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블래나번 산업 경관 / Blaenavon Industrial Landscape
- 국가명
- 영국
- 등재연도
- 2000
- 등재기준
- (iii) (iv)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3,290㏊
- 위치
- 카디프 북동 40㎞(40km NE of Cardiff), 블래나번(Blaenavon), 웨일스 지방(Wales)
- 좌표
- N51 46 35 W3 5 17
- 간략개요
- 블래나번(Blaenavon) 주변 지역은 19세기의 세계적인 철과 석탄 주요 산지로, 사우스 웨일스의 과거 명성을 보여 주는 곳이다. 석탄과 광석 광산, 채석장, 초기의 철도 체계, 용광로, 광부들의 숙소 및 사회 기반 시설 등 모든 요소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정당성/가치
- 블래나번 경관은 19세기 산업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블래나번 제철소 주변 지역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전성기를 구가한 사우스 웨일스의 석탄·제철 산업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훌륭하게 보여 준다. 석탄과 광석 광산, 채석장, 초기의 철도 체계, 용광로, 광부들의 숙소 및 사회 기반 시설 등 모든 요소들은 아직도 제자리에 남아 있다. 적어도 1675년부터 블래나번의 산에서 철광석이 채굴되었지만, 실제로 이곳에는 사람들이 정착하지는 않았고 소규모로 철을 채굴하고 손질하는 곳으로만 사용했다. 1788년에 에버게이브니 경(Lord Abergavenny)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에버게이브니 경의 언덕(Lord Abergavenny’s Hills)’이라는 공용 토지를 토머스 힐(Thomas Hill)·토머스 홉킨스(Thomas Hopkins)·벤저민 프랫(Benjamin Pratt)에게 임대했다. 자원이 풍부한 새로운 환경을 바탕으로 산업 혁명의 최신 기술과 구조를 활용하여 제철소를 지을 기회를 찾고 있던 이들은 블래나번에 새로운 큰 제철소를 건립했다. 1789년에 이르러 제철소들은 증기력을 사용하는 3개의 제철소용 용광로를 갖추면서 세계 최대의 제철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철광석과 내화 점토, 석탄 및 석회석을 회사의 자체 광업권(mineral property)을 통해 공급했다. 1796년에 이르러 용광로에서는 연간 5,400t의 철을 생산했다. 제철소와 광산, 채석장 밖에 주요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가 생겼고, 제철소로 원광을 운반하고 생산품을 시장에 수송하기 위해 엉성하긴 하지만 원시적인 철도가 건설되었다. 웨일스의 농촌 지역과 산업화된 중부 지방,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및 영국 농촌에서 이곳으로 노동자들이 이주하였고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급속하게 나타난 산업 경관에는 철광석 지역과 탄광, 석회암 채석장, 철 대장간, 벽돌 공장, 광차 궤도, 주수로, 노동자 숙소가 있고, 이 모든 시설은 블래나번 회사에서 관리했다. 1812년에 이르러 제철소는 연간 14,000t의 철을 생산할 수 있는 5개의 용광로를 갖추고 있었다. 말이 끄는 철도에는 가장 긴 터널인 2.4㎞ 길이의 파월듀(Pwll-Du) 터널이 생겼으며, 새로운 원시적인 철도가 브레크녹(Brecknock)과 애버게이브니 수로로 연결되었다. 1817년 선철(銑鐵)을 연철(鍊鐵)로 바꾸는 가른디리스(Garn-Ddyrys) 철공소가 블래나번 북쪽의 산 위에 들어섰다. 또 같은 해에 철광과 석탄을 캐기 위해 수평 갱도 채굴을 개발하여 표층 채굴을 대체했으며, 세련된 배수 시설과 수송·환기 시설을 갖춘 수갱 광산(堅坑鑛山, shaft mines)을 도입했다. 이곳에는 새로운 사암의 광맥이 발굴되면서 더 큰 채석장이 문을 열었다. 1840년과 1850년대에 이곳의 사회는 발전하였고, 흩어져 있던 노동자 숙소와 작업장의 학교 및 교회 등 그 회사 소유지 주변에는 다양한 도시 기능을 가진 마을이 들어섰다. 1860년대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포지사이드(Forgeside)에 지은 새로운 제강소가 생산에 들어갔다. 아울러 옛 제철소는 점점 쓸모가 없어져 더 이상 재개발되지 않았다. 1878년 시드니 길크리스트 토머스(Sidney Gilchrist Thomas)·퍼시 길크리스트(Percy Gilchrist)는 블래나번에서 염기성 베세머법(Basic Bessemer) 또는 토머스법(Thomas process)을 만들었다. 