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초가잔빌 / Tchogha Zanbil
- 국가명
- 이란
- 등재연도
- 1979
- 등재기준
-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후제스탄(Khuzestan) 주
- 좌표
- N32 4 59.88 E48 31 60
- 간략개요
- 초가잔빌(Tchogha Zanbil)에서 발견된 엘람(Elam) 왕국의 성스러운 도시 터는 3개의 거대한 동심원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원전 1250년경에 세워진 이 도시는 터에 남은 수천 개의 사용하지 않은 벽돌에서 볼 수 있듯이,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의 침입 이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 정당성/가치
- 현재 초가잔빌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카룬(Karun)의 속국인 압 에 디즈(Ab-e Diz)의 길을 지배하는 고대 도시 두르 운타시(Dur Untash)에 해당한다. 초가잔빌은 엘람 시대에 운타시 나피리샤(Untash-Napirisha) 왕(기원전 1275~1240)이 안샨(Anshan)과 수사(Suse)의 중간 지점에 종교 수도로 건설하였다. 이 유적은 로망 기르슈망(Roman Ghirshman, 프랑스의 고고학자)이 1951년~1962년에 걸쳐 발굴한 것이다. 유적지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최대의 지구라트가 남아 있다. 첫 번째 담 안에는 테메노스(temenos)가 있다. 중앙에 있는 사원은 본래 정방형 건물이었으며, 수메르의 신 인슈시나크(Inshushinak)를 모신 곳이다. 이 사원은 당시 지구라트의 1층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견고한 4층 부분은 옛 중앙 광장을 모두 덮을 수 있도록 궁정 마당에서 시작해(메소포타미아에서처럼 다른 것 위에 포개져 있지 않다) 다른 20개의 건물과 함께 있다. 진입로에는 아치 천장을 올린 계단이 있는데 밖에서는 볼 수 없다. 외부에 계단이 3개 있어서 다른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와 다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초가잔빌 지구라트는 25m 정도이며 마지막 2층은 본래 60m였지만 모두 소실되었다. 초가잔빌 지구라트는 인슈시나크뿐만 아니라 안샨의 신 나피리샤(Napirisha)의 성전이다. 지구라트의 북서쪽에는 이슈니카랍(Ishnikarab), 키리리샤(Kiririsha) 같은 작은 신들을 모신 일군의 신전이 있다. 타원형 벽이 작은 사원과 지구라트를 둘러싸고 있다. 사다리꼴의 두 번째 담은 광대한 빈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세 번째 담에는 왕의 문 근처에 있는 작은 사원과 궁전 세 곳, 넓은 안뜰이 있다. 이 세 번째 담은 주택이 한 번도 들어서지 못한 두르 운타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테메노스 사원과 분리된 운타슈갈(Untash-Gal) 궁전(기원전 13세기)도 발견되었다. 아시리아인이 파괴했지만 두상, 작은 조각상, 동물과 부적 등 많은 유물과 상아 모자이크로 장식한 판 2개가 발견되었다. 지하층에서 발견된 몇 개의 둥근 무덤은 화장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운타시 나피리샤 왕은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려고 북쪽 성벽 밖에 저수지로 연결되는 수로를 50㎞가량 만들었다. 거기에서 9개의 도관이 여과된 물을 성벽 안에 설치된 수도로 운반했다. 두르 운타시는 기원전 12세기에 수사를 위해 엘람의 왕들이 만들었다. 초가잔빌의 보물은 모두 수사로 운송되어 최근에 복원한 사원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기원전 640년, 두르 운타시는 이미 몇 년 전에 수사를 정복한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