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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시기쇼아라 역사 지구 / Historic Centre of Sighi?oara
국가명
루마니아
등재연도
1999
등재기준
(iii) (v)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트란실바니아 지역(Region of Transylvania) 무레슈 주(Mure? County)
좌표
N46 13 4 E24 47 32
간략개요
트란실바니아의 색슨족(Saxons, 작센인)으로 알려진 독일의 장인과 상인이 설립한 시기쇼아라(Sighi?oara, Schassburg)는 몇 세기 동안 중앙 유럽의 변두리에서 전략적·상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작고 요새화된 중세 도시의 멋진 예이다.
정당성/가치
중앙 유럽의 라틴·오리엔티드(Latin-oriented) 문화와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정교 문화 사이에 놓여 있으면서 국경 지역 내의 작은 요새 도시가 된 시기쇼아라는 트란실바니아 색슨족의 빠르게 사라져 가던 문화에 대한 눈에 띄는 증거였다. 트란실바니아 중심부의 고원 위에 발달되어 있는 이 도시는 트르나바(Trnava) 강이 굽이지는 부분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었다. 13세기에 색슨족으로 알려진 독일의 장인과 상인들은 헝가리 군주들에게서 트란실바니아를 정복하고 스텝(steppe) 지대 사람들 사이에서 카르파티아 산맥의 경계를 지켜 내도록 명령을 받았다. 이들은 구석기 시대에 점령의 흔적이 남아 있던 ‘시티 힐(City Hill, 언덕 위의 도시)’에 정착했으며, 1241년에 타타르 인의 침입 후에 요새화된 이곳 정착지에 성벽을 쌓아 방어를 강화하고 탑을 세워 경계했다. 이후에 전체 고원 주변까지 이 정착지를 확장했다. 1280년에 ‘카스트룸 섹스(Castrum Sex)’로 알려진 이 도시는 장인들의 강력한 길드(guild) 덕분에 상업 활동에 활기를 띠었다. 각 길드는 탑을 건설해 방어를 책임졌다. 이 도시의 중요성이 알려진 것은 ‘키비타스(Civitas, 주교 도시)’라는 이름을 얻고 트란실바니아의 두 번째 정치 독립체가 되던 해인 1367년이었다. 1421년~1526년에 터키 인들의 침략 위협을 받으면서 이 도시는 방어벽을 높였다. 시기쇼아라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Sighi?oara)는 가파르게 경사진 고원 전체에 넓게 퍼져 요새화된 유적으로 이루어졌고, ‘시티 힐’과 그 아래로 숲이 우거진 경사가 있는 저지대 도시가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두 구역은 중세 도시의 역사적인 경계에 대응되는, 분리할 수 없는 그룹을 형성했다. 19세기 정착지와는 별도로, 시기쇼아라 역사 지구는 건축 부지를 세분화하고, 이 유적의 연속적 개발 단계에 따라 일부 변동이 있었던 중세 도시 기본 구조의 원형뿐만 아니라 가깝게 집들이 일렬로 늘어선 좁다란 거리망을 유지했다. 이 성채는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통로를 통해서 끊어지는, 세로로 늘어선 세 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2층이나 3층으로 되어 있는 장인들의 단순한 집들은 돌이나 벽돌로 지어졌으며, 벽에는 착색된 초벽칠(roughcast)이 되어 있고 높은 기와지붕이 있었다. 이 집들은 거리를 따라 나 있는 좁은 파사드, L자 또는 U자 형태의 레이아웃, 주거 탑, 연결된 방 등의 독특한 구조로 계획되었다. 가장 오래된 집으로 추정되는 빽빽하게 밀집한 집들은 측면의 아치 형태로 된 출입구 복도가 특징적이다. 토지의 작은 부지들로 인해 이 출입구 복도는 때로는 2채의 인접한 집이 서로 공유하게 된다. 대부분의 집에는 여전히 배럴 아치(barrel-vaulted) 형태의 지하실, 목조 천장이나 벽돌로 된 아치가 있는 1층 작업장, 또한 그 위층의 거실 등이 있다. 몇몇 파사드는 바로크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듯 더욱 귀족적인 건축 양식을 나타낸다. 시타델레인(Citadel Lane)과 헤르만오베르트(Hermann Oberth) 광장 사이에 한데 모여 있는 집들은 경사 진 지면의 지형에 꼭맞게 배열된 각 층들에 의해 더욱 돋보인다. 길이 93m인 벽과 일정한 간격의 탑들에 둘러싸인 시타델 고원은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건축상의 서로 다른 단계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밧줄 제작자의 탑(opemakers' Tower)과 도살자의 탑(Butchers' Tower) 사이의 8~10m 높이까지 솟아 있는 이 고원은 역사 지구에서 가장 잘 보존된 부분이다. 원 14개의 탑 가운데 9개의 탑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모양으로 구별이 가능하다. 인상적인 시계탑은 1556년까지 회합을 계속 가졌던 시 의회의 책임 아래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이 도시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다. 남쪽 요새 벽 중앙에 있는 이 시계탑은 역사 지구에 있는 세 광장을 모두 차지하고 있으며, 위쪽 도시와 아래쪽 도시를 연결하는 계단을 보호하고 있다. 이제는 그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섰다. 시기쇼아라 역사 지구에 있는 기념물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트란실바니아의 전형적인 고딕 양식 건축물인 성 니콜라스(St Nicholas) 교회이다. 언덕에 있으므로 175개의 굽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다다를 수 있다. 1642년부터 목조 지붕으로 보호되었다. 이 파사드의 장식 조각은 중앙 유럽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1886년에 붕괴된 도미니코 수도원(Dominican monastery)에 속하는 성 마리아(St Mary) 성당은 장식이 없는 파사드로 이뤄진 통로(hall) 형태의 13세기 고딕 양식 기념물이다. 시타델의 남서쪽에 있는 도니미코 수도원과 쿠퍼스 탑(Coopers’Tower), 북쪽에 있는 로크스미스 탑(Locksmiths' Tower)과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iscan convert)의 교회는 거대한 신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1886~1888) 건물과 로마 양식의 가톨릭교회(1894) 건축으로 이어졌다. 기준 (v): 시기쇼아라는 라틴계 문화의 중부 유럽과 비잔틴-그리스 정교회 문화의 남동부 유럽 사이의 경계 지역에 건설된 작은 요새 도시의 뛰어난 사례이다. 이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고 유지했던 사회층인 색슨 족이 이주하면서 이들의 건축 유산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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