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 국가명
- 대한민국
- 등재연도
- 2010
- 등재기준
- (iii)(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600㏊
- 위치
- 좌표
- 간략개요
- 14세기~15세기에 조성된 하회(河回)마을과 양동(良洞)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씨족 마을이다. 숲이 우거진 산을 뒤로 하고, 강과 탁 트인 농경지를 바라보는 마을의 입지와 배치는 조선 시대(1392~1919) 초기의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옛 마을은 주변 경관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자양분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종가와 양반들의 기거했던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서원과 사당, 옛 평민들이 살던 흙집과 초가집 등이 있다. 17세기~18세기의 시인들은 정자와 쉼터에서 마을을 둘러싼 강과 산과 나무의 경치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를 지어 노래했다.
- 정당성/가치
- 씨족 마을이 융성했던 조선왕조는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며 한국 사회에 유교적 이상을 실현했다. 또한 중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한국 전통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발전시켰다. 풍수지리에 따라 지역의 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마을이 형성되는 풍습은 그 이전 고려 시대에 나타났다. 하지만 지주들과 향촌 관리들인 양반이 유교적 풍습에 따라 새로운 마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거나 새로운 마을을 조성해 나간 것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일이었다. 보통 씨족 마을에는 한 성씨 또는 두 성씨의 양반들이 성곽을 쌓아 마을을 지키고,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를 비롯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러한 씨족 마을에서 문관과 무관이 배출되기도 했다. 하회마을은 고려 시대 말에 허씨와 안씨, 그리고 류씨 성의 세 씨족이 새로운 양반 정주지를 찾아 형성한 마을이다. 16세기 말에 류씨 가문은 걸출한 정치가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이는 마을의 건축물, 특히 정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후 마을은 번성했으나 17세기 말에 허씨와 안씨 일가가 마을을 떠나면서 류씨 단독의 씨족마을이 되었다. 마을은 18세기~19세기까지 계속 커져 갔다. 1980년대에 들어와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1991년에는 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전통 가옥 두 채가 새로 지어지면서 이런 추세가 반전되기 시작하였다. 양동마을은 이씨와 손씨 씨족의 혼인으로, 처가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로 성장한 정주지의 예이다. 이 두 씨족은 16세기에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은 두 씨족의 일가들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 20세기 초, 마을에 철도가 건설되고 학교가 지어졌다. 1940년대에는 사찰이 세워졌고 10년 뒤에는 교회도 들어섰다. 1970년대에는 안락천에 다리가 놓이고, 1971년에는 안강평야의 농경지를 재정비하여 마을의 공동 저장고를 지었다. 1980년대에 이 마을은 한국의 다른 마을들처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