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 / Bolgar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Complex
- 국가명
- 러시아
- 등재연도
- 2014
- 등재기준
- (ii)(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424㏊
- 위치
- 좌표
- 간략개요
- 본 유산은 볼가(Volga) 강이 카마(Kama) 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남쪽 연안, 즉 타타르스탄(Tatarstan)의 수도 카잔(Kazan)의 남쪽에 있다. 서기 7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존재했던 볼가 볼가르(Volga-Bolgars) 문명의 초기 정착지이자 13세기 이른바 ‘황금군단(Golden Horde)’ 즉 금장한국(金帳汗國, 킵차크한국)의 첫 수도였던 중세 도시 볼가르(Bolgar)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볼가르 유적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문화 교류, 그리고 문명·관습·문화전통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수세기에 걸친 유라시아 지역의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본 유산은 역사적 지속성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특별한 증거이며, 서기 922년 볼가 볼가르국이 이슬람을 수용하였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유산으로서 오늘날까지 타타르 무슬림에게는 성스러운 순례지로 남아 있다.
- 정당성/가치
- 탁월한 보편적 가치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은 카마 강과 합류하는 볼가 강의 남쪽 연안 지역에 위치한다. 서기 7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존재했던 볼가-볼가르 문명의 초기 정착지였던 중세 도시 볼가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볼가르는 13세기에 이른바 ‘황금군단(Golden Horde)’ 즉 금장한국(또는 킵차크한국(Kipchak 汗國)) 최초의 수도였으며, 뒤이은 카잔한국(Kazan 汗國)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계속 해서 남아 있었다. 본 유적지에는 유서 깊은 해자 및 성곽, 그리고 지금은 다른 용도로 변용된 옛 모스크, 미나레트(minaret, 모스크의 첨탑), 여러 기의 영묘, 목욕탕, 칸의 궁전 및 성지 유적을 포함하는 다수의 종교·문화 구조물 등과 함께 한국(汗國)의 공간적 맥락이 보존되어 있다. 볼가르 유적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문화 교류, 그리고 문명·관습·문화전통의 형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유라시아 지역의 수세기에 걸친 변화상을 보여준다.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은 역사적인 지속성과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특히 볼가 볼가르국, ‘황금군단’, ‘카잔한국’, 그리고 러시아 국가 시대 문화전통의 상호 영향에 대한 특별한 증거를 제시한다. 아울러 볼가르는 항상 무역·경제·문화·정치적 소통의 교차로로 자리 잡았으며, 유목 문화와 도시 문화가 교류했던 증거를 보여준다.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은 서기 922년 볼가 볼가르국이 이슬람을 수용했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유산으로서 오늘날까지 타타르 무슬림에게는 성스러운 순례지로 남아 있다. 등재기준 (ii):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은 역사적으로 잇따라 등장한 여러 갈래의 문화 전통과 지배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류와 재통합을 증명하며, 이러한 사실이 건축과 도시 계획, 조경 디자인에 미친 영향 속에 반영되어 있다. 본 유산은 투르크, 핀-우고르(Finno-Ugric), 슬라브의 전통을 위시한 여러 갈래의 문화적 교류를 증명한다. 건축 양식의 교류에 관한 증거 중에는 산림이 우거진 지역에서 발견되는 목조 건축물, 투르크어 계열 부족이 남긴 스텝(steppe, 대초원) 요소, 이슬람과 유럽-러시아 양식을 채택한 오리엔탈 풍 등을 포함한다. 등재기준 (vi): 볼가르는 오늘날까지 타타르 무슬림, 좀 더 광범하게는 유라시아 무슬림 집단에게 이 지역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본 유적이 지니는 종교적·정신적 가치는 해마다 순례 시즌이 돌아오면 명백하게 증명된다. 볼가르 유적지는 서기 922년 볼가 볼가르국이 이슬람을 국교로 공식 채택한 뒤 처음 자리를 잡던 곳인 최북단 지역에서 형성된 무슬림 영향권, 나아가 보다 광범한 지역적 경계 내에서 문화와 건축의 발달에 미쳤던 지속적인 영향에 관한 증거를 제공한다. 완전성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은 부지 내 고원지대와 도시를 둘러싼 성채 외곽 지역을 역사적으로 잇따라 차지하였던 여러 문명의 흔적이 다층적으로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적이다. 아울러, 부지 북쪽의 비교적 낮은 지대와 볼가 섬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발달한 볼가 볼가르국의 초기 촌락도 모두 포함한다. 아직까지 고고학적 자원의 상당 부분이 어떤 증거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본 유적지의 고고학적 발굴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어떤 중요한 유물이 출토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 과거 3세기에 걸친 개발이 야기한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본 유산의 완전성이 위협받아 왔다. 등재 당사국은 1년에 한 번, 순례 기간에 순례자들을 위해 설치되는 텐트촌을 유산의 중심지역에게 철거함으로써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본 유적지에서 새로운 기반시설의 건축이 이미 완성 단계에 도달하여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향후 유적에 대한 접근 또는 관광객을 위한 해설을 할 때는 보다 신중한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어떤 접근을 시도하기에 앞서, 자문 기구와의 협의 하에 세계유산센터(World Heritage Centre)의 승인을 얻기 전 유산영향평가(Heritage Impact Assessments, HIA’s)를 먼저 실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정성 본 유적지 내에서 건축물과 다른 침입 요소의 수가 상당하여, 전체적인 유적군에 영향을 미쳐 왔으며, 심지어 볼가 볼가르 문명을 입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가 훼손된 사례마저 확인되었다. 재건축과 부분 개축을 포함하여 본 유산에서 행해진 과거의 보존 활동도 이에 포함된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복원 조치가 너무 광범하고 명확한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자재와 내용, 기술과 배경의 측면에서 진정성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반면, 본 유산을 구성하는 성곽과 해자는 완벽한 상태로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거대한 규모의 고고학 유적지 역시 향후 계속된 조사연구 및 발굴이 필요하다. 아울러, 타타르 무슬림에게, 특히 최근에 증축된 종교 구조물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은 그 입지와 정신‧정서의 관점에서, 종교적인 기준점으로서의 볼가르의 역할은 그 진정성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타타르족 무슬림들은 이 지역 이슬람교의 탄생지로서 볼가르를 경외하여 왔으며, 해마다 본 역사고고유적을 찾아 순례여행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