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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비블로스 / Byblos
국가명
레바논
등재연도
1984
등재기준
(iii) (iv) (vi)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마운트레바논 주(Governorate of Mount Lebanon) 주베일 시(City and district of Jbeil)
좌표
N34 7 9.012 E35 38 51
간략개요
페니키아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인 비블로스(Byblos)는 수많은 문명들의 유적이 발견되는 곳이다.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지중해 지역의 전설과 역사와 긴밀하게 관련을 맺어왔다. 비블로스는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페니키아 문자의 역사와 전파와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정당성/가치
페니키아 문명의 초기 모습을 아주 잘 보여 주는 비블로스는 청동기시대부터의 지중해 세계의 도시화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페니키아인들이 구블루(Gublu, 성경에서 그발(Gebal)로 불림)를 그들의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여긴 것은 비블로스 유적이 신석기시대 이후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거주해 왔던 곳이기 때문에,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거주지는 약 7,000년의 역사를 가진 어촌 마을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곳에서 작은 가옥들이 수없이 많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3200년 무렵, 공간 구조가 새롭게 형성되어 언덕에는 돌 벽을 가진 가옥들이 많아졌고, 그때까지 주거지 내에 두던 토장 항아리들이 주거 지역 변두리로 옮겨졌다. 큰 공동묘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장례 의식이 관찰된다. 기원전 2800년 무렵, 고도의 구조를 갖춘 도시 ‘그발’이 출현했다. 이 도시는 전설에 의하면 엘(El) 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거대한 성벽, 대로와 작은 도로망을 갖추고 있었다. 비블로스에는 항구가 발달해 건축 및 해군 막사 건설에 꼭 필요한 자재였던 백향목,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데 쓰이는 삼목 기름을 항구를 통해 이집트로 수출했다. 또한 파라오가 풍성한 제물을 바치던 여신의 도시, 바알라트 게발(Baalat-Gebal)의 신전과 같은 큰 건축물도 건축했다. 이 도시의 흔적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지만 기원전 2150년경, 아모리족(Amorite)의 습격을 받아 불에 타 버리는 바람에 재가 두텁게 쌓여 원래의 높이를 덮어 버렸다. 재는 어떤 곳은 50㎝ 높이까지 쌓였다. 약 200년 후, 이 도시는 재건되어 새로운 신전이 건설되었다. 기원전 1900년~1600년에 레셰프(Reshef) 신에게 바친 오벨리스크 신전이 당시에 가장 유명했다. 이 무렵 이집트와 상업적 결속이 더 강해졌다. 청동기시대 중반 무렵의 9개 왕릉은 당시의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히람 왕의 묘(베이루트 국립박물관) 석관에는 페니키아인의 문자가 새겨진 비문이 있었는데, 이것이 도굴꾼에게 넘어가 글자가 널리 전파되면서 더 이상 글자가 필경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상업 도시였던 비블로스는 아시리아·바빌로니아·아케메네스, 또는 그리스까지 연이어 지배할 수 있었다. 로마 시대에 도시의 상업 기능은 쇠퇴하였으나 종교 기능은 탁월해져서 2세기에 유명했던 사모사타의 루키안(Lucian of Samosata)이 이끄는 순례자 무리가 이 신전들로 몰려왔고, 신전은 거듭 재건되고 장식되었다. 비블로스는 비잔틴 시대에 들어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636년 이후 아랍이 점령하던 동안에도 계속 쇠퇴하였다. 이 도시가 이전의 중요성을 되찾았던 시기는 십자군전쟁 때였다. 제노바인들이 상업을 이끌면서 지블레(Giblet)는 번창한 수송 항구가 되었다. 하지만 성벽과 십자군이 주둔한 거대한 구조물, 세례자 요한 교회 및 그 교회의 세례소 등이 입증하는 그러한 재건축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비블로스는 19세기가 되기까지 서서히 쇠퇴해 갔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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