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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필리핀의 바로크 양식 교회 / Baroque Churches of the Philippines
국가명
필리핀
등재연도
1993
등재기준
(ii) (iv)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임마쿨라테 콘셉티온(Immaculate Conception): 인트라무로스 지구(District of Intramuros) 마닐라 시(City of Manila), 누에스트라 세뇨라(Nuestra Senora): 산타마리아(Municipality of Santa Maria), 일리코스 수르 산아구스틴(Province of Ilocos Sur San Agustin): 파오아이(Municipality of Paoay), 일리코스 노르테 산토토마스 드 바야누에바(Province of Ilocos Norte Santo Tomas): 일로일로 주(Province of Iloilo) 미아그아오(Municipality of Miag-ao)
좌표
N14 35 24 E120 58 12
간략개요
필리핀의 마닐라(Manila)·산타마리아(Santa Maria)·파오아이(Paoay)·미아그아오(Miag-ao)에 각각 있는 4채의 바로크 양식 교회이다. 그중 첫 번째 교회는 16세기 말 에스파냐 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교회들의 독특한 건축 양식은 중국과 필리핀 장인들의 손에서 탄생한 유럽 바로크 양식의 재해석으로 평가받는다.
정당성/가치
건축과 디자인 면에서 이 교회군이 구축한 양식은 필리핀의 자연적 조건에 알맞은 것이었으며, 그 후 이 지역의 교회 건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4개의 교회들은 바로크 양식을 필리핀 식으로 해석해 낸 예이다. 또한 유럽 교회의 디자인과 건축 양식을 이 지역의 재료 및 장식적 문양과 혼합함으로써 새로운 교회 건물의 전통을 형성했다. 산아구스틴(San Agustin)에 있는 임마쿨라테 콘셉티온(Immaculate Conception, 무원죄 잉태설) 교회는 에스파냐의 마닐라 정복 직후인 1571년 루손(Luzon) 섬에 지어진 최초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지구 내에 있으며, 필리핀에 처음으로 전도를 시작한 아우구스티누스 회(Augustinian Order)에 양도되었다. 목재와 팜 나뭇잎으로 지어진 초기 가건물이 1587년에 석조 교회와 석조 수도원으로 교체되었고, 그 후로 이 교회는 필리핀 내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모원(母院, mother house)이 되었다. 또한 이 교회는 1945년 마닐라의 독립 운동 때 파손되지 않은 인트라무로스 내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산타마리아 선교관은 바다와 루손의 중앙 산맥 사이 평평한 협곡에 1765년 설립되었으며, 필리핀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아우구스티누스회 건물들 중 하나였다. 이 선교관은 필리핀 제도 북부 지역의 기독교화를 위한 근거지 역할을 했다. 미아그아오는 1731년에 독립된 교구가 되면서 자그마한 교회와 수도원을 지었다. 그러나 1741년 이슬람교 해적들이 도시를 파괴했고, 새 도시가 1754년에 좀 더 안전한 위치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새 교회는 1787년~1797년에 적의 침입에도 견딜 수 있도록 요새처럼 건축되었다. 그러나 1898년에 일어난 에스파냐에 대항한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로 지어진 교회도 화재로 심하게 파손되었다. 2개의 종탑이 1854년에 증축되었으나, 북쪽에 있던 종탑은 1880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금이 가 철거되었다. 교회 실내 벽화들은 19세기에 기존의 템페라 벽화(tempera murals) 위에 덧칠해져 그려진 것이다. 교회에 기부가 많이 들어와 아름다운 봉헌도와 설교단, 독서대, 성가대석 등을 갖추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 특별히 주의를 끄는 것은 본당 회중석의 양옆에 늘어선 비밀 부속 예배당들이다. 예배당들의 분리 벽이 교회의 지지대 역할을 하며, 돌로 지어진 반원통형 둥근 천장과 반구형 지붕, 아치형의 현관은 모두 필리핀에서 유일무이한 것들이다. 과거 수도원 건물들은 일련의 회랑, 아치형 회랑, 안뜰, 정원을 따라 교회와 연결되었는데, 건물 한 채만 제외하고 1945년에 모두 파괴되었다. 필리핀의 마을 교회들이 에스파냐 전통에 따라 중앙 광장에 자리하는 것과 달리 산타마리아에 있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아순시온 (Nuestra Senora de la Asuncion) 교회와 그 수도원은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있다. 또한 특이하게 수도원이 교회 정면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회중석 벽 한가운데에 필리핀·에스파냐 건축 특유의 독립된 종탑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가 언덕 위에 지어진 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벽돌 교회는 필리핀의 표준 건물 배치를 따랐는데, 긴 직사각형 건물의 쭉 뻗은 지붕 선을 감추는 기념비적 교회 정면 역시 그 배치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지진 피해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책으로 단단한 뗏목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얘기가 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측면 출입문들과 강한 지지대들이 딸려 있다. 산토토마스 데 비야누에바(Santo Tomas de Villanueva) 교회는 미아그아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교회 탑들은 이슬람교도의 침입에 대항하는 망루로 지어졌다. 이것은 ‘요새 바로크(Fortress Baroque)’양식의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예이다. 호화로운 교회 정면은 성크리스토퍼(St Christopher) 조각상과 함께 서양의 장식 요소를 필리핀 식으로 변형한 전형을 보여 준다. 페디먼트(pediment, 교회 입구 위의 삼각형 부분)에 세워져 있는 성크리스토퍼 조각상은 원주민의 옷을 입고 있으며, 등에 성자(聖子)를 업은 채 손에 쥔 코코넛 야자에 의지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 정면은 전체적으로 장식이 많이 되어 있고, 그 측면에는 끝이 뾰족하고 높이가 각기 다른 거대한 종탑들이 자리한다. 파오아이는 최초의 정착민들이 인도로부터 건너 온 사람들이라는 전설에 맞춰 기록된 초기 문서에서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불렸다. 파오아이에 세워진 교회가 처음 언급된 것은 1593년이며, 1686년에 아우구스티누스회의 독립 교구가 되었다. 현존하는 교회는 1694년에 짓기 시작해 1710년에 마침내 완공되었다. 파오아이의 산아구스틴 교회는 필리핀에 있는 ‘지진 바로크(Earthquake Baroque)’ 양식의 걸작이다. 14개의 지지대들이 작은 소용돌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소용돌이 꼴을 따라 죽 늘어서 있으며, 피라미드 형태의 피니얼(finial, 꼭대기 장식)들 위에 얹혀 있다. 한 쌍의 지지대들이 각각의 회중석 벽 중앙에 있는데, 이 지지대들은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들로 연결되어 있다. 애프스(apse, 교회 동쪽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의 아랫부분과 벽의 대부분은 네모난 산호석 덩어리들로 지어졌으며, 애프스 위쪽 부분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다. 이러한 순서는 교회 정면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거대한 산호석 종탑은 교회가 완성되고 반세기 후에 증축되었으며, 지진으로 인한 파손에 대비해 다시 지어진 교회로부터 좀 떨어진 위치에 있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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