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본문
제목(유산명)
쿠트나 호라 :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 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마리아 대성당 / Kutna Hora: Historical Town Centre with the Church of St Barbara and the Cathedral of Our Lady at Sedlec
국가명
체코
등재연도
1995
등재기준
(i) (ii) (iii)
분류
문화
유산면적
62㏊
위치
중부 보헤미아 지방(Central Bohemian Region) 쿠트나 호라 지역(City and District of Kutna Hora)
좌표
N49 10 59.988 E15 26 60
간략개요
쿠트나 호라는 은 광산 개발과 함께 발전한 도시로, 프라하에 이어 중세시대에 보헤미아 왕국의 제2의 도시로서 번영하였다. 이 중세도시는 14세기 번영을 상징하는 기념물들을 건축한 왕립 도시이다. 후기 고딕 시대를 빛낸 성 바르바라 성당, 그리고 18세기 초에 바로크 양식으로 복구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중부 유럽의 건축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이 대작들은 몇몇 특별히 섬세한 개인 주택들과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정당성/가치
쿠트나 호라는 14, 15세기에 보헤미아 왕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 경제적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 중세 도시의 도심과 성당들은 건축의 발전을 보여 주는 탁월한 본보기이자 이 지역의 문화적 활기를 증명하고 있다. 은광이 개발되어 발전한 이 도시는 해발 254m 쿠트나 호라 고원 지대의 브르흘리체(Vrchlice) 만 급경사면에 건설되어 있다. 프라하로부터 동쪽 약 60㎞ 지점에 있다. 쿠트나 호라의 은광은 14, 15세기에 최고로 번영했으며, 그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1300년 7월 이 지역에서 매장량이 풍부한 은광이 발견되자, 바츨라프 2세(Vaclav II)는 이탈리아 금융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체코에서 통용되던 모든 화폐는 더 이상 쓸 수 없었으며, 블라슈스키 드부르(Vla?sky dvur) 궁전에 있는 중앙 조폐국에서 최초의 은화인 ‘프라하 그로셴(Prague groschen)’을 주조했다. 이에 따라 쿠트나 호라는 보헤미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가 되는 동시에 왕립 도시로 탈바꿈했다. 나중에 얀 루쳄부르스키(Jan Lucembursky) 왕과 카를 4세(Charles IV)는 쿠트나 호라에 왕립 도시의 권리와 특권을 더욱 확실하게 부여해 주었다. 쿠트나 호라는 프라하와 경쟁하는 보헤미아의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15세기 말에 이 부유한 도시는 독특한 개발을 하게 되었다. 건설 작업은 새로운 시청과 석조 주택을 비롯한 몇몇 거대한 귀족 저택 등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초에 이르자 은광은 점차 바닥났고 결국 폐광되었다. 이제 광산업은 주로 카네크(Kanek)에서 진행되었다. 이 역사 지구는 유럽 건축 양식에서 보석 같은 존재이다. 블라슈스키드부르 궁전, 성 바르바라(St Barbara) 대성당, 성 야고보(St James) 성당, 스톤 하우스(Stone House), 고딕 양식의 분수대 등은 보헤미아의 아주 값진 유적들이다. 장인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 밖의 유적은 세들레츠(Sedlec)와 말린(Malin) 주변에 있다. 후기 고딕 양식의 보석 같은 존재인 성 바르바라 성당의 내부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벽화에는 중세 은광의 도시 쿠트나 호라의 세속적인 삶이 묘사되어 있다. 성녀 바르바라를 위한 대성당은 14세기 말에 시작하여 15세기와 16세기 초반에 걸쳐 건설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권위를 가진 세들레츠 시토회 수도원이 도시의 발전을 좌지우지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룩해 낸 성과였다. 이는 광산 공동체에 의해 13세기에 형성된 어퍼타운(upper town)의 중요성과 권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의적인 체코 지배자 덕분에 건설된 성 바르바라 대성당은 쿠트나 호라 귀족들의 자부심과 특별한 야망과 가능성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들은 왕실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 당대 유럽 예술의 가장 발전된 표현들을 구체화할 수 있는 특권과 기회를 얻었다. 대성당을 최초로 설계한 인물은 사제관 주변에 갤러리가 있는 건물을 설계한 얀 파를레시(John Parler, Jan Parle?)였다. 원래 이 대성당은 좀 더 긴 3개의 측랑이 있는 건물로 설계되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5개의 측랑이 있는 건물로 변경되었다. 다른 뛰어난 건축가로는 1489년~1506년 죽음을 맞을 때까지 쿠트나 호라에서 일했던 마톄이 레이세크(Mat?j Rejsek), 1534년에 죽은 베네디크트 레이트(Benedikt Rejt)가 있다. 1558년 대성당에는 파사드와 3개의 텐트 모양 지붕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은광이 거의 고갈된 시기였다. 이는 이후 대성당의 가구 등의 장식과 건물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626년 예수회가 이 도시에 들어와 대성당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660년대부터 대성당의 환경을 바꾸었으며 아주 가까운 거리에 대학도 건설했다. 1905년 대성당은 새롭게 헌정되었다.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18세기 초 바로크 양식에 맞게 복구되었으며 중부 유럽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자주찾는 메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