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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카미 유적 / Khami Ruins National Monument
국가명
짐바브웨
등재연도
1986
등재기준
(iii)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좌표
서부 지역, 마타벨렐란드(Western Region, Matabeleland)
간략개요
대(大)짐바브웨 왕국의 수도였던 카미는 16세기 중반 버려져 폐허가 되었다. 이곳은 고고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지역인데, 카미에서 발견되는 유럽과 중국의 물건들을 통해 이 지역이 오랜 기간 주요 무역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정당성/가치
카미 유적은 오늘날도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며 이곳이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고 폐허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대 짐바브웨 제국의 중요한 유적지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카미 유적은 1928년~1929년 카미 강 서쪽에 지은 댐 하류에 있다. 이 유적은 패시지 유적(Passage Ruin)부터 북부 유적(North Ruin)까지 2㎞가 넘는 지역에 흩어져 있다. 이 고고학적 지역은 1893년 로벵굴라 왕(King Lobengula)이 죽을 때까지는 ‘왕실 보호지’라는 규정 때문에 약탈로부터 보호받았으며, 로디지아 고대 유적 회사(Rhodesia Ancient Ruins Company Ltd.)에서 나온 보물 탐험가들의 무자비한 약탈에도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데이비드 랜달매카이버(David Randall-MacIver)와 거트루드 캐턴톰프슨(Gertrude Caton-Thompson) 그리고 더욱 최근에는 K. R. 로빈슨(K. R. Robinson)이 카미 유적을 탐사했으며, 그들의 작업으로 이 유적지의 깊이 있는 역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유적지는 대략 10만 년 전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중요한 흔적을 통해 유추할 수는 있으나 철기 시대 전까지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하지 않았던 듯하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르면 이 도시는 대략 1450년에서 165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 시기는 건축물의 구조와 고고학적 작은 가공품들을 바탕으로 추론한 결과이다. 대짐바브웨 왕국에서와 같이 이 지역 몇 곳은 이용 기간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왕의 저택인 맘보는 힐 루인스(Hill Ruins) 위에 북쪽을 향해 지어졌다. 이 집은 테라스 부지를 평평하게 만든 넓은 충적토 언덕 위에 내력벽을 쌓아 지은 것이다. 이 지역에서 대단히 중요한 수입품들이 발견되었는데, 16세기 라인란트(Rhineland) 지방의 석기들, 완리(萬曆, 1573~1691, 명(明)의 연호) 치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명나라 도자기들, 17세기 중국 도자기를 본뜬 포르투갈의 모조품들, 17세기 에스파냐의 은그릇 등이 그것이다. 작은 화강암 덩어리로 구성된 기념비적인 십자가가 왕의 집 바로 북쪽 작은 언덕인 크로스 힐(Cross Hill)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포르투갈의 상인들과 선교사들이 카미 유적을 방문했을 거라는 증거이다. 카미의 대부분 지역에는 사람들이 넓게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지붕을 옥수숫대로 이어 얹고 화강암 벽으로 둘러싼 오두막에서 살았다. 울타리와 벽의 유형은 대짐바브웨 왕국의 말기에 건축물과 비슷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갈지(之)자 무늬와 체크무늬 패턴 장식의 프리즈(frieze, 방이나 건물의 윗부분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띠 모양의 장식을 한 것)가 있다는 점과 좁은 통로와 천장이 덮여 있지 않은 보행용 회랑이 있다는 점이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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