이 방법은 인을 함유한 철광석을 사용하여 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술이었다. 제조 규모는 커졌고 블래나번의 철제품과 노동 기술은 계속하여 세계로 수출되었다. 빅 피트(Big Pit) 탄광이 새로운 제철소로서 작업을 시작했고 포지사이드에 새로운 정착지가 건설되었다. 제철소가 지어지기 전에는 극소수에 불과하던 블래나번 행정 지구의 인구는 1891년에 11,452명으로 증가했고, 이 지역이 사회적으로 발달하면서 많은 교회, 학교가 생겨나고 선술집을 비롯한 소상인이 늘어나면서 도시 문화도 발달했다. 이 지역은 제철소 주변, 동서 축을 따라 현재의 킹 스트리트(King Street)에 해당하는 곳, 그리고 성 베드로교회(St Peter’s Church)를 중심으로 하는 곳 3개의 주요 지역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 1895년에는 사회적 편의와 교육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근로자회관과 협회(Workmen's Hall and Institute)가 생겼다. 세기가 바뀔 즈음부터는 수출용 석탄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제철 산업이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다. 사우스 웨일스의 고품질 보일러용 석탄은 수요가 계속하여 증가하여 1913년에 절정에 달했다. 이 당시에는 웨일스 지방에서 250,000명 이상, 성인 남성 인구의 ¼이 광업에 직접 종사했다. 계속 확장된 빅 피트 탄광은 1947년에 영국의 석탄 산업이 국유화된 후 더욱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의 고용은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1921년에 12,500명으로 최대였던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현재는 6,000명에 불과하다. 철강 생산은 1938년에 중단되었다. 마지막으로 운영했던 규모가 큰 빅 피트는 1980년에 폐광되었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쇠퇴하면서 대부분의 마을 구조에 투자가 필요했다. 빅 피트는 현재 국제적으로 중요한 탄광 박물관이 되었다. 이 박물관은 관광객들이 지하로 내려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영국 탄광 박물관 2개 중 한 곳이다. 블래나번 제철소를 보존하여 경제 회생에 기여했고, 마을과 주변 경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날 이 경관은 옛 탄광과 제철소의 모습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교통 체계의 개선은 산업 혁명의 핵심 요소로서, 이동 물품의 부피가 크고 새로운 지역으로 공급해야 했던 석탄과 제철 산업의 성공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블래나번 제철소에 원료를 공급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을 해안으로 운송하던 교통 체계에 대한 증거가 이곳 경관에 많이 남아 있다. 블래나번 하천 유역의 높은 곳에 있는 고지대 환경인 이곳은 가뭄에도 수분 균형 승강기를 작동하고, 정련 작업을 하고, 증기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충분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치밀한 물 관리시스템이 중요했다. 지상·지하 배수 또한 채광 작업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오늘날 블래나번 위의 언덕 여러 곳에서는 이와 같이 중요한 수로나 배수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수로와 배수로는 서로 관련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양한 노동자 숙소도 블래나번에 남아 있다. 회사는 일반적으로 제철소와 광산, 채석장, 운반로 등과 인접한 곳에 숙소를 지었다. 구조가 견고한 석조 오두막이 몇 채 모여 있는 스택 스퀘어(Stack Square)와 엔진 로(Engine Row)가 제철소 인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