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명과 청 시대의 황릉 / Imperial Tomb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국가명
- 중국
- 등재연도
- 2000
- 등재기준
- (i) (ii) (i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3,435㏊
- 위치
- 장쑤성(江蘇省, Jiangsu Province) 난징시(南京, nanjing City)[명효릉(明孝陵, Xiaoling Tomb)] 베이징(北京, Beijing) 창핑구(昌平?, Changping District)[명십삼릉(明十三陵, Ming Tombs)]
- 좌표
- N41 42 26 E124 47 38
- 간략개요
- 이 기념물은 2000년과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명과 청 시대의 황릉들인 명현릉(明?陵), 청동릉(?東陵), 청서릉(?西陵), 명십삼릉(明十三陵), 명효릉(明孝陵) 에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는 청 왕조의 황릉 3개를 추가한 것이다. 랴오닝성의 청 황릉들은 영릉(永陵), 복릉(福陵), 소릉(昭陵)으로 모두 17세기에 만들어진 무덤들이다. 청 왕조를 세운 황제들과 그의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이 황릉들은 중국 전통 풍수지리 이론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 무덤들은 석상과 조각상, 용을 새긴 기와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져 있으며, 청나라의 능묘 건축 발전상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 세 황릉과 황릉을 조성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물들은 이전의 왕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중국 전통 양식에 만주 문명의 새로운 양식들이 결합되어 있다.
- 정당성/가치
- 명과 청 시대의 황릉들은 500년 이상 이 지역을 지배했던 세력의 문화적·건축학적 전통을 보여 주는 훌륭한 증거물이다. 이 유적은 주변 자연환경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의 독특한 앙상블을 이루어 내고 있다. 옛날부터 중국의 통치자들은 능묘 건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는 죽은 후에도 내세가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황실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이유에서였다. 명 왕조의 통치가 시작되면서(1368) 황릉의 전반적인 설계 방식이 정해졌다. 이 설계 방식의 특징은 엄밀한 선정 기준에 적합한 자연환경, 그리고 조직화된 기능에 부합하는 일련의 건축물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게끔 하려는 시도였다. 자연환경이란, 평원이거나 널찍한 골짜기로, 북쪽으로는 산을 면해 있고 남쪽으로는 낮게 경사진 곳에 무덤이 자리해야 했다. 그리고 동서로는 언덕들과 적어도 한 개의 물길이 있어야 했다.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지기 위해 ’신도(神道)’라 불리는 길이가 수 ㎞에 이르는 주된 길을 따라 여러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그리고 신도에서 가지를 뻗은 두 번째 길이 또 다른 무덤으로 이어진다. 신도를 여는 입구는 최대 5개의 문이 있는 석패루(石牌樓)로 시작된다. 이 문을 들어서면 대홍문(大紅門), 신공성덕비(神功聖德碑), 쌍을 이룬 동물들과 문무 관료들을 새긴 돌기둥과 석상들 거치게 된다. 이어 하나 이상의 돌다리와 용봉문(龍鳳門)을 지나, 이 신성한 길은 일련의 건물들로 발길을 이끈다. 제를 지내는 사당 옆으로 여러 건축물과 위령탑이 있으며, 위령탑 아래쪽은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 묘실로 이어진다. 이 신도는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는 우주생성론의 형태로 가득 채워진 문화경관이다. 명현릉은 베이징에서 1,000㎞ 이상 떨어진 후베이성(湖北省) 종샹(?祥) 근처에 있다. 그곳에 자신이 묻힐 계획이었던 흥종(興宗)이 이 웅장한 무덤의 첫 삽을 떴다. 그는 족보학적인 이유로 사후인 1519년에 황제로 추존되었다. 그는 이 능묘를 명 황릉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그리고 황후를 비롯한 가족 묘실이 포함된 또 다른 무덤들을 만들기 위해 추가 공사를 시행하였다. 청서릉에는 14개의 황릉이 있으며, 티베트불교 사원인 융푸사(Yongfu Tibetan Buddhist temple)와 조상에게 제를 올리러 온 황실 가족이 머물던 행궁이 있다. 수세기 동안 자란 대규모의 소나무 숲이 있는 자연 경관 또한 대단히 아름답다. 청동릉에는 황제와 황후, 비빈, 공주 등 161명의 시신이 묻혀 있는 15기의 무덤이 있다. 그중에는 중국의 번영기를 이뤄낸 위대한 군주로 기억되는 황제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의 무덤, 19세기 후반에 섭정 통치로 제국을 지배한 자희태후(慈禧太后)의 무덤도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