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크로메르지시의 정원과 성 / Gardens and Castle at Krom??i?
- 국가명
- 체코
- 등재연도
- 1998
- 등재기준
- (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75㏊
- 위치
- 즐린 주(Zlin Region) 크로메르지시(City and District of Krom??i?)
- 좌표
- N49 17 60 E17 22 38
- 간략개요
- 크로메르지시(Krom??i?)는 모라비아 중부 크리비 산맥(Chriby mountain) 기슭에 있는 모라바(Morava) 강 건너편 상류 여울에 자리하고 있다. 크로메르지시의 정원과 성은 대주교의 유럽 바로크 양식 저택과 정원으로, 매우 완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 정당성/가치
- 크로메리즈의 정원과 성에는 웅장한 저택과 17~19세기의 경관이 매우 완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열락(悅樂)의 정원(pleasure garden)’을 포함한 이 유적은 중부 유럽의 궁전 디자인과 바로크 양식의 정원 디자인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크로메르지시의 역사는 서기 9세기의 위대한 모라비아 시대(Moravian Period) 동안 모라바 강의 범람원에 정착지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12세기에는 올로모우츠의 주교구에 속해 있었으며, 원래 요새였던 지역은 사라졌다. 크로메르지시는 고딕식 요새가 건설되었던 13세기 중반까지 요새화되지 못했으며, 13세기 이후 이 도시는 번성했다. 도시는 이후 여러 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으며, 주교 권한의 종속국을 형성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1497년 올로모우츠(Olomouc)의 주교가 된 스타니슬라프 투르조(Stanislav Thurzo)는 자신의 성을 당시 시대에 맞게 재건하기로 했다. 이 성은 처음에는 후기 고딕 양식으로 건축했으나 작업이 진행되면서 르네상스 양식의 요소가 가미되었다. 투르조 대주교는 과수원, 텃밭, 꽃밭으로 구성된 정원을 건설했는데, 1509년 블라디슬라브 2세(Vladislav II)는 이곳을 방문하여 정원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성은 30년 전쟁 동안이던 1643년 스웨덴 군에 의해 약탈당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전염병이 발병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644년 카렐 리히텐슈타인 카스텔코른(Karel Liechtenstein-Castelcorn) 백작이 올로모우츠의 주교가 되고 나서 도시는 바뀌기 시작했다. 귀족적인 분위기의 도시를 꾸미고 싶었던 그는 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았으며, 시민들을 설득하여 빌딩과 설비들을 새로이 꾸몄다. 그는 건축 프로젝트를 위해 재능 있는 황실의 토목 공학자이자 건축가였던 필리베르토 루케세(Filiberto Lucchese)를 불러들였다. 주교는 루케세에게 폐허가 된 성을 거주 가능한 상태로 바꾸어 놓을 것과 완전히 새로운 잔디 정원 ‘루스트카르텐(Lustgarten, 열락(悅樂)의 정원)’을 디자인하도록 하였다. 1666년 루케세가 죽자, 그의 작업은 조반니 피에트로 텐칼라(Giovanni Pietro Tencalla)가 이어 받았고, 정원은 1675년에야 완성되었다. 정원이 완성되자마자 텐칼라는 웅장한 주교의 성과 거주지를 디자인하고자 했다. 자신이 속했던 제노바와 토리노의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전통에 맞추어 완성시킨 이 작품은 그의 걸작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전의 고딕 양식이 존중되었으며 새로운 양식과 혼합된 작품이었다. 카렐 주교는 이곳에 화랑을 만들어 많은 걸작들을 비치했다 성은 1752년 발발한 대화재에 영향을 받았다. 레오폴트 베드리히 에글리크(Leopold Bedrich Eglik) 주교는 화재로 타버린 성을 재건하기 위해 프란츠 안톤 마울베르치(Franz Anton Maulbertsch)과 요제프 슈테른(Josef Stern) 등 2명의 황실 고용 예술가를 불렀다. 주교구가 1777년 대주교구로 격상되었고, 첫 번째 대주교인 콜로레도-발트제(Colloredo-Waldsee)는 18세기 말 낭만주의 양식에 따라 성의 정원을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정원은 바로크 양식의 기하학적 배치를 해치지는 않았다. 성의 정원 작업은 19세기로 이어졌으며 아케이드, 다리, 심지어는 모형 농장 건물까지 건축되었다. 이 작업의 대부분은 1830년~1845년에 건축가 안토닌 아르헤(Antonin Arche)의 감독 아래 이루어졌다. 이 성의 주 건물은 네모난 모양의 안뜰 주변에 건물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3층 정도 높이의 독립된 형태의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1/2층 정도 높이의 다락이 있다. 대지가 고르지 못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1층은 높은 대 위에 건설되었다. 이 성은 원래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해자는 1832년에 매립되었다. 1층에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내부에는 집무실, 회의실, 및 2개의 식당 등을 비롯한 주요한 방들이 있다. 2층에는 손님방, 도서관, 영주의 홀과 예배당이 있다. 성 앞쪽에 있는 정원에는 작은 바로크식 테라스 정원이 있는데, 이는 자르디노 세그레토(giardino segreto)라 불리며, 1795년에 지어진 콜로레도 콜로나데(Colloredo Colonnade)라 알려진 2개의 계단이 있는 원형 회랑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성은 널찍한 1층 방들을 지나 성의 정원으로 연결된다. 정원에는 광산 갱을 모방하여 만든 인공 동굴이 있다. 정원에는 건축적으로 중요한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1846년에 폼페이에서 온 조각들을 보관하기 위해 고전주의 양식의 반원형 콜로네이드가 지어졌다. 서쪽 주변에는 인상 깊은 콜로네이드와 돌출되어 있는 건축 동들이 있는 화려한 프랑스 제1제정 시대 양식의 건물이 있다. 주조 공장에서 생산된 주철(Cast iron)은 리틀 실버(Little Silver), 꽃병, 리틀 랜턴(Little Lantern) 등의 이름을 지닌 우아한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크로메르지시 역사 도시의 남서쪽에 있는 ‘열락의 정원’은 이탈리아 양식으로 좌우 균형이 이루어진 정원이며, 이 정원을 통해 많은 조각물과 흉상들이 있는 아케이드를 이루는 갤러리로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