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본문
제목(유산명)
에보라 역사지구 / Historic Centre of Evora
국가명
포르투갈
등재연도
1986
등재기준
(ii)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알렌테주(Alentejo) 주, 에보라(Evora) 지구
좌표
N38 34 23.016 W7 54 28.008
간략개요
‘박물관 도시’라고 불리는 에보라(Evora)는 로마 시대에 시작되었고, 15세기에 포르투갈 왕들이 거주하면서 황금기를 맞았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건설된 주택은 아줄레주(azulejo, 채색 타일)로 장식하고 흰색으로 색칠했으며, 연철 발코니로 장식한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그 기념물은 브라질에 있는 포르투갈 건축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정당성/가치
에보라는 1755년 지진으로 리스본이 파괴된 이후 포르투갈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도시이다. 에보라의 도시 경관은 브라질의 살바도르 데 바이아(Salvador de Bahia)와 같은 유적에서 볼 수 있듯이 브라질에 있는 포르투갈 건축의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에보라는 알렌테주(Alentejo) 주의 주도이며 포르투갈 남부의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도시의 서쪽, 남쪽과 동쪽에 새로운 시가지를 건설하였지만, 이 박물관 도시는 전통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유지해 왔다. 프랑스 기술자인 니콜라 드 랑그르(Nicolas de Langres)의 설계에 따라 17세기에 보방(Vauban, 프랑스 축성 전문가) 양식으로 지은 성벽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북쪽 방향의 전원 풍경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에보라는 켈트족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2,000년에 걸친 역사가 반영되어 형성되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는 리베랄리타스 줄리아(Liberalitas Julia)라고 불렀고, 다른 유적이 파괴되었지만 디아나(Diana) 신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서고트족이 점령한 기간에 로마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기독교 도시가 되면서 그 지역을 재정비하였다. 1165년에 끝난 무어인의 점령기에는 원래 있었던 방어 체계가 더 개선되었다. 요새 성문과 고대 카스바(Kasbah, 성채)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지명은 레콘키스타(reconquesta, 국토회복운동) 이후 북동쪽 모우라리아(La Mouraria) 지역에 남아 있던 마그레브(Maghreb) 주민을 나타낸다. 중세시대에는 많은 건물이 생겼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대성당이다. 1186년에 착공하여 13~14세기에 완성했다. 그러나 에보라가 황금기를 맞은 때는 그곳에 포르투갈 왕이 거주하는 기간이 잦았던 15세기였다. 그때 수도원과 왕궁들이 여기저기에 생겼다. 왕가의 교회였던 성 클라이리(St Claire) 수도원, 이름이 같은 왕궁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프란시스쿠(Sao Francisco) 성당, 상 주앙(Sao Joao) 복음교회가 있는 오스로이오스(Os Loios) 수도원 등이 있었다. 이런 훌륭한 유적들은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이거나 기존 건축물 안에 건축되었고, 16세기 주요 건축물에 남아 있는 포르투갈 풍의 건축 양식인 마누엘(Manueline) 양식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알카자르(Alcazar) 유적에 있는 바스투(Basto) 백작 궁전, 칼라트라바(Calatrava) 기사단 교회, 카르무(Carmo)와 그라사(Graca) 수도원, 산투안탕(Santo Antao) 교회, 칼바리오 산의 산타헬레나(Santa Helena do Monte Calvario) 수도원 등이 있다. 16세기는 고대 양식으로 주요 도시계획을 실시한 시기였다. 수로(아구아 다 프라타, Agua da Prata)는 건축가 프란시스쿠 데 아루다(Francisco de Arruda)가 1537년에 건축하였고, 수많은 분수의 물이 수로로 흘러들었다. 그중에서도 제랄두(Geraldo) 광장의 분수가 가장 유명하다. 또한 에보라의 지적·종교적인 영향력이 시작되었다. 예수회가 1553년부터 가르쳤던 남쪽 지역의 성령(The Holy Spirit) 대학은 북쪽 지역의 코임브라(Coimbra) 대학과 견줄 만했다. 그러나 1759년에 폼발(Pombal) 장관이 예수회를 추방하면서 에보라는 급격하게 쇠퇴했다. 에보라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왕실 명령으로 건립된 기념비적인 유물 이외에도 다른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코르도빌(Cordovil) 저택, 가르시아 드 헤젠드(Garcia de Resende) 저택 같은 16세기 부호의 저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도시의 독특한 특징은 16세기와 17,18세기에 지은 작은 건축물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흰 타일로 덮은 지붕이나 좁은 골목에 늘어선 테라스가 있는 나직한 흰색 집들이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구 도시 중심부에는 중세의 모습이 남아 있고, 다른 지역에는 17세기까지 도시가 집중적으로 성장한 증거를 담고 있다. 연철(鍊鐵) 재료와 아줄레주로 장식한 건물은 수도원이나 궁전은 물론 일반 주택에서도 아주 훌륭하고 매우 매력적이다. 또 기후와 유적에 적합한 건축 형태로, 통일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자주찾는 메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