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말라카 해협의 역사 도시, 믈라카와 조지타운 / Melaka and George Town, historic cities of the Straits of Malacca
- 국가명
- 말레이시아
- 등재연도
- 2008
- 등재기준
- (ii)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148ha
- 위치
- 좌표
- N5 25 17 E100 20 45
- 간략개요
- 말라카 해협의 역사 도시인 믈라카와 조지타운은 500년 이상 동안 말라카 해협에서 동서 교역과 문화 교류를 하며 발전하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영향으로 정부 건물, 교회, 광장, 요새 등 유형·무형에 해당하는 다문화적 유산을 지니게 되었다. 믈라카의 역사는 초기 단계가 15세기에 말라카 왕국으로 시작하여, 16세기 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통치 기간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조지타운의 주거 및 상업용 건물은 18세기 말부터 영국이 지배했음을 보여 준다. 믈라카와 조지타운 두 도시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과 문화 도시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 정당성/가치
- 역사를 통해 말라카 해협은 해상 무역상과 동서양 간 접촉을 위한 통로가 되었다. 강력한 왕국과 도시가 생겨났고, 사방에서 온 이민과 유입된 강한 영향력이 전형적인 특징이었으며, 다문화 정체성에 기여하였다. 14세기 후반이나 15세기 초반에는 도시와 말라카 왕국이 세워졌다. 작은 어촌이 옛 항구를 무색할 정도로 큰 항구와 대형 상점으로 성장하였다. 중국 황제의 지원을 받아 왕은 시암을 독립적으로 겨우 유지하였다. 소수 인종 집단이 많았고, 대략 80개나 되는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보고되었다. 다양한 소수 민족 사회 사람들은 이러한 시기에 세워진 도시에 자신들만의 구역에서 살았다. 이슬람이 유입되어 왕이 술탄의 지위를 가졌을 것이며, 그로써 믈라카는 이슬람을 연구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1511년 포르투갈 인들이 믈라카 시를 점령하였다. 현재 세인트폴 언덕(St. Paul’s Hill)이 세워졌고, 총독과 주교용 궁전, 교회 5개, 병원 2개, 대학 1개와 다른 공공건물들이 이 지역에 지어졌다. 모스크와 무덤이 훼손된 것은 이슬람이 약화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독립된 소수 민족 거주지와 다문화주의 전통은 지속되었다. 믈라카는 말레이 인접 국가들로부터 빈번히 침략 당했다. 다른 유럽인은 말라카 해협을 통해 항해를 했고, 그 지역에 관심을 가졌으며, 1641년 네덜란드인이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들은 1619년에 자바를 정복했고, 바타비아(Batavia, 자카르타)를 동양의 거점 수도로 만들었다. 믈라카는 그 경쟁 상대는 아니었지만, 반도 내에서 그들의 본거지가 된 후 다시 18세기의 말에 동남아시아 최고의 수출입 항구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단지 기존 인프라를 장악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세인트 존 언덕(St. John’s Hill)에 새로운 요새를 구축하고, 1650년 예전 총독 저택은 스타트후이스(Stadthuis, 의사당)으로 개조되었다. 천주교 성당인 성 베드로 교회(St. Peter’s Church)는 1710년에 세워졌으며, 1753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교회인 믈라카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 Melaka)가 세워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 중이던 1795년~1818년에 믈라카는 영국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그때 페낭(Penang)/조지타운은 얼마 동안 남아 있었고, 처음에 경쟁 대상으로 믈라카를 평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요새는 정문만 남기고 파괴되었다. 몇 년 지난 1824년에 믈라카는 결국 영국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조지타운은 영국이 1786년에 세웠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달리 그들은 자유무역정책을 채택하였고,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을에 정착해서 수출 작물을 생산하도록 권장하였다. 섬을 통제하기 위해, 대통령을 벵골에 있는 동인도회사 관할에 두었다. 그리하여 1826년 싱가포르, 믈라카와 함께 동남아시아의 해협식민지의 일부가 되었다. 몇 세기 동안 두 도시의 발전은 말레이, 유럽, 이슬람교, 인도와 중국의 영향력을 포함하는 다양한 소수 민족과 문화 전통을 통합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언어, 종교 관습, 요리법, 의식과 축제를 포함하는 풍부한 무형 문화유산으로 표현되어 인간과 문화가 잘 짜인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1979년에 믈라카에서 보존 지역이 처음으로 확인되었고, 1985년에 개선되었다. 1988년 국제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세인트폴 언덕 지역이 유산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믈라카 주가 문화유산의 보호 및 보존법을 제정하였는데, 1993년에 새로 설립된 믈라카 박물관 법인(Melaka Museums Corporation)에서 관장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보존 신탁 기금이 형성되었고, 2001년부터 이 기금이 믈라카에서 선택한 건물 보존 사업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조지타운에서 보존 지역에 대한 정책은 1970년대 초반에 도입되었다. 이로써 처음으로 보존 계획이 도시 계획의 일부가 된 것이다. 1980년대 중반, 그 섬의 급속한 도시 변화는 공공 보존 운동으로 발전하였고, 도시 보존 및 계획에 관한 국제회의가 그러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일조하였다. 1990년대 초반 일부 파괴 및 보존 프로젝트가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주 정부 주관으로 실시한 최초의 주요 건물 복원 작업은 1993년의 시에드 알아타스 맨션(Syed Al-Attas Mansion)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