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리마 역사 지구 / Historic Centre of Lima
- 국가명
- 페루
- 등재연도
- 1988
- 등재기준
-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200ha
- 위치
- 리마 시(City of Lima)
- 좌표
- S12 3 5.004 W77 2 35.016
- 간략개요
- ‘왕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리마는 몇 차례의 지진으로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18세기 중엽까지 스페인이 남아메리카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중심 도시였다. 이 도시에 있는 많은 건물은 이 지역의 장인과 유럽에서 건너온 장인이 힘을 합쳐 함께 세웠으며, 그 가운데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수녀원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종교 건축물이다.
- 정당성/가치
- 리마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Lima)를 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던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과 도시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알 수 있다. 리마의 산 프란시스코 수녀원은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수녀원이며, 아레키파(Arequipa)의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와 함께 가장 완벽한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리마는 1535년 1월 5일에 건설되었다. 카를 5세가 페루 부왕령(副王領, Viceroyalty of Peru)을 세웠던 1542년부터 뉴그라나다(New Granada, 1718)와 라플라타(La Plata) 부왕령 설치로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인 식민지 절대 권력이 서서히 무너지던 18세기까지, 이 도시는 신세계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인구 변화는 도시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마에는 대성당과 사그라리오(Sagrario) 성당, 대주교 궁이 있는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과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성당이 있는 베라 크루스 광장(Plaza de la Vera Cruz), 카를 5세와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지은 산 프란시스코 수녀원 등 몇 개의 탁월한 유산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오늘날 대도시권에서는 역사 중심지로서 리마의 자취를 찾기 어렵다. 카야오(Callao)의 군항은 바다에서 공격하는 침략자들로부터 도시를 지켰으며, 17세기 말에는 내륙의 침략자들로부터 리마를 지키기 위해 성곽이 축성되었다. 산 마르코스(San Marcos) 대학은 1551년 페루의 수도에 건립되었으며, 첫 상점은 1584년에 문을 열었다. 도시의 문화는 산 프란시스코와 산토 도밍고, 산 아우구스틴(San Augustin) 수도원 등 당시에 세워진 많은 종파(宗派)의 영향을 받았다. 리마는 17세기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세계유산의 경계 내에 있는 토레 타글레(Torre Tagle) 궁전과 같은 종교 건축물이나 일반 건축물 등의 모든 역사 기념물은 대표적인 중남미 바로크(Hispano-American Baroque) 양식의 건물로, 17세기와 18세기에 지어졌다. 다른 건물의 건축 양식도 대략 이 시기의 것이다. 19세기 건축물이 구도시에 추가로 지어졌지만, 도시의 역사 중심지는 여전히 스페인 왕국 당시의 리마를 떠올리게 한다. 1940년에 건설된 아베니다 아방카이(Avenida Abancay)와 같이, 20세기에 이루어진 도시 개발로 넓은 영역은 이전과 달라졌다. 그러나 도시는 여전히 훌륭한 외관과 건축적인 일관성, 건축 예술미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이들은 풍부한 내부 장식을 갖춘 산 프란시스코 수녀원 건물과 함께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구역 안에는 산 프란시스코와 라 솔레다드(La Soledad), 엘 밀라그로(El Milagro) 세 교회가 있으며, 다섯 회랑 주위의 여러 공동 구역과 연결되어 있다. 건물은 대부분 17세기에 건축된 것인데 이는 1655년의 지진 때문에 예전 건물들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기적의 교회(엘 밀라그로)와 같은 일부 건물은 1553년 이전에 건축되었다. 포르투갈 건축가인 콘스탄티누 드 바스콘셀루스(Constantino de Vasconcelos)는 1657년에 있었던 복원 공사를 대부분 주관했으며, 리마의 원주민이며 그의 제자였던 마누엘 데 에스코바르(Manuel de Escobar)는 1668년에 이 공사를 이어받아 목제 장선(長線, joist)과 리브(rib, 둥근 천장에 있는 갈빗대 모양의 뼈대), 갈대 격자에 흙 천장, 둥근 지붕과 같은 토착 기법을 사용하여 지진으로부터 바로크 구조물을 보호하는 공사를 했다. 교회 내부를 보면 붉은 황토색 배경에 흰색 돌출부가 단순미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바로크 양식으로 된 제단 장식의 금박과 색상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2층 구조의 주 회랑과 사제단 회의장, 수도원 성가대 등과 같은 건물의 특징은 감탄할 만하다. 그리고 아술레호스(azulejos, 벽 따위의 표면 마무리 공사에 쓰이는 채색 타일) 벽장식과 대리석 장식, 프레스코와 그림, 아르테소나도(artesonado, 조각이나 그림이 그려진 천장), 수도원 성가대, 사제단 회의장의 성직자석, 성구실의 목공예품 등과 같은 화려한 장식으로 건축의 수준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