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라호르 성과 샬리마르 정원 / Fort and Shalimar Gardens in Lahore
- 국가명
- 파키스탄
- 등재연도
- 1981
- 등재기준
- (i) (ii) (ii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좌표
- 간략개요
- 라호르(Lahore) 성과 샬리마르(Shalimar, Shalamar로 표기하기도 함) 정원 유적은 샤자한(Shah Jahan,1627~1658) 황제 시대에 전성기였던 찬란한 무굴 문명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성채에는 모자이크와 금박으로 장식된 대리석 궁전과 모스크가 있다. 라호르 시 가까이에 정자, 폭포, 그리고 장식이 된 커다란 연못 등 3단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정원은 어떤 것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다.
- 정당성/가치
- 라호르의 요새와 샬리마르 정원은 무굴 문명의 대표적 유산이며, 그것이 창조된 이후 펀자브 지방과 인도 아대륙 전역에 오랫동안 심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독특한 예술의 실현이다. 도시 북서쪽에 있는 라호르 성채는 라호르 시와 똑같은 신비로운 기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라호르의 기원은 라마 신의 아들인 로브 왕자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성채에 대한 첫 역사적 기록은 11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3~15세기 무굴인의 손에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한 이 성채는 아크바르 황제 시대(1542~1605)부터 본격적으로 재건과 재편이 이루어졌다. 가장 아름다운 무굴 시대 건축물인 이 성채는 경내에 보존된 21개의 기념물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 시기 건축의 진보는 이후 2세기 이상 영향을 미쳤다. 아크바르 시대 기념물의 특성은 구운 벽돌과 적색 사암으로 만든 일반 축벽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무굴의 전통에 포함되지 않은 동물문양의 내쌓기를 통해서 힌두교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아크바르의 노력으로 완성된 구조물로는 2개의 보루와 1개의 카나에카스오암이 양쪽으로 있는 마스지드 문을 들 수 있다. 아크바르의 건축 양식은 그의 후계자 자한기르 시대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한기르는 아크바르가 착공한 북쪽 궁궐을 완성하였고(1617~1618), 1624년~1625년에는 성채의 북쪽과 북서쪽 성벽을 장식하였다. 반면 화려한 취향의 건축왕 샤자한이 지은 건축물은 이전 왕들의 건축과는 다르다. 호화로운 재료와 대리석, 경질석(硬質石), 모자이크를 사용하였고 이란 예술에서 차용한 모티프를 살려 생동감 있게 장식하였다. 샤자한 궁 주위에 디완이카스, 랄 부르즈, 콰브가이자한기리와 시시마할 등 동화에 나오는 듯한 건물들을 추가로 지었다. 1631년~1632년에 건설된 시시마할은 유리와 금박, 준보석과 대리석 칸막이로 반짝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 모든 기념물과 이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아우랑제브(Aurangzeb) 지배기의 기념물들은 무굴 왕조의 몰락 후에 크게 파손되었다. 19세기에는 시크교도의 반란으로 전쟁과 내란을 겪었으며, 영국군이 점령하면서 라호르의 문화유산은 크게 축소되었다. 1927년 이후에는 재건 계획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1973년에 이 계획이 실행되어 1975년에는 파키스탄 정부에서 적절한 보존 조치를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