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레드니체·발티체 문화 경관 / Lednice-Valtice Cultural Landscape
- 국가명
- 체코
- 등재연도
- 1996
- 등재기준
- (i) (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14,320㏊
- 위치
- 남모라비아 주(South Moravian Region) 브레츨라프(B?eclav) 지역
- 좌표
- N48 46 32.988 E16 46 30
- 간략개요
- 17~20세기에 남부 모라비아의 브레츨라프 지역은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공국을 지배한 공작들의 영지였다. 이곳에 있는 레드니체 성과 발티체 성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가 주로 건축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며 이후 고전주의 양식 ? 신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이곳에는 영국식 낭만주의 정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200㎢에 이르는 이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인공 경관 중 하나이다.
- 정당성/가치
- 레드니체·발티체 문화 경관(Lednice-Valtice Cultural Landscape)은 한 가문의 지속적으로 관리 하에 계몽주의 시대와 그 이후 시대까지 발전한 이례적인 인공 경관의 사례로서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다. 이곳에는 여러 시기의 기념비적인 요소와 토속적·이국적 자연 요소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으며, 이 경관의 총체는 창의성의 뛰어난 사례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해 온 이 지역은 중세 이후까지 역사적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곳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는 발트 해에서 지중해까지 연결하는 중요한 ‘앰버루트(Amber Route, ‘호박길’이라고도 하며 고대 호박의 교역로를 가리킴)’ 위에 있었다. 앰버루트는 로마 제국의 국경이었는데, 주변에 여러 요새들이 있었다. 8세기에는 최초의 슬라브족 국가인 대 모라비아 왕국이 세워졌으며 이후 보헤미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13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레드니체에 들어왔다. 그리고 14세기 말에 이웃해 있는 발티체를 확보했다. 이 두 성은 대규모 영지를 소유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카렐(Karel) 1세는 17세기 초 공작 작위를 받았을 때, 발티체를 주 거주지로 정하고 레드니체를 여름 별장으로 삼았다. 이 두 영지는 나중에 인근의 브레츨라프 영지와 연결되어 유기적인 총체를 이루었으며, 이로써 공작 가문의 휴양시설과 가문의 권위를 드러낼만한 유형적 산물들을 갖추게 되었다. 이 위대한 계획은 17세기 다른 영지들과 발티체를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여 18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그에 따라 르네상스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했던 방식으로 자연에 인상 깊은 질서를 부여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승마를 할 수 있는 도로와 길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19세기 초에는 얀 요제프(Jan Josef) 1세가 영국 인공 정원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스토위와 영국의 여타 지역에 있었던 랜슬럿 브라운(Lancelot Brown, ‘능력자’ 로 알려진 영국의 정원 설계사)의 작품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얀 요제프 1세의 영지 관리자인 베른하르트 페트리(Bernhard Petri)는 레드니체 정원의 층을 올리고, 드브예(Dvje) 강에 새로운 수로를 건설하는 등 정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요제프 하르트무트(Joseph Hardtmuth)와 요제프 코른하우셀(Josef Kornhausel), 프란츠 엥겔(Franz Engel) 같은 건축가들이 낭만주의적 경관 요소들을 창조하였다. 영국식의 정원을 모델 삼아 만든 좀 더 작은 정원은 믈린스키(Mlynsky)·프로슈트레트니(Prost?edni)·흘로호베키(Hlohovecky) 등의 거대한 연못 주변에 건설되었다. 이 문화 경관은 발티체 성과 레드니체 성의 2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티체 성은 중세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르네상스와 마니에리즘(Mannerist) 개축되었다가 성의 주요 양식인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성이 바로크 양식으로 보이는 것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 도메니코 마르티넬리(Domenico Martinelli), 안톤 요한 오스펠(Anton Johann Ospel) 같은 몇몇 유명한 건축가들 때문이다. 17, 18세기에 성모 승천 바로크 성당을 따라 건설된 도로 체계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레드니체 성은 전반적으로는 이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르트무트(Hardtmuth)의 이국적인 미너렛이 두드러져 이 성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 성은 1570년 무렵에 르네상스식 저택으로 건설되었는데, 이후 점차적으로 바로크 양식과 고전주의, 신고딕 양식을 가미한 변화를 주어 재건했다. 1850년에 고딕식 재건을 할 때는 이 경관에서 두드려졌던 낭만주의 양식과 조화를 이루었다. 경관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특징적인 바로크 양식에 낭만주의 요소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곳은 건축물과 경관이 긴밀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다. 모든 건조물들은 콜로나다(Kolonada), 랑데부, 피시폰드(Fishpond) 저택, 포한스코(Pohansko)처럼 가장 알맞은 지점에 신중하게 자리 잡아 건축되었다. 또 오벨리스크(obelisk)처럼 주요 도로의 중심에 있는 것도 있고, 모라비아와 하오스트리아(Lower Austria)의 국경에 있는 흐라니츠니 자메체크(Hranicni Zamecek)처럼 국경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것도 있다. 이 지역에서 외관상 중요한 요소는 매우 폭넓은 토종 수종(樹種)과 이국 수종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심었다는 점이다. 가장 폭넓고 다양한 수종은 두 개의 저택 주변에 무리지어 심었으며, 레드니스 성과 발티체 성 사이에 있는 연못의 둑 주변을 따라서도 많이 심었다 얀 요제프(Jan Josef) 2세는 공작으로 지냈던 긴 기간(1858~1929) 동안 이 경관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데 모든 걸 바쳤다. 그는 푀클러(J. H. Pockler), 레네(P. J. Lenne), 그리고 영국 출신 거트루드 즈킬(Gertrude Jekyll) 같은 위대한 정원 건축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연구했다. 포한스코 영지(Pohansko Manor)는 8세기에 모라비아 왕국 시절에 중요한 언덕 요새였던 지점에 건설되었다. 28㏊를 둘러싼 2㎞에 이르는 상당한 길이의 성곽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밖에 통치자의 궁전과 교회(설계도가 보존되어 있다), 제법 크고 튼튼한 여러 채의 가옥들, 묘지들이 상당히 많이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