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유산명)
- 미케네·티린스 고고 유적 / Archaeological Sites of Mycenae and Tiryns
- 국가명
- 그리스
- 등재연도
- 1999
- 등재기준
- (i) (ii) (iii) (iv) (vi)
- 분류
- 문화
- 유산면적
- 위치
- 아르골리스 주(Prefecture of Argolis) 펠로폰네소스 지역(Region of the Peloponnesos)
- 좌표
- N37 43 60 E22 45 0
- 간략개요
-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12세기 동안 동부 지중해 지역을 지배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발전시킨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받은 두 도시, 미케네와 티린스의 유적이다. 이 두 도시는 3,000년 이상 유럽의 예술과 문화에 영향을 미친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일리아스(Ilias)』·『오디세이아(Odyssei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정당성/가치
- 미케네와 티린스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과 도시 설계와 같은 후기 유럽 문화의 진화에 토대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문화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 미케네 문명의 절정을 보여 준다. 또한 이들 두 도시는 3,000년 이상 유럽의 예술과 문화에 영향을 미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오디세이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미케네 문명은 후기 청동기 시대이던 기원전 16세기에 그리스 본토에서 발달하였다. 이 문명은 본질적으로는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통해 변형된 중기 청동기 문화가 이어진 것이다. 초기 시대에 해당하는 1기(기원전 1580~기원전 1500)와 2기(기원전 1500~기원전 1400)에 대한 지식은 주로 묘, 특히 미케네의 수갱(竪坑)식 분묘(shaft grave)를 통해 얻을 수 있다. 2기 후반으로 갈수록 무덤 형태는 더욱 정교해져서 가족용 대형 돌무덤과 왕족을 매장하는 벌집 형태의 톨로스(tholos) 무덤이 발달하였다. 미케네 문명의 절정기는 견고한 성채와 정교한 궁전이 세워진 3기(기원전 1400~기원전 1120)였고, 이 시기 후반으로 가면서 선형문자 B(Linear B)로 알려진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언어는 그리스어의 초기 형태로 보이며 이를 통해 미케네 인들이 인도유럽어족의 그리스어 사용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 형태는 전제 군주제였다. 와낙스(wanax)라는 통치자가 조직적인 계급 구조를 운영하며 자신의 영토를 다스렸다. 제사장과 여사제와 같은 특수계층이 있었다. 정교한 계급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노예 제도가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미네케의 유적은 발굴 당시 신석기 시대(기원전 4000경) 때부터 사람이 거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 청동기 시대의 공동묘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언덕의 북쪽 경사면에 세워졌으며, 기원전 17세기의 그레이브 서클 비(Grave Circle B)와 기원전 16세기의 그레이브 서클 에이(Grave Circle A)가 여기에 포함된다. 궁전은 언덕 정상에 건축되었고 세 단계로 나뉘어 형성된 큰 거석으로 쌓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다(각각 기원전 1350경, 기원전 1250경, 기원전 1225경). 마지막 단계에서는 지하 저수조도 요새화하였다. 미케네 시대에 언덕의 남쪽과 남서쪽 경사면에 아이기스토스(Aegisthos)의 무덤(기원전 1500경), 미케네의 사자문(기원전 1350경),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의 무덤 등이 있으며, 여기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곳에 아가멤논(Agamemnon)의 묘인 아트레우스의 보물 창고(Treasury of Atreus)가 있다. 왕의 집무실로 추정되는 4개의 건물은 기원전 13세기에 그레이브 서클 비 부근에 지어졌다. 이 궁전은 기원전 12세기 말에 버려졌으며 많은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아르고스가 이곳을 정복하여 거주민들이 쫓겨났던 당시 기원전 498년까지는 계속하여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다. 언덕 정상은 당시 아르카이크 신전(Archaic temple)을 짓기 위해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클리템네스트라의 무덤 너머에 다른 신전을 짓고 극장을 건설하던 헬레니즘 시대에 잠깐 동안 다시 사용되었다.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가 2세기에 미케네를 방문할 때까지 이곳은 오랜 기간 완전히 버려져 있었다. 미케네와 마찬가지로 티린스에서 인간이 최초로 거주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 이후이다. 위쪽 성채(Upper Citadel)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유적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경)의 유적이다. 이 지역의 평원은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900~기원전 1600)에 건설되었다. 티린스는 미케네 시대에 번성하였고, 새로 요새화된 궁전은 기원전 14세기에 지어졌다. 이 방어물은 기원전 13세기 초에 확대되어 성체 하부도 강화되었다. 이곳은 지진과 화재로 인해 소실된 후 재건되어, 새로운 방어물이 20㏊의 면적을 둘러쌌고 추가로 교외의 거주지는 25㏊가 넘었다. 티린스는 미케네 문명의 쇠퇴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 기원전 5세기에 권력과 영향력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은 강제 추방되었으며 이후 완전히 폐허로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