다른 건축물이 큰 관심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