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리비프 역사 지구 / L’viv ? the Ensemble of the Historic Centre
- 국가명
- 우크라이나
- 등재연도
- 1998
- 등재기준
- (ii) (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120㏊
- 위치
- 리비프주(L’viv Oblast') 할리치나(Halychyna)
- 좌표
- N49 50 29.868 E24 1 55.128
- 간략개요
- 중세 시대 후반에 세워진 도시 리비프(L’viv)는 행정·종교·상업의 중심지로 수 세기 동안 번성하였다. 당시의 중세 도시 특징들은 바로크 양식, 이후 양식의 건축물들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그곳에 살았던 여러 소수 민족 사회의 증거가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정당성/가치
- 리비프의 정치적·상업적 역할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적 전통을 가진 다수의 민족 집단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도시 안에 분리되어 자리를 잡았지만 상호 의존적인 공동체였으며, 그들의 모습은 현대의 도시 풍경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다. 리비프는 도시의 구조와 건축 양식에 이탈리아와 독일, 동유럽의 문화적·예술적 전통을 융합한 탁월한 본보기이다. 5세기 중반에 정착지는 자모브카(Zamovka) 언덕 아래 있는 폴타바(Poltava) 강의 제방에 자리 잡았다. 발트 해, 중부 유럽, 지중해, 그리고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교역로들이 교차하는 지점인 이곳은 13세기에 이르러 점차 발전하여 조직적이며 요새화가 잘된 도시 리비프라고 알려졌다. 키예프 왕국의 속국이었을 때, 이곳은 부크 강, 시안 강, 드니스테르(Dnister)강에 유역에 살던 동부 슬라브인의 지역(할리치나/갈리치아 지방)의 중심 도시였다. 이곳은 키예프 왕국의 속국이었던 10세기에 정치의 주체로 역사에 등장했다. 1199년 영토를 물려받은 로마의 크니아즈(Kniaz, King) 므스티오슬라보비치(Mstyoslavovych)는 갈리치나와 볼린(Volyn)을 단일 국가로 통일하였다. 이 국가는 키예프 왕국이 붕괴된 후에도 지속되었다. 리비프는 크니아즈 레프 다닐로비치(Lev Danylovych, 1264~1301)가 새로 건설하고 확장하였다. 리비프는 1272년에 통일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340년에 카시미르 3세(Casimir Ⅲ) 대왕에 의해 폴란드에 합병되면서 왕국이 사라질 때까지 수도로서 기능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주권을 유지하였다. 전략적·상업적 중요성은 동쪽과의 교역에 독점권을 보증하는 많은 특권을 가져다주었다. 1412년에는 로마 가톨릭의 대교구 지역으로 편성되었다. 도시는 다양한 소수 민족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서로 다른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갔다. 우크라이나·아르메니아,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는 독일·폴란드·이탈리아·헝가리의 가톨릭 공동체와는 달리 자치적이었다. 그들 공동체 사이의 치열한 경쟁의식은 수많은 건축과 예술의 걸작들을 창조하는 성과를 낳았다. 리비프는 빈번한 전염병, 화재 또는 전쟁으로 인한 물질적 피해를 입지 않고 번영했지만, 1672년에 오스만 제국에 포위되어 심한 공격을 받았으며, 1704년에 스웨덴의 카를 12세(Charles ?)에 의해 약탈당했다. 1772년 폴란드에서 최초로 분리되면서 리비프는 새로운 오스트리아 주의 수도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방어 시설은 제거되고 많은 종교 기관이 폐쇄되면서 건물들은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세 건물들의 재건축도 다수 이루어졌다. 혁명이 일어난 1848년에는 군사 작전으로 인해 시의 중심부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918년에 리비프는 새로 독립된 폴란드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에게 반환되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하이 캐슬(High Castle)이 있으며 그 주변 지역은 중세 후반에 발전하였다. 5채의 교회와 함께 성의 언덕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세레드미스티아(Seredmistia, Middle Town)는 본래의 배치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며, 그 당시 동유럽에서 있었던 도시 계획의 뛰어난 본보기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중앙에 탑이 솟아 있는 리노크 광장(The Rynok Square)이 있고, 그 주변에 르네상스, 바로크, 그리고 프랑스 제1 제정 시대의 양식으로 세워진 주택들이 있으며, 그 대다수는 중세 시대 당시의 배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광장의 각 모퉁이에는 1793년에 만든 분수가 있으며, 이 분수에는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우스펜스카(Uspenska, 성모 승천 교회) 건물군은 르네상스 석조 건물과 나르텍스(narthex, 현관홀), 신도석, 성단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적인 전통 건축의 목조 예배당이 특출하게 결합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교회 지구(Armenian Church complex)에는 교회 건물(1363), 종탑(1517), 성 크리스토퍼의 기둥(column of St Christopher, 1726), 아르메니아 베네딕트 수도원(Armenian Benedictine convent), 그리고 아르메니아 대주교 궁전(17, 18세기)이 있다. 몇 가지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 가미된 고딕 양식의 라틴 메트로폴리탄 대성당(Latin Metropolitan Cathedral), 요새처럼 세워진 데다 이탈리아와 독일 르네상스 양식의 요소에 마니에리즘적인 세부 장식이 결합된 베르나르도 수도원 건물군, 예수회 교회(Jesuit Church, 1610~1630)와 그 대학, 그리고 리비프에서 가장 장엄한 바로크 건물 중의 하나로 수도원 건물군과 종탑이 있는 도미니크 교회, 도시와 왕실의 무기고와 화약고로 사용된 탑이 있는 14세기 방어 성벽의 일부 등이 있다. 용의 전사 성 유리 교회(Church of St Yuri the Dragon Fighter) 건물군은 중세 도시 외곽의 계단처럼 만들어진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그 교회는 돌과 벽돌로 지어졌으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전통적인 우크라이나의 공간적인 배치가 결합되어 있다. 기념비적인 조각상과 조각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