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라이헤나우 수도원 섬 / Monastic Island of Reichenau
- 국가명
- 독일
- 등재연도
- 2000
- 등재기준
- (i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바덴뷔르템베르크 주(Baden-Wurttemberg) 프라이부르크(Friburg) 지역
- 좌표
- N47 41 55.4 E9 3 40.7
- 간략개요
- 콘스탄츠 호에 있는 라이헤나우 섬(Island of Reichenau)은 베네딕트 수도원의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724년 설립된 이 수도원은 당시에 종교적·지성적·예술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수도원 안의 성모 마리아 성당을 비롯하여 성 마커스 교회, 성 게오르게 교회와 성 베드로 교회, 성 바울 교회는 주로 9세기~11세기에 지어졌으며 중부 유럽 중세 초기 수도원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들 교회의 벽화는 이곳에서 일어난 훌륭한 예술 활동을 입증하고 있다
- 정당성/가치
- 라이헤나우의 유적은 중세 초기 위대한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종교적·문화적 영향력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라이헤나우 수도원은 이곳의 훌륭한 벽화와 사본 채식(彩飾)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이, 이곳이 10세기와 11세기의 유럽 예술사에서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단계의 괄목할 만한 건축 요소를 보유한 이곳의 교회들은 9세기~11세기의 중부 유럽 수도원 건축의 뛰어난 사례를 보여준다. 콘스탄츠 호 북쪽에 있는 라이헤나우 섬의 역사는 1,000년 동안 수도원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초대 수도원장인 피르민(Pirmin)은 라이헤나우에 성모 마리아, 성 베드로, 성 바울을 기리는 수도원을 지을 책무를 맡았다. 그는 섬 북쪽 연안의 미텔첼(Mittelzell)에 목조로 건축한 첫 번째 수도원과 교회의 북쪽 면에 접하는 3개의 부속 건물이 있는 회랑의 건축을 감독하였다. 전체 건물은 746년까지 점차적으로 석재로 재건되었다. 상당한 토지가 수도원에 기부되었고, 수도원 토지의 중요한 부분은 농업용으로 쓰였다. 수도원은 문학·과학·예술을 교육하고 창조하는 유명한 중심지가 되었다. 이 교회는 황제 하인리히 3세(Henry III)가 참석한 가운데 1048년에 축성되었다. 베로나의 전 주교였던 에기노(Egino)는 라이헤나우 섬의 서쪽 끝인 니더첼(Niederzell)에 성 베드로 성당을 짓고 799년에 축성하였다. 교회 건물은 두 차례에 걸쳐 재건되었으며, 9세기와 10세기에 일부가 개조되었다. 수도원 건물은 호수 근처 북쪽에 있다.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초반에 교회가 재건되었고, 동쪽의 두 탑은 15세기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울에 봉헌된 이 교회는, 교구 교회가 되었고 18세기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되었다. 수도원장 하이토 3세(Heito III)는 섬의 동쪽 부분인 오버첼(Oberzell)에 성 조지(게오르게 성인)의 두상 유해를 기리기 위해 성 게오르게 교회를 세우고 896년에 성화되었다. 그리고 교회에 하이토 3세가 로마 여행에서 가져온 성 조지 두상 유물을 보관하였다. 미텔첼에 있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의 특징은 측랑 3개와 이를 마주보는 트랜셉트(transept, 십자형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이다. 이 수도원에는 직사각형의 서쪽 탑이 있고, 그 옆에는 11세기 중반에 지어진 좁은 현관과 넓은 서쪽 트랜셉트가 있다. 이 높은 탑 밑에는 애프스(apse, 교회 동쪽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가 있고, 그 앞에는 제단이 세워져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네이브(nave, 십자형 구조 교회의 몸통 부분)는 목조 지붕으로 덮여 있고, 동쪽 트랜셉트 부분으로 개방되어 있다. 트랜셉트의 교차점은 동일한 넓이의 아치 4개와 성가대석으로 경계가 지어진다. 816년에 봉헌된 성가대석은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화려한 고딕 양식의 성가대석 옆에는 성물 보관소와 보물실이 있다. 수도원은 17세기에 교회 남쪽에 세워졌으며, 현재는 시청과 사제관이 있다. 니더첼에 있는 성 베드로와 성 바울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조물로 3개의 복도가 동쪽 끝에서 3개의 반원형 측랑과 만나는데, 측랑은 2개의 큰 종탑 옆, 중앙 구역에 숨겨져 있다. 중앙부의 측랑에는 1104년~1134년에 그려진 벽화가 세 줄로 배치되어 있다. 전신에 후광이 있는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4대 복음서의 저자, 교회의 수호성인, 어린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 위에는 사도들을 그린 열이 있고, 다른 열에는 예언자들을 그렸다. 12세기 벽화의 다른 조각들도 아직 남아 있는데, 예수의 수난주기를 나타내는 벽화 조각들은 특히 북쪽 예배당에 있다. 오버첼의 성 게오르게 교회 안에는 초기 로마네스크 시대의 2층 현관과 서쪽 애프스가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교회로 연결된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교회는 3개의 통로와 탑을 올린 복잡한 구조의 서쪽 성가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랑의 벽에는 오토만 르네상스기의 벽화, ‘그리스도의 기적’을 장식했다. 벽화의 각 장면은 장식 띠로 테두리를 둘렀다. 회랑의 아치 사이에는 채색한 흉상이 있으며, 창문 사이에는 사도들의 조상이 있다. 현관 1층에 있는 성 미카엘 예배당 역시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벽화로 장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